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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의사의 소통은 환자의 수척한 어깨에 놓인 손
특집 의사의 소통은 환자의 수척한 어깨에 놓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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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2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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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Global role of doctors 우리나라의 현황과 과제
좋은 의사소통 원칙 네가지: 자율성·악행금지·선행·정의

의료윤리에 대한 의사와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과 손잡고 <Global role of doctor>를 주제로 신년기획을 진행합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과제는 의사는 물론 일반사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직 바람직한 의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과제입니다.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는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정립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 홍성수(의료윤리연구회장 연세이비인후과의원장)
기억하시는지? 1990년대 초 '의료는 서비스이고, 환자는 고객'이라는 혁명적 사고 전환의 시기에 '환자-의사 관계'의 개선을 목적으로 의사 친절교육이 대유행이었다. 교육 내용은 주로 '고객 감동'을 훌쩍 뛰어넘어 '고객 졸도'라는 엽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응대 요령으로 환자와 만나고 헤어질 때면 두 손을 모아 배꼽 손으로 머리 숙여 인사하고, 호칭은 어르신으로부터 시작해 아버님, 어머님, 누구 님, 소아는 누구 어린이로 부르고, 목소리는 솔 음정으로. 간호사나 일반직원이라면 모를까 의사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싶지만 부담스럽고 어색한 행동을 일상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영어나 일본식 한자인 의학용어를 환자·고객들이 알아듣기 쉽게 우리말로 바꿔보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는 의사집단이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전문 직업군의 대표격이라는 절박한 현실 인식과 위기감의 반영이요 그 대응이었으리라.

2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환자·고객-의사 관계'와 고객 만족도는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왜 여전히 아니, 점점 더 환자도 의사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만일까? 환자를 위한 의사의 역할과 덕목이 무엇이고 환자와 의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의료의 질을 달성하기 위해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선견지명과 실천이 아예 없었다.

당시 의료윤리라는 근본적 생각 틀을 보다 많은 의료계 지도자들이 알고 있었더라면…. 의사는 '환자-의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존중과 공감과 이해의 자세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환자에게 상태를 묻고, 다시 의사의 소견을 환자에게 설명하면서 진단과 치료 계획, 경과 그리고 결과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인간 관계가 다 그러하듯이.

의사의 진심과 정성이 환자에게 오롯이 다 전달돼 공감과 공유가 가능 하려면 과연 얼마만큼의 면담 시간이 필요할까? 한 시간? 30분? 20분? 아마 3분 이하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 상태의 경중에 따라 진료 차원과 방식이 달라야 할 것이며 또한 의료가 서비스 상품이라면 노고에 합당한 수가가 주어줘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스러운 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을 허용하는 의료전달 체계와 의료수가 체계를 제공하고 보장해 준 적이 있던가? 이 지면은 의료 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지만 현재 우리 진료 현장의 여건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의사가 환자와의 '의사소통과 협력'을 소홀히 해도 되는 핑계나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속담이 있다. 의사는 친절해야 한다. 의사는 사람을, 그것도 병들어 예민하고 겁이 나고 지친 환자를 응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이 뚝배기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담아내야 할 장맛이란 탁월한 의학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에 대한 인격적 배려로 시작해 환자 상태에 대한 공감 그리고 정확한 진단·철저한 치료·치료경과와 결과에 대한 가감 없는 진실된 정보일 것이고, 이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정, 태도가 바로 '의사소통'이며 최종 목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좋은 '환자-의사 관계'이다.

좋은 의사소통을 위한 기준, 의사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기본 잣대는 무엇인가? 의료윤리의 네 가지 원칙이다.

▲ ⓒ의협신문 김선경
첫째, 의사와 환자의 자율성. 의료의 핵심 주체인 의사와 환자가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치료 과정에서 어떤 간섭도 없이 함께 협력해 자율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악행금지. 어떤 상황, 무슨 이유에서건 의사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포함해 절대 해악을 끼쳐서는 안된다.

셋째, 선행. 의사는 주어진 여건이 어떠하건 항상 환자 치료에서 최선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정의. 가용한 모든 의료자원이 모든 환자들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게 제공돼야 한다. 이들 원칙 중 어느 하나라도 의사가 소홀히 한다면 어느 환자가 그 의사와 소통을 하고 신뢰를 하겠는가?

진료실을 벗어나 의사의 역할과 덕목의 외연을 넓혀본다면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보호자인 가족이나 친지, 다각적인 치료 접근을 위해 팀워크를 이루는 동료 의사 및 의료 종사자들과의 의사소통 역시 중요하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분야로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익을 위해서 지역 사회나 전체 국민을 상대로 언론이나 의료정책 수립 과정에도 진실에 부합하는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고 최선의 진료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참여하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

감히 의사소통은 의료의 시작이요 끝이라 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의학적 판단과 감성적 공감과 치료과정에서의 신뢰를 모두 주지 못 한다면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실내장식과 최첨단 의료 장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의사소통은 유창하고 듣기 좋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의사소통은 서로 주고받은 눈빛이다. 의사소통은 환자의 수척한 어깨에 얹힌 의사의 따뜻한 손이다. 의사소통은 위로일 수도, 호통일 수도, 권유일 수도, 호소일 수도, 심지어 긴 침묵일수도 있다. 의사소통은 의사의 초대이고 환자의 응답이며 아름다운 동참이다. 의사소통은 환자의 고통과 공포, 의사의 희열과 좌절의 상호 교감이며 공유이다. 의사소통은 진심이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이란 환자를 위해 최선의 치료 성과를 달성하고 치료 과정에서의 잠재적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태도이자 실천이다.

'의사소통'이 절실한 이유를 달리 생각해 본다면 지금까지 환자와의 불통으로 인한 오해와 불신과 원망과 피해의식이 양측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분쟁과 갈등을 야기하고, 유형 무형의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 볼 일이다.

상상해 보라. 의사가 신이 아니고 고의나 태만이나 과실이 아닌 이상, 환자의 상태와 의학지식이나 의료기술의 한계로 인해 불가항력적 상황이나 참담한 결과 앞에서 폭언을 듣고 멱살을 잡히고 매도 당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수고하셨다, 최선을 다해 준 것을 잘 알고 있다, 여한이 없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위해서 우리 의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소통해야만 할 것이다. 환자와 국민 모두를 우리 의사의 친구이자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이 주도하고 지난 2년 동안 여러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우리나라 '의사의 역할과 덕목(The Global Role of the Doctor in Health Care, The Country Report of Korea)'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나라 의사 사회의 역사적인 성과이며 축하할 일이지만 이와 같은 논의 자체가 구미 의료 선진국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었다. 더디더라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 의료의 희망찬 미래, 후대의 젊은 의사들이 모든 환자와 국민과 동료들로부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신뢰받고 존경 받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이 나라 모든 지역, 세대, 직역의 모든 의사 각자가 공감하고 내면화하며, 무엇보다 실천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나라 의료의 푸르르고 울창한 미래를 위한 깊고 든든한 뿌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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