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진료실...의료인 폭행 대책은 없나?
목숨 건 진료실...의료인 폭행 대책은 없나?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3.02.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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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정신과 의사 피습...'안정적 진료환경' 급부상
의협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진료실 CCTV 설치 시급"

▲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가운데)이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김 모 원장을 위로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창원과 대구에서 잇따라 발생한 정신과 의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안정적인 진료환경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진료실 폭력으로부터 의료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본격 나설 방침이다.

13일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정신질환을 앓던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중인 대구 수성구 김 모 원장을 위로 방문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진료실에서 이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매우 염려스럽다"며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8대 국회에는 의료인을 폭행·협박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의사 특혜법'이라는 환자단체의 반발 속에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19대 국회 들어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 이학영 의원 대표발의로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다시 제출된 상태다.

노 회장은 "의료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진료실내 CCTV 설치 허용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동안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을 반대해 온 환자단체도 이제는 의료인의 안전이 곧 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CCTV 설치를 반대하고 있는 정부 역시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의사회 이성락 회장은 "미국의 경우 의료기관 안에서 폭력을 행사한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경찰이 즉시 체포·연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있다"며 "병의원 안에서 벌어지는 폭행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의 80.7%가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경험했으며 50%는 물리적인 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의사가 39.1%에 달했다.

"중상 입은 김 원장...오히려 칼 휘두른 환자 걱정"

대구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지난해 8월 경남 양산에서 일어난 정신과 전문의 피습 사건과 거의 유사하다. 평소 의사가 담당하던 환자가 느닷없이 가해자로 둔갑했으며,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진료실에서 발생했다. 특히 평소 환자와 아무런 원한 관계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어서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 원장이 피습을 당한 것은 7일 오전 10시 20분경. 20년 넘게 조현병(구 '정신분열증') 진료를 해 오던 환자 박 모 씨가 휘두른 23cm 길이의 등산용 칼에 복부와 손 등을 마구 찔려 경북대학교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다. 후송 당시 복부에 5cm와 3cm의 자상을 입었으며, 장간막이 외부로 돌출된 상태였다. 좌측 복직근은 잘려져 있었으며 환자와 몸싸움 과정에서 손바닥 등 여러 군데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김 원장은 현재 경북대병원 입원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이르면 14일경 퇴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지 의료진에 따르면 근막 손상이 심해 탈장의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은 노환규 회장은 "의협이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진료실 폭력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제도의 문제로 발생한 일"이라며 "의협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나서겠다"고 답했다.

▲ 대한의사협회와 대구광역시의사회, 경북대학교병원 관계자들이 김 원장 피습 사건에 대해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의협신문 김선경

이날 노환규 회장과 함께 병원을 방문한 김종서 대구광역시의사회장은 "피해 입은 회원은 평소 환자들에 대한 애정이 많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어, 주변 동료 의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지역 의료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장애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정작 본인은 가해자의 상태를 염려하며 동일한 범행이 재현돼 동료 의사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원장 위로 방문에는 의협 노환규 회장과 송형곤 대변인, 대구광역시의사회 김종서 회장과 민복기 공보이사, 대구 수성구의사회 이성락 회장 등이 함께 했으며, 경북대학교병원 이재태 핵의학과 교수(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조병채 진료처장 등이 배석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6일째인 13일 김 원장은 매우 수척하고 기력이 소진한 모습이었다. 입원실에서 어렵게 김 원장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20년 동안이나 진료해 온 환자가 이유 없이 칼을 휘둘렀다. 원망스러운 생각은 없나?
- 원망이라기보다는 환자가 병적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다 보니 안타까울 뿐이다. 측은지심을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진료에 복귀해야 하는데 심경이 어떠신지.
- 그게 제일 걱정이다. 현재로선 막막할 뿐이다. 예전처럼 환자를 대할 수 있을는지…. 이 환자처럼 가족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환자들은 병세가 매우 나빠지는데, 그런 점들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진료현장에 복귀하면 가해 환자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는데….
- 솔직히 말해서 두렵다. 처벌을 받든 치료감호를 받든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나올 텐데, 또 다시 증상이 악화된 상태에서 똑 같은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 다른 의사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동료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참 어려운 문제다. 의사는 환자를 직접 만지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버스 운전석처럼 칸막이를 설치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굳이 나 자신을 보호하겠다면 가스총, 전기충격기 같은 것을 준비하는 것인데, 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런 것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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