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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진료 허용, 처방전 리필제 도입 우려된다
전화진료 허용, 처방전 리필제 도입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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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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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권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즈)

▲ 이경권 변호사·의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즈)
대법원 판결 하나가 의료계에 자그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세칭 '전화진료'판결이다. 살빼는 약 처방을 대면진료 없이 내린 의사에 대하여 대법원이 유죄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많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어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사안의 개요는 이렇다.

산부인과 A씨는 이전에 비만 관련 진료를 받았던 환자, 이전에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처방전을 발급해 주었다. 처방전을 발급하는 경우에도 전화통화를 한 경우, 전화통화 없이 접수창구에서 바로 처방전을 발급해 준 경우 등 다양하였다. 기존의 판례와 헌법재판소의 결정(2101헌바83 결정)은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직접 진찰한'이란 '대면하여 진료한'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존의 해석을 2010도1388 판결에서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주요한 근거로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이 '직접 진찰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 반하여 동법 제34조 제3항에서는 '직접 대면하여 진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양자를 구별하고 있다는 점, 의료법의 목적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가 없는 점, 제도의 운용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비대면진료를 허용한다거나 보험수가를 조정하는 등으로 비대면진료의 남용을 방지할 수단도 존재하는 점,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 각국이 원격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과 함께 죄형법정주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전화진찰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의 '직접 진찰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사한 사건을 몇 차례 담당한 경험에 비추어 위 판결에는 환영할 부분도 있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먼저 환영할만한 부분은 대면진료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경우에 전화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있을 경우 부모가 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사춘기 소녀들의 경우 주위 친구들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알려질 경우 오히려 나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방치할 경우 자해를 할 가능성이 있어 치료는 필수적이다. 이 경우 소녀의 상태를 관찰한 부모가 그 증상을 설명하고 이를 들은 의사가 적절한 처방을 내려 우울증치료제가 아닌 비타민이라고 속여 복용하게 한 사건에서 하급심에서는 유죄로 인정하였다.

다른 사안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아들에게 약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다.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 제가 이렇게 처방을 하면 의료법위반이니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도 과거의 판례대로라면 의료법위반이 된다.

이처럼 불가피하게 대면진료를 할 수 없는 경우에까지 '직접 진찰'의 의미를 '직접 대면진찰'로 해석한다면 선량한 범죄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게 돼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점 환영할만하다.

사실 재진환자의 경우 보건복지부 고시 "건강보험 행위급여·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 상대가치점수 제2부 행위급여 목록·상대가치점수 및 산정지침 중 재진진찰료 부분에서 "5. 환자가 직접 내원하지 아니하고 환자 가족이 내원하여 진료담당의사와 상담한 후 약제 또는 처방전만을 수령 또는 발급하는 경우에는 재진진찰료 소정점수의 50%"를 산정한다."는 규정이 있어 의료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대해 수가를 지급한다는 모순이 있어 왔다. 만일 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걱정되는 부분이 더 많다. 위 대법원의 태도에 의하면 굳이 대면진료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대부분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가 많다. 이 경우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로 진료를 한다거나 처방전만을 발급해 주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할 환자의 수가 급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아마 초진진찰료의 경우에도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에 차등을 줄 것이다.

다음으로 더 걱정되는 것은 당연히 처방전 리필제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위 사건에서 전화진료조차 하지 않고 처방전만 받아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할 이유가 없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그냥 이전 처방전을 재활용할 경우 의사의 진찰료를 줄일 수 있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싫어할 이유가 없다. 과연 이것이 대법원이 바라는 바인가?

마지막으로 위 사건에서 일명 '살빼는 약'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 대법원이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살빼는 약 복용자들의 1개월이 아닌 수 개월치의 처방을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는 의료기관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지속적 복용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복용자에 대한 주기적 점검이 필요없다는 얘기인가?

바라기로는 의료법 제17조 제1항을 개정하여 진단서·검안서·증명서에 대한 규정과 처방전에 대한 규정을 분리하여 처방전에 대한 독자규정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는 직접 대면진찰하지 않은 환자에 대하여 처방전을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 다만, 질병의 특성, 또는 의료기관의 사정 등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에는 유선통화 또는 대리인과의 면담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처방전을 작성하거나 교부할 수 있다"로 하는 것이 어떨까? 고등법원이 어떻게 결정할지 심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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