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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수술 첫 소송 초읽기…"국가도 책임" 주장

카바수술 첫 소송 초읽기…"국가도 책임" 주장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11.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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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 고령 걱정하는 보호자에 "70세면 청년" 수술 적극 권유
의사 재량 남용·환자 자기결정권 침해 등 민·형사 손배 청구 예정

▲ 3일 일본에 생중계된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 장면. 건대병원측은 논란이 불거지자 '새로운 동맥판막 성형술'이라고 명칭을 바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성형술(카바수술)을 둘러싼 첫 법정 공방이 임박했다.

수술 일주일만에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이 집도의와 병원,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선포한 것. 유족은 빠르면 이달 12일께 소송대리인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카바수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논란은 수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의료과오 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숱한 논쟁이 종식될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드민턴 즐기던 길씨는 어떻게 카바수술 택했나= 지역 체육회 사무국장 길정진(70) 씨는 2007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심방세동 진단을 받은 후 와파린을 복용하면서 건강을 관리했다.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길씨는 평소 배드민턴을 2시간씩 칠 정도로 양호한 건강상태를 유지했다.

송명근 교수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한 이는 길씨의 큰 딸인 한숙씨. 길씨는 송 교수 영입 광고를 건국대병원에서 본 딸의 권유로 2008년 병원을 옮겼다.

이후 길씨는 송명근 교수로부터 2010년, 2012년 두 번에 걸쳐 수술을 권유 받고 수술 결심을 굳히게 됐다. 와파린 복용으로 피부가 얇아지고 쉽게 멍이드는 부작용으로 고민하던 그에게 송 교수가 "약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며 설득했기 때문.

수술을 앞두고 둘째 딸 윤진씨가 "70세가 넘은 아버지가 힘든 수술을 꼭 해야만 되겠냐"고 묻자 송 교수는 "요즘 평균 연령이 93세에서 94세다. 앞으로 20년이나 남았는데 지금은 청년"이라고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그에게 "의료보험이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말도 덧붙였다.

◆"잘됐다"던 수술 7일만에…= 송 교수는 9월 19일 6시간 12분에 걸쳐 승모판막·대동맥판막·상행대동맥 랩핑·메이즈 등 4가지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이 잘됐다"고 했지만, 길씨는 3일 후부터 심한 복부통증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보행연습을 시키면서 핫팩, 좌약, 관장 등의 처치를 반복했다.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24일 오전 복부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장폐색 소견이 나왔다.

"칼로 배를 찌르는 것 같다"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길씨에게 높은 강도의 진통제가 투여됐다. 진통제는 반응하지 않았다. 상황이 긴박해졌다. 알러지 반응 검사 없이 조영제를 넣고, CT 검사를 위해 이동하던 중 쇼크가 왔다.

길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26일 사망했다. CT 판독 결과 사인은 심장수술 후 발생한 급성 장간막경색. 유족들은 "의료보험이 된다"는 송 교수의 말과 달리 고인의 대동맥근부 안쪽과 바깥쪽에 끼운 링 가격 200여만 원을 포함한 1700여만 원을 치료비로 부담했다.

◆경위에서 드러난 법적 쟁점= 사건의 핵심은 길씨가 카바수술의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경증 환자였다는 것이다. 같은 병원 심장내과 협진 결과서에서 동료교수는 길씨의 판막역류 상태는 경증으로, "약물로 환자 증상을 보면서 경과를 관찰할 수 있다"고 썼다.

와파린을 장기간 복용한 환자에게 긴 수술을 감행할 경우 출혈 위험성으로 인한 혈전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의학적 상식에 속한다. 고령의 와파린 복용환자로, 동맥경화나 혈전 발생 가능성이 있던 고인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을 함으로써 위험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1-55호에 따르면, 카바수술을 인정하는 기준은 대동맥 판막이나 대동맥 근부 질환에 의해 중증의 만성 대동맥판막폐쇄부전이 진단된 환자로, 유의한 좌심실 확장이 있거나 좌심실 구혈률이 50%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유족측 소송대리인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송 교수가 이번 사건에서 적응증 문제를 극복하려면, 2011년 7월 카바수술관리위원회에서 규정한 전향적 연구대상에 고인이 해당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될 것"이라며 "애초부터 적응증이 맞지 않았다. 의사의 재량권 남용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 막지 않은 대한민국도 책임"= 유족측은 송명근 교수가 수술과 비수술적 요법, 카바수술과 판막치환술에 대한 장단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사로서의 설명의무를 위반하고, 유명세를 이용한 허위광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는 카바수술에 대한 조건부 비급여 기간이 끝났음에도 이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국가의 책임도 물을 전망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가 의료법상 신의료기술 평가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발생한 사고이므로, 병원측과 더불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는 논리다.

이는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카바수술을 적극적으로 중지하지 않는 정부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온 대한흉부외과학회와 대한심장학회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앞서 두 학회는 2011년 각각 성명을 발표해 "여러 경로를 통해 경고를 보낸 전문가 집단의 만류에도 불구, 카바수술을 지속할 경우 이로 인한 책임은 관할 주무 관청과 송 교수 본인에게 있다"면서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일반 국민과 환자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즉시 수술 중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대측 '침묵'…홍보자료서 카바수술 명칭 삭제= 현재 건국대병원은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있다. 송 교수가 유족측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상세한 진료기록을 언급해야 하는데, 환자 정보 유출로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언론을 통해 소식이 일부 알려지자 같은 내용을 다룬 두 가지 관련 보도자료를 카바수술 명칭만 바꿔 내보냈다. 10월 22일 병원 홍보팀은 "카바(CARVAR) 수술의 일본과 중국 진출 구체화"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자료에서 병원은 "카바수술의 일본과 중국 진출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며 11월 3~4일 일본 고베에서 개최되는 CCT 학회에서 카바수술 실시간 생중계를 통해 일본의 흉부외과 및 심장혈관 전문의사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일정을 소개했다.

그러나 5일 병원이 보낸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에서 '카바수술'이란 용어는 자취를 감췄다.

병원은 "건국대병원에서 송명근 교수의 '새로운 동맥판막 성형술'에 대한 수술 전 과정이 일본 심장혈관학회 현장에 실시간을 생중계되는 수술시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며 송 교수가 고안한 수술을 시종일관 '새로운 동맥판막 성형술'이라고 지칭했다.

앞서 병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카바링을 사용했다고 모두 카바수술로 봐서는 안된다며 길씨가 받은 수술은 카바수술이 아닌, 대동맥판막성형술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병원 관계자는 "사망환자에 대해서는 애석하고 안타깝지만,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합법적으로 해명하고 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정확히 해명하겠다는 게 송 교수의 입장"이라면서 "지금껏 대동맥 판막질환에서 442명을 수술했는데, 이번이 첫 사망자임을 고려하면 수술사망률 0.2% 남짓이다. 이는 기존 판막치환술 사망률에 비해 굉장히 좋은 성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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