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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하나? 못하나?…"동네의원부터 살리자"
특집 안하나? 못하나?…"동네의원부터 살리자"
  • 조명덕 기자 mdcho@doctorsnews.co.kr
  • 승인 2013.01.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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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4.0시대' 진화를 꿈꾼다 - 1차의료 활성화를 위해 -

#경기도 부천시 한 주택가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한 달 전 바로 코앞에 대형슈퍼가 문을 연 후 하루도 편하게 잠 들지 못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3배나 큰, 대기업이 개발한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들어선 것이다.

A씨가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하루 18시간 동안 일하며 버는 돈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3년전 문을 연 후 몸은 힘들었지만 '내 가게'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인근 대형마트에 이어 같은 골목에 SSM이 문을 연 후 하루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곧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서울 구로구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B원장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진다. 하루 3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B원장의 월평균 수입은 1000만원 정도인데 임대료·관리비·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그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급기야 최근에는 한 명 뿐이던 간호사마저 내보내고 '1인 2역'을 하고 있다. B원장은 "그나마도 자녀 교육비 등에 쓰다 보면 회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동료의사들을 만날 수 있는 의사회 모임에 참석하기도 꺼려진다"며 "이런 식으로 병원을 운영하느니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해 볼까'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동네상권의 몰락으로 고생하고 있는 슈퍼업주 A씨와 동네의원 경영난으로 폐원마저 고려하고 있는 B원장의 현재 상황은 닮아있다. 동네상권의 몰락은, 이를 막기 위한 '대형마트·SSM에 대한 영업규제'가 지난해 유통업계 최대의 이슈로 부각될 만큼 심각하다.

동네상권의 몰락은 슈퍼업주 개인의 어려움을 넘어 지역경제 나아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1차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동네의원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하다. 원장 개인의 경영난도 문제지만,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성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병원급 263% 증가할 때 의원은 고작…

동네의원의 몰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통계지표 '요양기관종별 요양급여비용 현황'<그래프>에 따르면 2001년 의원급 의료기관의 점유율은 32.8%(5조 8469억원)로 병원급 이상(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의 점유율 31.8%(5조 6686억원)를 근소하나마 앞섰다. 그러나 이듬해 바로 31.3%(5조 9638억원) 대 32.6%(6조 2090억원)로 역전된 후 의원급은 내리막길을, 병원급은 오르막길을 급하게 걸어왔다.

마침내 지난해에는 의원급의 점유율이 21.6%(9조 9646억원)로, 병원급 44.7%(20조 5768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2001∼2011년 사이에 요양급여비용이 의원급은 5조 8469억원에서 9조 9646억원으로 70% 늘어난 반면 병원급은 5조 6686억원에서 20조 5768억원으로 263%나 증가한 결과다.

연평균 증가율도 의원급은 5.5%에 그친 반면 병원급은 13.8%에 달했다. 의원급은 2006년에만 11.5%로 두자릿수 증가했을 뿐인 반면 병원급은 2006·2007년 2년연속 20%를 넘겼고, 2002년(9.5%)·2004년(9.5%)·2011년(6.2%)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자릿수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7∼2011년 5년간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업률은 평균 6.3%에 달한다<표>. 

구분 총기관수 폐업 기관수 폐업률
2007 26,141 1,920 7.30%
2008 26,528 1,894 7.10%
2009 27,027 1,487 5.50%
2010 27,469 1,559 5.70%
2011 27,837 1,662 6.00%

 ※ 의원급 의료기관 폐업 현황

2007년 2만 6141곳 의원급 의료기관 가운데 1920곳이 문을 닫아 7.3%의 폐업률을 기록한 이후 2009년 5.5%까지 내려갔으나 2010년 5.7%에 이어 2011년 6.0%로 다시 상승곡선을 긋고 있다. 5년간 해마다 평균 1704곳의 의원이 간판을 내린 것이다.

무엇이 1차의료의 붕괴를 가져왔나

1977년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된 후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민의료보험이 도입된 1989년 의료전달체계가 시행됐다. 전국을 8개 대진료권·142개 중진료권으로 나눠 1단계 진료는 중진료권의 의원 등을 이용하고, 대진료권의 2단계 진료는 1단계에서 발급받은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제도가 1998년까지 시행되면서 의원의 경영이 개선되고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8년 10월 규제 완화책의 하나로 모든 병·의원을 1단계 진료기관으로 하고 상급종합병원만 2단계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됨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모든 병·의원의 출혈 경쟁이 시작됐다. 이후 상급종합병원은 시설·장비·인력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양질의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추지 못한 1차의료기관은 쇠락을 거듭했다.

또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은 한정된 건보재정에서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해야 할 중증질환에 집중됐고, 상대적으로 필수진료 또는 경증진료에 대한 보장성강화는 소홀해져 1차의료기관으로 돌아갈 파이는 더욱 줄어들었다.

아울러 1977년 의료보험 도입부터 시행된 종별가산율은 2000년 이후 상급종합병원 30%, 종합병원 25%, 병원 20%, 의원 15%로 굳어져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켰다.

특히 해마다 의원급 수가(환산지수)는 그나마 2%대로 인상돼 왔지만 수가산정의 기준인 상대가치에서 의원급 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구조적인 원인은 의료행위의 분류에서 1차의료와 관련된 항목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1차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의료행위는 검사·처치·수술 등 가시적인 것 보다는 의사의 전문지식을 이용하는 무형적인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수가항목화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무시돼 왔다.

1차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래프에서 보듯 심각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이다. 의료의 건전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다. 이 질서가 무너질 때 1차의료기관은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외래환자는 의원에서, 입원환자는 병원에서 진료한다는 전달체계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 휴일·야간을 비롯해 응급상황이 아닌 경우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외래진료비용 모두를 환자가 부담토록 하고, 진료의뢰서 사용기관과 횟수를 제한하고, 진료의뢰서 발급기관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진료정보제공료를 지불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아울러 병원의 입원진료비와 의원의 외래진료비 본인부담금을 인하할 수 있도록 수가를 조정하고, 대형병원이 본연의 역할인 교육·연구·의료기술 개발 등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한편 기본진료료는 요양기관 종별가산율이 적용되지 않음에도 실제로는 상대가치 점수로 조정해 요양기관 종별로 의료행위를 별도로 분류, 종별가산율 보다 큰 차이를 두고 있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진료비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기본진료료 가운데 요양기관 종별로 분류된 상대가치 점수를 단일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90일'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보험자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진찰료를 환수하는 등 진료권을 침해하고 1차의료기관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는 초·재진 진찰료 산정기준도 개선이 필요하고, 원외처방에 의한 약국조제 때 발생하는 조제료에 대한 본인부담률도 처방 의료기관의 종별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이밖에 의원급 의료기관의 종별가산율을 15%에서 20%로 상향조정하고, 토요일 진료에 대한 가산 적용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1차의료기관의 진료행위를 장려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의료행위에 대한 급여항목을 신설해 1차의료기관에만 인정하거나, 일부 급여항목에 대한 수가를 차등화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특히 상대가치까지 개발됐으나 수가에 포함되지 못한 건강평가·상담·예방접종·교육·환자의뢰·전화상담 등이 급여항목에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상대가치의 보완만으로 1차의료기관의 몰락을 막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수가체계를 달리하는 방안에 대한 제도적·정책적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가 1차의료 활성화를 명목으로 시행해 온 정책·제도의 대부분이 의료비절감을 목적으로 추진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이같은 목적의 접근에서 벗어나 1차의료 본래의 기능과 중요성에 기반을 두고, 일부 제도를 통한 개혁 보다는 전체 의료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점진적·지속적인 개선과 평가 및 근거산출을 통한 접근을 시도할 때다.

'한국의료 4.0' 시대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끌어갈 새 정부와 의료계가 전향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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