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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사의 딜레마

청진기 의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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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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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부산아로시오기념병원 소아청소년과)

▲ 이정희(부산아로시오기념병원 소아청소년과)
사고로 지난 기억을 상실한 여인이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과 결혼했다.

그동안 연고를 몰랐던 여인은 아들의 군 입대로 호적을 정리하던 중 신원이 밝혀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고 전에 결혼해 살던 옛 가족의 소재를 알게 됐다. 옛집에는 24년간 행방불명 된 아내를 기다리며 재혼도 하지 않은 옛 남편과 세 자녀가 있었다.

그녀는 옛 가족을 만난 기쁨 보다 두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실을 확인한 수절했던 옛 남편, 그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옛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현 남편, 그리고 옛 가족을 외면할 수도 지금 가족을 포기할 수도 없는 아내, 이들 사이에는 풀기 힘든 고민으로 가득했다. 딜레마에 빠진 한국판 '마음의 행로'의 여주인공은 어느 길로 가야하나.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의 문제로 궁지에 몰려 힘들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이 최선이고 합리적인 선택인지 고민하고,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해 망설인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 할 것인가, 양심과 명예와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정확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갈등과 모순이다.

남아프리카 사진기자 케빈 카트는 수단의 기아실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마침 굶주린 흑인소녀가 구호소까지 걸어갈 힘이 없이 앉아 죽어가는 모습과 소녀의 숨이 멎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를 찍어 대기근의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기자는 순간적으로 딜레마에 빠졌지만 인간의 길을 걷지 않고 기자의 길로 갔다. 그러나 더 비정한 것은 인간성을 포기한 그에게 준 것은 벌이 아니고 상이었다. 영광의 퓰리처상을 받은 그도, "독수리에게 먹힐지도 모르는 그 소녀를 왜 구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에 시달려 3개월 만에 자살했다.

딜레마 속에는 갈등, 고민 그리고 모순이 숨어 있다. 혼돈 속에 빠져 있는 현대사회와 문명은 그 자체가 모순이고 딜레마이다.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아토피 같은 예민한 알레르기 질환은 늘고 있다. 풍요로운 생활 속에 비만과 성인병은 오히려 증가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을 죽여야 하는 생명도 냉혹한 딜레마다.

의사들도 딜레마에 빠져 고민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운증후군에 식도폐쇄증을 동반한 아이가 태어났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고, 부모는 수술을 해도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를 근거로 수술을 거부했다. 법원에서도 수술을 거절하는 것은 부모의 권리라고 판결했고, 아이는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하고 생후 엿새 만에 숨을 거뒀다. 수술을 거부하는 가족 편에 서서 아이를 떠나보낸 의사의 고민도 컸을 것이다. 1982년 미국 블루밍턴에서 있었던 비극이다.

산전 진찰에서 태아에 예기치 않은 기형이 발견됐을 때는 아주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기형의 정도가 심해 출생 후 많은 문제점이 불가피 할 경우, 임신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중절해야 할 것인가 결정하는데 애로가 많다. 출생한 아이에게 정신적·육체적 심한 장애가 초래된다면 아이의 삶의 질은 물론이고 가족들이 평생 져야 할 고통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생명의 존엄성과 현실적인 고통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

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말기환자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여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인가?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생명연장을 위한 심폐소생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희망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 장치를 제거해 달라고 가족이 요구하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예후가 좋지 않을 중증 환자에게 치료를 계속하면 생명은 건지겠으나 심각한 후유증으로 그 가족의 고통이 더 클 때,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럴 때 의사는 환자의 고통 보다 더 심한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진다. 이런 경우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게 의사에게는 또 다른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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