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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료체계는 인본주의적일까?

우리 의료체계는 인본주의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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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2.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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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신년기획] Global role of doctors (3)

의료윤리에 대한 의사와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Golbal role of doctor연구팀'과 손잡고 <Golbal role of doctor>를 주제로 신년기획을 선보입니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은 각 나라별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의사의 역할을 규명하기 위해 'Global Role of Doctor in Healthcare'라는 과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의사전문직의 고유의 가치(value)와 의무(duty)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과제는 의사는 물론 일반사회 모두가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직 바람직한 의사상이 정립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과제입니다.

'Golbal role of doctor연구팀'은 지난 2년 동안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의사의 역할과 덕목'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신년기획 <Golbal role of doctor>는 의사전문직의 가치와 의무를 정립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편집자주>

 

▲ 한희진(고려의대 교수 의학교육학교실/의철학 의사학)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영화 '식코'에서 프랑스 의료체계가 초강대국인 미국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인본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2000년 6월 21일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2000년 세계건강보고서: 보건체계들-성과의 개선>에서도 확인된다. 프랑스 의료체계는 당시 191개 회원국 중에 의료의 분배와 조직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되었고 지금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의료체계가 처음부터 이렇게 우수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의사가 대중과 소통하며 참된 '의료' 개념을 수립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했기 때문에 성취될 수 있었던 성과이다.

프랑스의 현대적 '의료'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의사 메뉴레(1739∼1815년)의 사상에서 그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의료를 생물학적 차원의 치료와 더불어 사회적 차원의 복지를 포함시켜 정의했다. 그에게 이렇게 포괄적인 의료는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공공서비스였으며 그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완전히 재정적 지원을 하는 무상의료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유럽에는 비영리 목적의 민영종합병원과 영리 목적의 민영종합병원이 가장 많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메뉴레의 '의료' 개념에 따라 공영종합병원이 국가의료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환자의 약 80%를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부터 시행된 이른바 '포괄적 질병보험제도(Couverture maladie universelle, CMU)'는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무상의료제도로서 메뉴레의 구상이 두 세기 동안의 대중적 논의 끝에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결과이다.

수많은 의사가 대중과 소통하며 참된 '의료' 개념을 수립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 했다

프랑스에서 의사의 임무에 대한 현대적 규정도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를 전후로 발견된다. 1788년 의사 트농(1724∼1816년)은 '파리 공영종합병원에 대한 연구보고서'의 서문에서 공영종합병원은 환자의 신체와 정신의 병리적 증상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적·경제적 고통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1798년 의사 카바니스(1757∼1808년)는 <의학의 확실성에 관하여>라는 저작에서 의사의 임무는 일종의 원조(secours)로서 단순히 의료를 베푸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이 원조의 분배와 관련된 경제적·사회적·법적·윤리적 문제까지도 담당하는 것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의철학자 캉귈렘(1904∼1995년)도 의사는 환자 개인을 진료함으로써 그의 가족과 더 나아가 지역 사회와 국가 전체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사가 자신의 진단과 치료가 초래할 생물학적 결과를 사전에 예측해야 하듯이 의료행위의 경제적·사회적·법적·윤리적 결과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괄적 질병보험제도'는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무상의료제도로서 두 세기 동안의 대중적 논의 끝에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결과다

이렇게 간단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난 두 세기 동안 프랑스에서는 의사 스스로 '의료' 개념의 정의를 끊임없이 발전시켰고 이 정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중장기적으로 추구해 왔으며 이 목표의 실현에 필요한 의사의 사회적 역량과 윤리적 덕목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계발해 왔다는 사실이다.

'의료' 개념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프랑스 의료계의 자발적이고 선도적인 논의의 결과는 '의사 직업윤리법'에 반영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의료를 기본적으로 공공서비스로 규정하기 때문에 의료계가 자율 규제와 자기 정화를 하는 근거가 의사협회의 윤리지침이 아니라 국가의 공중보건법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2012년 5월 7일에 개정된 최신의 프랑스 의사 직업윤리법은 총 5개 조, 즉 제1조 의사의 일반적 의무, 제2조 환자에 대한 의무, 제3조 의사간의 관계 및 의사와 타 의료 전문직과의 관계, 제4조 의사 전문직의 실천, 제5조 기타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조에는 총 112개 항이 포함돼 있다.

제1항에 따르면 의사 직업윤리법은 프랑스 의사회 명부에 등록된 의사, 즉 공중보건법 제L.4112-7항이나 국제협약이 규정한 조건에 따라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모든 의사나 의사 직업윤리법 제88항이 규정한 경우처럼 의사를 돕거나 의사를 대신하는 의과대학 학생에게도 적용된다.

아울러 프랑스의사회는 공중보건법 제L.4122-1항에 입각해 의사 직업윤리법의 준수를 감시할 책임이 있으며 이 법의 위반에 대해 법적 처벌권도 갖는다.

의사 직업윤리법은 프랑스의사회 국가회의의 각 지역 대표 54명이 주도하고 의사회 소속의 모든 의사가 참여해 만들었다. 오늘날의 프랑스 의사회는 19세기 후반부터 모든 전공과 소속 기관(개원의·봉직의·의대 교원 등)의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후인 1923년 창립됐으며 1947년 처음으로 현대적인 의사 직업윤리법을 제정했다.

프랑스의사회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초로 사회의 요구를 선도적으로 반영하고 대중과의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의사 직업윤리법을 수립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랑스에서 의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회의 엘리트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의사회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초로 사회의 요구를 선도적으로 반영하고 대중과의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의사 직업윤리법을 수립했다

사실 프랑스에서 기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경제적 기부를 뜻하기 이전에 본래 사회의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의사가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의사회가 의료전문성과 윤리적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참여와 기여를 꾸준히 해 왔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프랑스에 비해 이미 200년 이상이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함께 우리나라 고유의 '의료' 개념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윤리적 책무에 대해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선행 연구와 선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이 반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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