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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건보제도, 환자 가치보다 우선할 수 있나"

법관 "건보제도, 환자 가치보다 우선할 수 있나"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11.1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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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대한의료법학회 학술대회서 임의비급여 집중 조명
"공단 요양급여비용 환수, 법 정밀성 떨어진다" 지적도

▲ 17일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추계학술대회. ⓒ의협신문 이은빈
"법령상 어느 것에도 포섭되지 않는 진료행위는 실제로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의비급여 문제의 출발점은, 규율과 현실상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현직 판사가 건강보험제도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치료를 위해 시행하는 이른바 '의학적 임의비급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며 규율 일변의 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건강보험 틀 안에 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조정·절차가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치료의 시급성상 불가피한 상황과 ▲의학적 필요성 ▲환자의 동의를 얻었다면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연경 판사(인천지법 부천지원)는 17일 대법원 회의실에서 임의비급여를 주제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치과의사 출신인 그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의무를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정도의 치료와 최선의 치료로 구분하면서 "기존 급여영역 진료에 대한 사후 통보에 있어서 평가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엄격한 통제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이윤 창출이 아닌, 월급을 받는 것에 불과한 대형병원 의사들마저도 삭감에 대해서는 억울하다고 말할 정도라는 것. 김 판사는 "임의비급여 문제는 공적으로 급여기준을 넓히거나, 사적 관계를 존중하는 선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포괄수가제·총액계약제로 문제 해결? 갑론을박

이날 토론에 앞서 '임의비급여 허용요건에 대한 검토' 발표를 맡은 박태신 변호사(건강보험심사평가원)는 "임의비급여가 전면적인 불허용에서 예외적인 허용으로 바뀌면서 허용요건에 대한 구체화가 매우 중요해졌다"면서 절차적·의학적·가입자 등의 동의로 나눠 세부 요건을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질병군별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 등으로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해 나간다면 임의비급여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판사는 "허용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은 임의비급여가 허용되면 건보체계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라면서 "건보제도 자체의 존치를 환자의 가치보다 우선한, 본말이 전도된 입장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포괄수가제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임의비급여 문제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포괄수가제는 질병에 대해서 내용과 상관없이 지불하는 제도로, 일부 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싼 치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임의비급여 금지, 명문 규정 없다" 일침

부당이득의 징수를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가 법 적용의 정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당 조항은 공단이 속임수나 그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 또는 요양기관으로부터, 이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송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서정)는 "건보공단의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은 침익적 행정처분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될 필요가 있다"면서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은 보험금 사기를 노린 진단서 위조 같은 사례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임의비급여를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건보법 관련 법령 및 고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임의비급여를 적정하게 규율하기 위해서는 해당 규정을 보완하거나, 별도의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준대로 vs 최선의 진료' 의사들의 딜레마

참석자들은 현행법상 금지된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취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제도로 정착되기를 주문했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변호사)는 "올바른 비교형량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생명의 위험이라는 구체적 위험에 직면해 있는 환자의 관점에 서야 한다"며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상 한계 앞에서 나의 생명, 가족의 생명 앞에 닥친 위험을 막아내고자 하는 몸짓은 입법적 결단 없이 행정부의 입맛대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필수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본플러스병원)는 "요양기준에만 맞춰 진료하는 의사와 최선의 진료를 추구하는 의사, 양쪽 다 비난 가능성이 있다. 임상의사들의 고뇌가 시작되는 부분"이라면서 "임의비급여의 경우 필요성과 안정성이 인정되면, 유효성을 넓혀 의사와 환자간 사적계약 영역을 넓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장을 맡은 이윤성 서울의대 교수 또한 "환자에 대한 진료를 과감하게 하는 의사가 점점 줄고 있다. 의학적 필요성을 입증하기가 힘들고 귀찮으니까, '그럼 나는 기준대로만 진료하겠다'고 하다가 의료사고가 나면 두들겨 맞는다"며 "의사들의 딜레마"라고 이를 표현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규범적으로는 아름다운 판결이지만, 일부 의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여지가 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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