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진료실이 제겐 큰우주 입니다"
"작은 진료실이 제겐 큰우주 입니다"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2.11.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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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휘 성애병원 PET-CT센터 소장(대한핵의학회 명예회장)

"많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끌어 내, 문제를 풀려고 애쓰는 이 작고 아담한 연구실이 나에겐 한없이 자유롭고, 값진 공간 입니다"

박용휘 성애병원 PET-CT센터 소장(대한핵의학회 명예회장)이 최근 슈프링어에서 <Combined Scintigraphic and Radiographic Diagnosis of Bone and Joint Diseases> 네 번째 개정판을 펴냈다.

1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출판사 슈프링어는 과학·의학·경제학·공학·건축학·교통·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간 1450종류의 저널과 5000권에 달하는 책을 발행하고 있다. 올해까지 203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슈프링어를 통해 저서를 출판했을 정도로 질적인 면에서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 권을 내기도 벅찬 그 출판사에서 세 번이나 개정판을 내기는 쉽지 않다. 비결이 궁금했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터를 잡고 있는 성애병원으로 발길을 잡았다.

▲ 성애병원 PET-CT센터 연구실은 박용휘 명예회장이 연구의 상상력을 펴는 공간이다. ⓒ의협신문 송성철
해부학적 변화 뿐 아닌 생화학적 변화까지 정밀하게 진단
박 명예회장은 1962년 가톨릭의대에 부임, 1995년 정년을 맞을 때까지 가톨릭대 대학원장·대한방사선의학회장·대한핵의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과 의학 발전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 정년 이후 1999년부터 성애병원에서 여전히 왕성한 진료와 연구 그리고 전공의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진료실이자 연구실로 쓰이는 박 명예회장의 방문을 여니 책장과 책상 위에 빼곡히 꽂혀 있는 희귀한 필름과 책들이 연대별로, 때로는 주제별로 가지런히 도열해 있다.

"40년 전에 핀홀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슈프링어 출판사에서 1994년 초판을 냈고, 2000년 2판을, 2006년 3판 개정판을 냈습니다. 이번에 4판을 냈으니 18년 만에 드디어 개정판을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방금 독일에서 도착했다는 따끈따끈한 영문판 교과서를 받아드니 부피부터 묵직했다. 문득 괴테의 <파우스트> 생각이 떠올랐다. 괴테(1749∼1832)는 1771년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해 60년 뒤인 1831년에 집필을 끝냈다고 한다. 60년 동안 그 산문시(散文詩) 형식의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수 없이 거듭한 끝에 죽기 한 해 전에야 완성한 대작이 바로 <파우스트>다.

"지난 2년을 꼬박 매달렸습니다. 3판을 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음 판은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나와 개정을 해야 할 필요성에 떠밀려, 쉬엄쉬엄 일을 하다보니 이렇게 제 4판을 내게 됐습니다."

1930년생 말띠, 올해 82세. 미수(米壽)를 넘긴 나이지만 박 명예교수는 "공부하는데 나이는 결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박 명예회장이 40년 넘게 매진해온 연구 테마는 감마카메라에 '핀홀'(바늘구멍 조준기)을 단 '새로운 핵의학 영상진단법'. 박 명예회장은 핀홀을 부착한 감마카메라를 이용, 해부학적 변화를 포착하던 것에 머물던 핵의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시적 차원에서 생화학적 변화와 함께 파악할 수 있는 특유한 방법을 찾아냈다.

핵의학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헨리 니콜라스 와그너 미국 존스홉킨스의과대학 명예교수(한 달 전 작고)는 이 책 서언에서 박 명예교수의 연구 성과와 내용에 대해 "핵의학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업적"이라며 "골격계 영상진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연구와 저술을 해낸 학자"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골절인지 염증인지 감별진단이 어려웠지만 감마교정법을 활용하면 골절과 종양은 물론 골 타박을 비롯해 부종·출혈 등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며 "고가의 MRI나 MDCT를 찍어야만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감마카메라를 이용해 0.2㎜까지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싼 장비를 들여놓을 수 없는 개발도상국 의료진들과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박용휘 명예회장의 핀홀 관련 연구를 처음 소개한 슈프링어 출판사의 1994년 초판(왼쪽)과 18년 만에 집필을 마치고 최근 빛을 본 제4판. 아직 국내에는 출판되지 않았다.
연구결과 퇴짜 맞기도…시련 딪고 도전한 끝에 '결실'
박 명예교수는 1962년 한국 의학자로는 처음으로 <Radiology>에, 그리고 1984년에는 <Journal of Nuclear Medicine>에 논문을 발표한 주인공.

하지만 한국영상의학을 세계로 알리는데 앞장선 박 명예교수의 젊은 날은 그야말로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1990년 즈음에 신티스캔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연구결과를 모아 미국의 한 출판사에 출판을 제의했으나 퇴짜를 맞았습니다. 미국 교수와 공저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건을 붙이더군요."

좌절해 있던 한국의 핵의학자에게 미국의 와그너 교수, 영국의 브리튼 교수, 일본의 다마끼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다. 더 힘내서 추진하라"고 격려했다.

다시 용기를 낸 박 명예교수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94년 국내 의학자로는 처음 슈프링어에서 <Combined Scintigraphic and Radiographic Diagnosis of Bone and Joint Disease>를 출판했다. 핀홀 연구의 싹이 트는 순간이었다.

이후 박 명예교수는 슈프링어에서만 <Nuclear Imaging of the Chest>(1997년), <Molecular Nulcear Medicine: The Challenge from Genomics and Proteomics to Clinical Practice>(2003년)를 비롯해 개정판까지 모두 6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슈프링어는 지난 2009년 박 명예교수의 활발한 집필활동과 세계적 연구업적을 인정, 명예고문으로 위촉했다. 아시아 의학자로는 처음 있는 일. 슈프링어는 박 명예교수의 제 4판을 전자책(e-book)으로 만들어 영구 보존키로 했다.

"한국의 유능한 핵의학계 젊은 교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열심히 논문을 발표하고,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환자의 고통과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박 명예회장은 "새로운 차원의 해부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핵의학을 향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 정진해 나가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많은 분들의 고매한 배려로 아직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어 깊이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감마카메라에 핀홀(바늘구멍 조준기)을 부착, 새로운 '핵의학 영상'을 구현한 박용휘 명예회장. 1970년대에 시작한 핀홀 연구는 장장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의협신문 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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