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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칼팍 공화국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카라칼팍 공화국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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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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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 성형외과 전공의 3년차 이재준

▲ 건국대병원 성형외과 의료진이 구순구개열 수술을 하고 있다.

카라칼팍 공화국의 초청으로 '프렌즈' 라는 의료봉사단체와 함께 건국대학교병원 성형외과 엄기일 교수님을 따라서 해외 의료봉사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카라칼팍 공화국은 우즈베키스탄의 자치공화국으로, 아랄해 끝자락에 위치한 유목민과 어부가 다수인 인구 130만명의 작은 이슬람 국가이다. 경제·환경·의료·교육 모든 면에서 낙후된 곳으로 현재도 주변 여러나라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의료봉사 팀은 2012.10.01∼10.08 일정으로 성형외과·내과·치과·한방을 진료과목으로 하고 의사·간호사·일반스탭 총 36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성형외과 팀은 구순구개열 수술을 위하여 건국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엄기일 교수님 이하 전공의 2명(4년차 김지남, 3년차 이재준), 간호사 2명과 박진석 성형외과 원장님인 박진석 선생님과 간호사 3명으로 구성하였다.

2009년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 방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해보는 해외 의료봉사이고 가는 곳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의 마음을 안고 그 곳으로 향하였다. 한국시간으로 2012년 10월 1일 오후 5시 30분 비행기로 떠난 우리는 8시간 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1박 후 다음날 이른 새벽 다시 우즈베키스탄 국내선 비행기로 2시간 걸려서 카라칼팍 공화국의 수도, 누쿠스에 도착하였다. 공항과 숙소를 오가는 동안 진료에 필요한 재료 및 도구를 담은 100 꾸러미가 넘는 짐들을 싣고 나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니, 미리 연락을 받은 카라칼팍 공화국의 보건 복지부 차관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 현지 취재진들의 환대 속에 무사히 배정된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차안에서 바라본 도시의 첫 인상은 황량하고 메마른 땅이었다. 무리한 댐 건설로 아랄해가 1960년대의 1/5 수준으로 줄어들고, 염도가 일반 해수의 3배로 늘어나면서 먹을 물조차 부족해졌다고 하니 이 곳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고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숙소는 현재 방학 중인 현지 대학교의 기숙사를 이용하였고,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 식사 후 우리가 수술을 할 '국립응급병원'에 도착하였는데 낙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시설면에서나 위생면에서 모든 게 상상 이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수술방 시설 및 구조, 병동을 둘러 본 후 우리 성형외과 팀은 바로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만나볼 수가 있었는데 미리 연락을 받은 환자와 보호자들로 병원 복도가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환자들은 생후 수 개월 된 아기에서부터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다양했다. 구순구개열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고 이미 많이 성장한 아이들을 보니 시작부터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이 있어 모든 이들을 수술해 줄 수 없었기에 환자 선별을 해야만 했다. 이번 방문에는 현지 병원에서 수술실 3개 중 2개를 우리 성형외과 팀에게 열어주는 배려를 해주었기 때문에 수술시간을 고려하여 5일간 최대 34 케이스 정도의 수술만이 가능하다고 보았기에 환자 선별 기준에 있어 나이와 일차 수술을 우선시하여 일단 첫 3일째까지 20케이스의 일정을 예약하고 첫 수술을 위하여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마취과 의사가 교수님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통역해주는 분한테 들으니 예전에 수술한 환자들의 결과가 너무 좋아서 이 병원 의사들에게 교수님이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그렇게 첫날 4케이스 수술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아직도 환자와 보호자들 수 십명이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또 그들을 일일이 다 상담을 하고 저녁 9시경에야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 현지 환자·보호자들과 찍은 단체 사진.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서 병동 회진을 돌고 전날 수술 받은 환자들의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회진 도중에 수술을 받은 환아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기뻐하던 어머니들의 그 표정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회진을 마치고 총 8케이스의 수술을 하였는데 낙후된 장비들로 어떻게 수술이 될까 내심 걱정도 했지만 박진석 선생님께서 수술실 에어컨, 석션기, 소아용 펄스옥시미터 등 수술에 필요한 여러 의료 장비들을 병원에 기부해 주신 덕에 별 탈 없이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박 선생님께서는 자비를 들여서 매해 이 곳에 와서 의료 봉사를 하시고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신다고 하니 참으로 훌륭하시고 우리가 배우고 본 받을 의사의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또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 상담을 하며 마지막 날까지의 14케이스의 모든 스케쥴이 꽉 찼고, 혹시 수술이 취소되는 경우나 일찍 끝나는 경우가 있을지 몰라 3~4명 정도는 예비 명단에 올려 놓았다.

상담 중에는 수술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과거에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온 이들도 있었다.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남아있었지만 제한된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해 줄 수 없음을 환자들에게 설명해주며 내년에 꼭 첫날 제일 일찍 오라며 아이와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환자의 마음까지 생각하는 따뜻한 의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7시 경까지 쉴 새 없이 예비 명단에 있는 한 명이라도 더 수술해주기 위하여 모두 열심히 일하였고 5일간 구순열 18, 구개열 17, 합지증 2, 총 37 케이스의 수술을 시행하였다. 5일째가 되자 팀원들도 한두 명씩 아픈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계획했던 마지막 수술을 모두 마치자 체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느꼈다.

그런데 수술실 문 밖에서 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예비 명단에 올렸지만 수술을 받지 못한 4개월 된 미세구순열 환아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계속 제발 수술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였고, 교수님께서도 평소에 알고 있던,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병원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와 같은 지극한 정성에 감동을 받으셨는지 마취과 의사에게 협조를 구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수술을 해주자고 하셨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현지에서 계획한 수술을 모두 마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짓 발짓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았던 병원의 의료진들과 함께 기념 사진촬영을 하고 수술한 환자들의 앞으로의 치료 방법과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병원에서의 짐을 모두 싸고 나가는 길에 병원 문밖에는 환자 보호자들이 수술한 아이들을 안고 우리에게 한국말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모두 외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우리는 코끝이 찡해오며 한동안 발걸음을 쉽게 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최하는 저녁 만찬이 있었다. 거기에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위가 높은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보건복지부 장관 및 차관 등 주요 인사가 참석하여 우리 봉사 팀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팀장님에 따르면 매해 올 때마다 대우가 좋아진다고 한다.

많은 국가들이 봉사활동을 다녀가고 있는 곳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여서 타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 처음에는 봉사 팀에 경찰을 붙여서 24시간 감시하고 협조도 잘 안 해 주었는데 이제는 협조도 잘 해주고 먼저 필요한 건 없는지 도와주려고 하는데 이것은 성형외과 팀 에서 수술을 잘 해준 역할이 제일 크다고 말씀해 주셔서 이 팀의 일원인 것이 내심 뿌듯했다. 만찬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려야 했다.

카라칼팍 공화국의 누쿠스에 머문 기간 동안 37케이스의 수술 환자 중 수술부위의 합병증은 없었고 처음 계획했던 환자 중 2명이 한명은 체중미달로, 한명은 수술전 검사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이 발견되어 취소되었지만 예비환자까지 모두 수술을 해주었다. 현지에 성형외과가 발달하지 못하여서 그런지 상담시간에는 제 시기에 수술을 받지 못하여 혹은 수술을 받았으나 합병증이 발생하여 이차 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이 수십 명이 넘었으나 시간상의 부족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여 해줄 수밖에 없음에 안타까움이 컸다.

의료봉사활동이 처음인 나에겐 짧은 시간이나마 참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아쉬운 점은 내가 너무 '일'만 하다 온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물론 빡빡한 일정이라 여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넓은 시야로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도 필요했다는 점을 반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양 쪽 수술실을 오가며 쉴 새 없이, 한국에서와 똑같이 모든 환자에게 완벽하게 열정적으로 수술을 하고 수술이 끝나고 비는 시간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 일일이 알아들 때까지 상담을 해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심신이 피로함에 불구하고 일일이 하나씩 가르쳐 주신 교수님에 대한 따뜻한 스승애를 느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느낀 것이지만 이전과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것만 같은 나의 마음가짐은 뭐라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성숙해진 느낌을 받을 수가 있고, 나에겐 어떤 여행보다도 둘도 없는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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