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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도입 배경과 성과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도입 배경과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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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2.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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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문태준(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 문태준(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상처로부터 점차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최하위 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에 불과했고 심한 빈부 격차와 의료비 상승·공공부분 의료기관 미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현대적인 의료 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다.

1970년대 초 전직 보건사회부 장관·도지사·의사출신 여당 국회의원 몇 명이 모여 '보건의료발전연구회'를 구성했고, 약 1년간의 현지답사와 각계 전문가들과의 협의를 통해 정책건의안을 작성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건의안의 내용은 시도립병원을 포함한 국·공립병원의 증설과 이들을 운영하기 위한 공사의 설립을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앞날을 대비해 전국민의료보험제도 도입을 건의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연구회는 1년 간의 검토를 거쳐 한국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구체안을 마련하여 대통령께 건의하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1) 원칙적으로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2)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개선에 따라 각 계층별로 점진적으로 적용 인구를 확대해 나간다
3) 취약한 병원시설(특히 지방의 시도립병원)에 투자를 증대하여 의료보험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현대화해 나간다
4) 의료보험수가 결정은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각계각층과 협의해서 조정해 나간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기관의 재정 담당 공무원들은 1인당 국민 소득이 1000달러에 지나지 않는 취약한 경제 기반에서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었다. 또 의사들은 의료보험제도가 채택될 경우 보건의료 정책 전체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좌우되어 의사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손상될 것을 우려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시행부터 1989년 성공적 출범까지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1977년 7월 한국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정부는 먼저 직장의료보험으로서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위주로 해서 적용범위를 정했고 고용자들이 보험료의 50%를 부담하도록 결정해 보험료 징수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안정적인 구조하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예방해 제도 실패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자 한 지혜를 볼 수 있다.

1979년 1월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편입했고, 1988년 7월에는 5인 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적용했다. 현재는 1인 근로자 사업장도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는 등 직장의료보험은 비교적 순탄하게 확대의 길을 걸어왔다.

반면 농어촌 지역 주민과 자영업자들을 주로 하는 지역의료보험은 확대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정확한 소득 파악의 어려움으로 인해 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설정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뒤로 하고 1981~1982년 시범사업을 거쳐 1988년 1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농어촌의료보험을 시작, 지역보험 확대의 큰 전기를 마련했다. 주목할 점은 보험료 납부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을 위해서 정부가 30%의 보험료를 보조하는 방침을 정해 즉각 시행함으로써 지역의료보험의 실패를 방지하고자 했던 점이다.

건강보험제도를 전국민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시의 자영업자를 포함시키는 문제였다. 당시 한국의 세금징수체제에 미흡한 점이 많았던 관계로 도시 자영업자의 약 70%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의료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데 있어 큰 난관으로 대두됐다.

1988년 12월 초 필자가 보건사회부 장관에 취임할 때 가장 큰 과제는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준비부족이라는 이유로 도시자영업자 보험 가입이 6개월 연기되고 있었다.

준비 과정에서 특히 심각했던 문제들은 조합주의 고수파와 통합파로 나누어진 정부 내부의 분열 양상이었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뿌리가 깊어서 장기간에 걸쳐 복잡한 문제를 야기했다. 당시 여당은 조합주의 유지, 야당은 통합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고 학계에서도 분열 조짐이 있었다.

단지 의협의 집행부는 수가인상에만 관심이 있어 어느 쪽이 의사들에 유리할 것인가 또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가까운가 하는 정책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에게 약속한 6개월의 시한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도시자영업자의 보험료 부과에 있어 구체적인 기준설정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소득세를 내는 인구는 대충 전체의 10% 미만이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소득에 비례하여 보험료를 부가하는 원칙에 입각하여 판단 기준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개인 소득 1000 달러 시대에서 각 국민의 정확한 소득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합주의 방식이 유리했던 점은 조합장과 직원들이 조합원의 생활형편이나 소득을 대강 알 수 있어 지나친 편중을 어느 정도 시정할 수 있었다. 또 대강의 기준에 의해 각 조합이 자율적으로 각 개인의 보험료를 산정하여도 조합원들에게 큰 물의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 도시 주민들은 정치적으로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직장의료보험에 비해 불만이나 민원제기도 많았지만 각 조합의 노력으로 이에 잘 대응해 왔다고 생각했다.

도시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매일 같이 심도있게 논의됐고 한편으로는 재정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했다.

또 전국민이 보험혜택을 받게 되기까지는 여러 난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지만 이를 가급적 빨리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부나 조합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고군분투해 나갔다.

조합 간 보험료 부담 및 급부 불형평은 조합주의의 단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더해 한정된 풀링(pooling)으로 인한 재정불안정 문제와 소득이전의 효과가 낮다는 문제도 있었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 각 조합 간 보험재정의 격차와 의료 이용·보험료 부과를 둘러싼 불형평성 문제로 단계적인 보험자 통합을 거쳐 2003년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이라는 단일보험자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보험자인 조합주의에서 단일 보험자인 통합주의로 변경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198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TV를 통해 오늘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어느 병원에 가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연설한 것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진료비가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고 진찰실에서 돌아서는 환자 및 환자 가족들의 축 늘어진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이 늘 의사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이를 건강보험제도의 도입과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서 일단 해결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30여년 간 의료기반 확대와 국민 건강 지표 등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다. 우선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1977년 가입자 1인당 0.1일에 불과하던 입원·내원일수가 2009년 기준으로 1.91일로 증가했고, 외래 내원일수 역시 1977년 0.7일에서 16.07일로 늘어났다.

의료기관 내원일당 진료비 역시 입원은 4만 1334원에서 12만 5131원으로, 외래는 6530원에서 1만 7998원으로 증가했다. 의료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의료공급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는데, 종합병원은 1980년 82곳이었던 것이 2009년에는 296곳으로 증가했고 병원의 대형화 현상도 두드러졌으며, 의원급 의료기관도 1980년 6363곳에서 2009년에는 2만 7036곳으로 증가했다.

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국민건강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은 각종 건강지표의 개선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대수명은 1960년에 52.4세로 OECD 평균인 68.37세보다 16년 정도 낮았으나, 2005년도에는 78.5세로 OECD 평균치에 도달했고,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OECD 국가의 2배에 달하던 영아사망률은 2002년 현재 출생 1000명당 5.3명으로 OECD 평균인 6.2명에 비해 낮은 수치를 나타내는 등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운영상 결함 공급자-정부 '파트너십'으로 풀어야

지난 30년 간에 걸친 건강보험의 운영을 살펴보면 아무리 건강보험의 사회적인 특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 제도 운영에서는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음은 숨길 수 없다. 공단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이제는 낭비를 막을 길이 없으며 불필요하게 방대한 인원에 대해 감축 노력이 보이지 않고 있어 과연 국민을 위한 보험인지 공단 직원들을 위한 보험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다른 나라의 건강보험에 비해 본인부담이 지나치게 높은 점에 대해서도 개선의 뜻이 없어 보이고 가입자의 혜택을 합리적으로 확대하는 데는 인색하다. 보험료 부담은 날로 늘어가지만 이에 비례한 혜택의 증가가 없다는 불만도 정당해 보인다.

보험자의 지배 구조가 날로 커지면서 공급자의 위상은 계속 약해지고 있다. 보통의 방법으로는 공급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고 있다. 공단과 공급자 단체 간의 균형 있는 '파트너십' 없이는 앞으로도 보험제도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단의 간부 인사를 보면 유능한 경영자를 기용하지 못하고 정치인으로 코드 인사를 하니 그 기구가 제대로 기능하기가 힘들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의료보험 재정 위기를 맞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이 위태롭고 더 악화되면 계속적으로 보험료를 상향조정하고 수가의 비합리적인 억제라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고 국민들의 저항과 불신이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의 구상과 실행단계에 참여하고 또 완성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역할을 한 필자로서는 현재의 상태에 대해 실망과 분노마저 느끼고 있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부와 충분한 논리와 전략으로 정부를 설득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의협 간의 '파트너십'에 장래를 기대해 본다. 또 국민도 이제는 보험가입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목소리를 내야할 때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의 과제로서 건강보험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보험료율은 5.64%로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고 건강보험재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담배에만 건강부담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에 더해 주류 등에 건강부담세를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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