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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행정 독립해야 산다
보건행정 독립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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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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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찬(서울 도봉구·신동아의원원장)

▲ 신종찬(서울 도봉구·신동아의원원장)
요즘 주말이면 들풀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들길을 걷고 있다. 그때마다 맑고 푸른 우리의 가을하늘이 세계의 자랑거리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낮은 수가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건강보험제도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이 건강보험제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주축인 의료계가 전례없는 안팎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현장을 잘 모르면서 행하는 행정조치는 가혹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며칠 전 우연히 정부 요로에 있는 지인에게 의료계의 어려운 실상을 토로할 기회가 있었다. 어려운 실상의 한 예로 진단용 흉부 X선 사진촬영을 들었다. 사진관에서 명함판 사진 6매를 찍으면 3만 원 정도이지만, 이보다 10배도 더 큰 원판사진인 흉부 X선 1매 값이 촬영비·필름값과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판독료를 합해 6800원에 불과해 찍으면 찍을수록 손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손해를 만회하려 병원들이 앞다퉈 CT를 비롯한 고가의 장비를 동원하면서 건강보험 지출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지인은 "그런데 왜 수험생들이 기를 쓰고 의대에 가려하느냐"면서 "열심히 하는 개원의사라면 월평균 수입이 2000만 원 정도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런 인식을 기초로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의사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시대에 주 6일을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해도 의사 1인당 순수입이 2000만 원에 이르는 의원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 전례없이 높은 의원 폐업률이 이를 증명한다. 건강보험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의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비보험진료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진료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응급실 환자를 전문의가 진료하게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도 탁상공론의 전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인력이나 건강보험재정 수준으로 모든 응급실 환자를 전문의가 진료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인은 이러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공무원 집단의 특성상 한 번 잡은 통제권을 절대 놓으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인은 또 최근에 왜 보건당국과 의료계가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정부수립 이후 의료정책은 의사당연직인 보건복지부 의정국과 보건국에서 주도해 왔다. 의약분업 사태 때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자 의료계는 괘씸죄에 걸려들었다. 당시 정부는 의사당연직인 두 자리를 폐지하고 보건의료정책실을 신설해 일반행정직을 임명했다. 의료전문가인 의사는 의료정책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이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거라고 답했다.
보건복지부의 전신인 보건사회부는 보건부와 복지부를 합해 만들었다. 이후 보건복지부(보건사회부) 장관은 의사가 아닐 때도 많았지만 적어도 서열 2위인 차관이나 3위인 기획관리실장은 의사로 보직했다. 하지만 의약분업 사태 이후 의사당연직 국장자리가 폐지되면서 의사공무원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보건복지부 본청에서 질병관리본부로 밀려난 애처로운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의사에게 의료정책을 맡기면 의사만 위할 것이라며 우려하는 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국방부의 중요한 보직을 군인이나 군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군인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의료정책 담당자에 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마치 법무부의 법무행정을 행정직이 맡아보는 것과 같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의사가 행정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렇다면 세계보건기구에서 훌륭한 수장이었던 이종욱 박사를 비롯한 여러 한국인 의사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거 보건사회부 의료정책 담당자라고 하면 WHO에서도 인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직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은 불가능하다.

과거 보건복지부 내에 약정국장 한 자리만 있었던 약사출신들에게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독립시켜 청장을 약사출신으로 임명하고 있다. 의사가 약사보다 1.5배가 더 많고, 건강보험 재정도 몇 배 더 많이 차지하는 의료행정의 가중치를 고려하면 이미 보건청이라도 설치했어야 했다.

의사의 1/10 정도인 한의계를 위해 국장급인 한방정책관까지 설치한 점을 미뤄볼 때 직역간의 형평성을 감안하더라도 보건행정을 독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유독 의료정책 분야만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광복 이후 50여 년간 의사출신 행정가들이 6·25 한국전쟁을 비롯한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평균수명을 올리고, 전염병을 퇴치하며 보건의료 선진국으로 만들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히 앞으로 의료행정 분야에서는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 등 의학적 전문지식의 필요성이 점점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반행정관료의 직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선진국처럼 서둘러 보건부를 부활해야 할 것이다.

의협은 의료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보건부 독립을 위해 논리를 개발하고, 연구할 수 있는 의료정책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와 정치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의료계는 인류봉사를 위해 모인 집단답게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에 앞장서고. 사회적 현안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당당히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또한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으로 지혜를 모아 의료계의 주장이 단지 의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설득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훌륭한 인재들이 의료계에 진출하고 있다. 후학들에게 치료할 수 있는 기술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스스로 조성할 수 있도록 인문학에 더욱 많은 비중을 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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