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6 15:38 (화)
1차 의료기관의 존재 이유
1차 의료기관의 존재 이유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2.11.15 13:3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석 원장(현대중앙의원·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
1997년 봄부터 한 경제신문사와 공동으로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가 1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심층분석을 한 적이 있다. 그 와중인 11월에는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예정대로 1998년 4월에 발간된 맥킨지 보고서는 우리나라 경제 전망에 대한 3가지 전망을 내놓는다.

시나리오1은 근본적인 개혁을 전혀 추진하지 않는 경우로 당연히 경제성장은 둔화될 수 밖에 없다. 시나리오2는 제조업과 금융업을 중심으로 개혁을 하는 경우로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지고 경제 성장률도 다소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을 불러오고 따라서 실업률이 증가하게 된다. 정부는 실업수당을 부담해야 하고 계층간의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시나리오3은 서비스 부문의 개혁을 추가하여 소매유통, 소매금융, 통신과 같은 분야에서의 고용창출로 이어져 실업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 금융과 제조업의 발전은 눈부셔서 2007년 미국의 주택시장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전세계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경기는 침체되면서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나리오2의 양상을 보이면서 현재 유력한 대선 후보 3명이 모두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올리는 1조원의 매출에 투입되는 인원과 소규모 영세한 제조업체들이 합쳐서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필요한 인원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이마트가 1조원의 매출을 올릴 때와 동네 구멍가게로 불리는 영세 업체들이 1조원의 매출을 올릴 때의 인원을 생각해보면 실업률에 대한 기여도는 영세한 업체일수록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삼성전자나 이마트 같은 대형 업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경제를 리드해가는 대기업과 실업을 줄여주는 영세업체간의 균형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를 의료에 대입해보면 상위종합병원들이 1차 의료기관에서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을 책임져주기 때문에 1차 의료기관이 적절한 진료를 할 수 있는 순기능은 당연히 있지만, 총진료비가 1조가 넘는 단일 병원의 종사자 수와 1차 의료기관인 의원에서 같은 총진료비를 기록하는 의원들의 종사자 수를 비교해보면 영세규모의 의원들이 실업에 기여하는 효과가 훨씬 높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차 의료기관에서는 검사보다는 의사의 지식과 경험에 주로 의존해서 진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같은 질환을 진료하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인 진료를 할 수 있으며, 중환일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잘 선별하여 2차 혹은 3차 의료기관으로 보내기 때문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환자와 좀 더 많은 대화를 통해 병력을 들을 수 있고 치료 방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2차나 3차 의료기관이 하기 힘든 역할을 할 수 있다.

상식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그 동안 맥킨지 보고서의 시나리오2처럼 제조업과 금융업의 개혁에 치중하여 우리 경제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수준으로 올려 놓았듯 의료 분야에서도 상위종합병원 위주로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서이다.

연구중심병원, 권역외상센터 지정과 같은 최상위급 병원의 육성을 통하여 한국 의료의 질을 높이게 되면 1차 의료기관에서도 마음 놓고 환자를 의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그 수혜를 보게 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수가 인상, 각종 규제의 강화 그리고 의사에게 불리한 보도를 강조하는 언론의 잘못된 프레임들이 결합하여 1차 의료가 서서히 붕괴될 경우 그 피해는 의사에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개되는 유태인의 격언인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도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비용효율적인 측면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비용효율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오히려 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효율은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의료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진료의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외적인 규제에는 잘 따르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를 외부의 입장에서 보면 고집불통의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와 정책당국은 어느 분야보다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하여 견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금년에 태풍 볼라벤이 불면서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의 가지가 2007년, 2010년에 이어 다시 부러졌다는 안타까운 보도가 있었다. 만일 정이품송이 숲 속에 있었어도 이런 피해를 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풀(1차 의료기관)과 작은 나무들(2차 의료기관) 그리고 정이품송 같은 멋진 나무들(3차 의료기관)이 잘 어울려지는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