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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신의 벽 허물고 상생 합의체 만들어야"
특집 "불신의 벽 허물고 상생 합의체 만들어야"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3.01.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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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4.0시대' 진화를 꿈꾼다. - 효율성을 높이자 -

인구 30만 명이 채 안되는 지방 중소도시에 있는 A종합병원. 250병상 규모의 작은 종합병원이지만 대학병원이 없는 이 지역에서 환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L병원장도 다른 지방병원처럼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의 지속적인 상승과 이익률의 감소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지역응급의료기관을 열고 있다.

"지방 중소병원들이 다 그럴 겁니다. 민간병원이지만 지역의료를 책임지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랄까요."

L병원장은 뇌혈관질환자를 위한 중재시술과 응급 출혈에 대비해 색전술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촌각을 다투는 지역 심혈관질환자들을 위해 경피적 심혈관 중재술(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PCI)이 가능한 의료진도 초빙했다.

하지만 ㄴ병원장은 최근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지방의료원에서 PCI를 할 수 있는 심혈관센터를 짓겠다고 나선 것.

"70억원의 정부예산을 들여 이미 우리 병원에서 하고 있는 심혈관중재술을 할 수 있는 센터를 짓겠다고 합디다. 그 돈이면 우리 지역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소아응급진료나 야간분만진료 기능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다른 사각지대는 외면한 채 이미 민간병원이 갖추고 있는 의료인프라와 똑같은 곳에 중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대범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공공의료의 이름을 빙자한 비효율의 단적인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를 들여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지역에 건물부터 짓고보자는 '묻지마식' 공공의료원이 있는가 하면 민간병원이 들어서기로 한 인접지역에 새로운 공공병원을 신축하겠다거나 1차 진료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형 보건지소를 대폭 확충하겠다는 지자체도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세운 병원만이 공공의료'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복투자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머리따로 발따로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전국 보건소 조직을 보건복지부로 일원화하고, 거대 관료조직이 돼버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지역밀착형 조직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도 비효율을 걷어내는 일 중 하나다.

2월부터 발효되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는 '공공보건의료'의 정의를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했다. '공공의료=공공기관'이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공공의료=공공활동'으로 패러다임이 바뀜을 의미한다.

새로운 법률 시행을 계기로 '비효율'이 '효율'을 가로막는 모럴 헤저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공과 민간 의료가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결코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표> 52개 질환자 약값 차등제 시행 전·후의 요양기관 종별 이용 현황 (단위:천명, 천일, %)  

구분 전년 동기(2010.10~2011.2) 시행 후(2011.10~2012.2) 증감
수진자수 전체 27,849 28,260 411 1.5
상급종합 781 485 △296 ↓37.9
종합 1,947 1,613 △334 ↓17.2
병원 2,489 2,702 213 8.6
의원 25,989 26,566 577 2.2
내원일수 전체 110,803 112,015 1,212 1.1
상급종합 1,633 799 △834 ↓51.1
종합 4,476 3,263 △1,213 ↓27.1
병원 6,349 6,494 145 2.3
의원 98,343 101,459 3,116 3.2


※수진자 수는 요양기관 종별간 중복이 가능하므로 종별 합이 전체와 일치하지 않음. 

공공·민간 '협력' 통해 '상생' 나서야
보건복지부가 6월 29일 발표한 'OECD 국민의료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은 2010년 7.1%로 OECD 평균(9.5%) 보다는 낮다. 1인당 의료비 지출 역시 구매력평가지수(PPP)를 기준으로 할 때 2035USD로 OECD 평균(3268USD) 보다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다는데 있다.

특히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1/3을 쓰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급증과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 연령의 감소(세금을 내는 인구의 감소)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의료분야에서 효율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한정된 재원에서 비롯된다. 같은 치료를 하고도 더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2011년 3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통해 의원은 외래환자에 대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만성질환·노인 관리체계를 구축함으로써 1차의료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병원은 전문병원화와 지역거점화를 통해 역할을 재정립키로 했으며,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자 진료와 교육·연구 기능에 주력할 수 있도록 기능을 재편키로 했다. 의료기관 종별 표준업무 규정 고시·약국본인부담 차등제·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등 후속조치가 이어졌다. 감기·결막염·고혈압·당뇨병 등 1차의료기관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비효율적인 의료이용 문화를 바로잡자는 의료이용자 규제조치다.

52개 경증질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약값을 20% 또는 10% 더 내도록한 약값 차등제 시행 이후 약 5개월 동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질환 외래환자는 37.9%, 종합병원은 17.2%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병원은 21만 3000명(8.6%), 의원은 57만 7000명(2.2%)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의원급 점유율이 2012년 상반기에 보합세로 돌아선 것은 약값 본인부담 차등제의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가격 인상 정책이 의료이용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규식 교수(연세대 보건행정학과)는 한 발 더 나아가 의료기관종별 가산율이 아닌 질환군별 가산율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교수는 "질병의 중증도에 대한 구분없이 의료기관종별에 따라 동일한 가산율을 적용하는 구조하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단순질환질병군 환자를 받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1차나 2차 의료기관으로 후송할 유인이 전혀 없다"며 "종별 가산제를 질환군별 가산제로 변경하고, 단순질환비율이 많은 상급종합병원은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같은 면허를 받은 의사의 진찰료를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크기에 따라 차등화한 것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초진료는 10년 간(1999∼2009년) 119.2% 인상된데 반해 의원의 의사는 62.2% 인상에 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진료를 하고도 의원보다 3∼5배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구조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의료자원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52개에 불과한 경증질환을 더 확대해 나가야 할 필요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한정된 의료재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맞물려 있다.

경제침체가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출산·고령화와 생산인구의 감소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사회적 위협 요인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기세다.

지금부터라도 선심성 보장성 강화정책의 틀을 내려놓고 적정의료이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과다 의료이용을 적정 수준으로 유도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절감된 재원을 의료체계의 뿌리인 1차의료를 활성화하는데 투입하는 것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의원급 점유율 보합세 전환…'약값 차등제' 효과 확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진료(수술 포함)를 받은 원정진료 환자를 분석한 결과, 2009년 204만 8000명에서 2011년 220만 6000명으로 16만 명이 늘었다. 서울 원정에 나선 환자들이 지출한 비용은 2011년 2조 4913억원에 달했다. 원정진료 환자들과 가족들이 쓴 교통비와 체류비를 비롯해 시간과 사회적 손실비용을 감안하면 3조원이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잘못된 의료이용 문화가 만들어낸 비효율의 전형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평준화 시대에 살면서 무조건 대형종합병원이 좋을 것이라는 빗나간 믿음 때문에 환자들의 발걸음이 서울로 이어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기관당 평균 병상수는 2005년 875병상에서 병상 신·증설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2010년 958병상까지 늘었다. 1000병상급 초대형병원이 속속 등장하면서 의사는 물론 간호사·의료기사 인력을 휩쓸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방 중소병원들이 의료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것은 초대형병원의 창궐과 무관치 않다.

지방 중소병원과 동네의원들은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 현상과 서울 원정진료가 가속화될수록 경영위기에 시달리고, 의료인력 구인난에 허덕이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역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이 설자리를 잃으면 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이 그만큼 떨어지게 되고, 의료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의 위기는 국가 의료체계의 뿌리와 가지를 뒤흔드는 악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지역의료계는 지역의료의 안전망을 확보하고, 국가 의료체계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견고한 의료전달체계를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견고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 시도별 진료권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료권에서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질환자가 원정진료에 나설 경우 본인부담금을 가중시킴으로써 가격에 의한 시장조절 매커니즘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내 의료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지역의료계를 살리기 위해 공공의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민간병원에 대한 재정지원과 세제 혜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정호 충북의대 교수(충북대병원 내과)는 "자신이 사는 가까운 곳에 든든한 병원이 있으면 응급질환이 생겼을 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된다"며 "든든한 의료안전망이 있다는 것은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해마다 3조원 이상의 진료비와 부대비용을 지역에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한다면 지역의료가 살아날 수 있다"며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진료권 설정·지역의료체계 구축해야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의료체계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의료 이용자는 물론 공급자·보험자 등 의료를 이끌어가는 각 주체에 대한 규제·지원·규제 완화 등 다양하고 다각적인 접근이 시의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의료 주체들 간에 소통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개혁의 명분을 내세워 일방통행식으로 강행한 의료정책이나 제도는 이해가 걸려있는 주체의 반발과 반대에 부닥쳐 심각한 갈등과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한약분쟁·건강보험 통합·의약분업 등으로 인한 극한 대립과 불신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라는 후유증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료공급자·정부·보험자 등 의료주체 대표자들이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한국의료 4.0 시대를 열어가는 일은 요원하다.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의 5년 임기에 맞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대표주자들이 참여하는 한국의료발전위원회(가칭)를 구성, 불신의 벽을 헐어버리기 위한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과 한국의료의 발전을 위한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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