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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시대 뒤떨어진 정부 통제 이젠 벗어나야 한다
특집 시대 뒤떨어진 정부 통제 이젠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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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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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s
한국 의사 프로페셔널리즘의 역사적 변천

의료윤리에 대한 의사와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과 손잡고 <Global role of doctor>를 주제로 신년기획을 진행합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전문직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 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과제는 의사는 물론 일반사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직 바람직한 의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과제입니다.

'Glo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는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정립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한국 의사 프로페셔널리즘의 역사적 변천

권복규(의화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의료윤리학)

우리나라 의사들의 의학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처음부터 국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천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근대 국가의 탄생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의서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의사를 자처할 수 있었고, 국가가 의술을 행하는 데 있어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의사의 자격과 할 일을 정부가 규정한 것은 1900년의 일로 당시 대한제국 내부(內附)는 의사·약제사·약종상 등의 자격을 의사규칙·약제사규칙·약종상규칙 등으로 규정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해 내부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은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의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여서 이러한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서양과는 달리,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에서 의사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한 수준을 정의하며, 이에 대한 교육과 시험을 주관하고, 정부로부터는 그에 대한 보증(endorsement)을 받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특히 당시 의사규칙은 의사를 '의학을 익혀 천지운기와 맥후진찰과 내외경과 대소방과 약품온량과 침구보사에 통달해 대증투제 하는 자'로 정의해 종래의 전통의학과 새로 들여온 근대의학을 뒤섞어 놓았다. 이러한 출발은 지금까지도 의료의 이원화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의사규칙은 1908년 조선통감부의 <의술개업인허장>을 거쳐 1913년 11월 일제의 의사규칙으로 이어진다. 이 규칙에 따르면 의사는 일본 의사면허를 갖거나 조선총독이 지정한 의학교를 졸업하거나 그가 지정한 의사시험에 합격한 자로 한정됐고, 의료행위에 대한 각종 의무사항들을 정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의사는 진료기관을 개업하거나 폐업할 때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며 진찰을 하지 않고 진단서 등을 교부할 수 없었으며, 진료부를 갖추고 10년간 보존해야 했다.

하여간 오늘날의 의료법에 담긴 의사의 행위를 규율하는 대부분의 규정이 이미 1913년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의료를 국가가 규율해야 했을까? 이것은 당시 조선 의료의 식민지적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의 의료를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조선인의 건강 상태를 그럭저럭 유지하며 전통 국가를 근대 국가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식민 백성의 몸과 가족을 가혹하게 통제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었다.

경찰과 의료, 그리고 초등교육은 식민 통치를 위한 3대 기구였으며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했다. 전신과 철도, 우편 등이 근대 식민지의 하드웨어적 인프라였다면 경찰과 의료, 초등교육은 백성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구였고 따라서 의사는 식민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의사 교육기관은 일부 선교사들이 세운 기관을 제외하면 일본 정부 기관이었으며 그곳에서 일하는 교수들은 공무원이었고, 졸업한 뒤 일하게 되는 도립병원 역시 정부 기관이었던 데다가 개업을 하면 경찰의 통제를 직접적으로 받았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의사들의 전문직업성을 개발하는 데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런 속에서 의사들은 그럭저럭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처우를 받으며 자신과 가족의 안락한 생계를 유지하는 소시민적 삶 이상의 것을 꿈꿀 수 없었다. 능력이 있어도 도립병원과 국립 의학교육기관의 높은 자리에 승진할 수 없었으며, 박사학위를 받아도 그저 개업을 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학위라는 것은 조직화된 의료와 아카데믹한 의학 내부에서 어떤 권위를 인정받는 요소라기보다는 환자를 끌기 위한 장식에 불과해졌다. 애초에 그런 길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의학전문직업성의 또다른 축은 의사협회 등의 의사단체였지만 일제 하에서는 그런 단체를 결성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1908년 몇몇 조선인 의사들이 <의사연구회>를 결성했지만 이는 한일합방과 함께 강제 해산됐으며, 일제 하의 조선의학회는 조선인이 아닌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의사의 기구였다.

이에 대항해 1930년 <조선의사협회>를 결성했지만 1939년 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조선의학협회를 재결성 했지만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전시에 있어 의사들의 동원으로 인해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의학전문직업성을 발전시키기는 어려웠다.

언제나 무슨 이유로든 의사들은 국가가 동원해 어떤 역할을 맡기는 직군이었으며 일제시대에는 일제시대 대로, 분단과 전쟁 시기에는 그 시기대로, 그 뒤의 권위주의 정권 때는 그 때 대로 정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에 수많은 의사들이 미국으로 떠나고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의료수요가 폭증해 당시의 의사들은 단군 이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에 불과했고, 그 뒤를 이은 의학교육기관의 난립, 그리고 국가 건강보험제도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됐다.

전문직업성의 대표적 특징은 자율성(autonomy)이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은 교육에서 수련·면허·의료서비스의 가격 등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으며, 그동안 경험해온 역사와 의료 문화는 이를 극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가의 직접적 통제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의사가 전문직업성을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그것이 의사 자신의 직업적 존엄에도 필수적이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복잡한 의료환경 속에서 양질의 윤리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제는 이런 부분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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