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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10:04 (금)
"아들까지 팔아 부당청구를 했다고?"

"아들까지 팔아 부당청구를 했다고?"

  • 조명덕 기자 mdcho@doctorsnews.co.kr
  • 승인 2012.10.0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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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영암 C원장 유족들..."억울한 죽음 다시는 없어야"
8월에 심평원에서 '처분없음' 유선상 알려줘..사전통보는 미시행

9월 26일 전남 영암에서 S의원을 운영하던 C원장이 자살한 사건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30년 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2시간을 꼬박 환자만 보던 의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일까?

기자는 10월 2일 C원장의 부인과 아들 그리고 처남ㆍ처제 등 유족을 만나 이번 사건의 배경을 들어봤다. 다음은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사건은 올해 6월 보건복지부ㆍ국민건강보험공단ㆍ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직원 4명으로 구성된 현지조사단이 S의원에 들이닥치면서 시작됐다. 공단 영암장흥지사의 의뢰로 현지조사를 나온 이들은 이미 2010년 실사를 마친 사안에 대해 2년 후 다시 현지조사를 하며 C원장에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으며 부당청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부당청구를 인정하면 내가 도둑놈이 되는 것 아니냐"며 결백을 주장했던 C원장은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노이로제에 시달리다 급기야 9월 23일 친구가 운영하던 목포의 한 병원에 부인과 함께 입원해 신경안정제를 처방받는 등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유족들은 서울의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으나, C원장은 자신의 병원과 멀지 않은 목포를 선택할 정도로 환자를 걱정하고 살았다.

9월25일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C원장은 그날밤 "혼자 생각할 것이 있다"며 부인 등 가족을 내보내고 이튿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평소 C원장은 "명예회복 좀 해달라" "영암공단 직원들 징그럽다"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등 유언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자주 했다.

C원장이 특히 극심한 충격을 받은 것은 현지조사단이 C원장의 병원에 두고간 현지조사의뢰서 때문이었다. 실수로 떨어뜨린 것인지, 고의로 놓고 간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서류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우선 2010년 당시 함평의 모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C원장 아들의 진료에 대한 부당청구 건이다.

기숙사생활을 하던 아들은 평소 비염을 앓고 있었고 매주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조사단측이 문제 삼은 것은 오전 7시대에 이루어진 아들의 진료시간이다.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생이 그 시간에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매주 조카를 데리러 함평의 학교에 갔던 C원장의 처남에 따르면 "토요일 오전 6시 학교에서 출발하면, 7시전에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C원장은 아들의 진료내역을 진료기록부 외에 별도의 표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다. 소송을 위한 준비라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 표에 따르면 조사단측이 허위진료가 이루어진 날이라고 주장하는 날 가운데는 아들이 다니던 학교의 개교기념일이나 수학능력 시험일 등 수업이 없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포함돼 있다.

조사단측은 또 아들이 다니던 학교의 담임과 보건교사와의 통화를 통해 얻은 "특별히 아픈 적이 없다"는 증언을 제시했지만, 유족들은 "중증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잘 모르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C원장은 '아들을 팔아 부당청구를 했다'는 누명에 특히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측이 지적하는 또 다른 부당청구는 2010년 설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5일 오전 8~9시 사이에 C원장의 가족과 친지ㆍ지인들과 담합해 허위진료를 하고 증일청구를 했다는 주장이다. 유족들이 제시한 이 시간 외래환자 목록에 따르면 이 시간 진료한 39명의 환자 가운데 친인척이 7명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설 연휴를 맞아 영암에 내려와 있었고 실제 진료한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유족들은 이와 함께 "친인척이 모두 40명 가까이 되는데 허위진료를 하고자 했다면 7명 뿐이겠느냐"고 항변했다.

한편 조사단이 두고간 현지조사의뢰서에는 조사단측이 조사 당시 구두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C원장의 부인이 요양시설의 보호사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시설의 노인환자에 대한 유인행위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본 C원장의 부인은 즉시 공단 영암지사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지사의 직원이 직접 병원을 방문해 "없던 일로 하자"며 서둘러 무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본인부담금수납대장이 없다며 제시하지 않았다"는 조사단측 지적에 대해서도 유족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조사단은 시종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처가 식구들을 위해 의사면허를 땄냐"는 등의 발언으로 C원장에게 모욕감을 안긴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C원장이 자살하기전 부터 이미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사결과를 통보받으면 바로 소송에 들어가기로 하고 조사단에 참여한 심평원 직원에게 빠른 통보를 요청하는 등 연락을 취해왔으나, C원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진 후 심평원 직원과의 연락은 두절된 상태다. 이 심평원 직원은 그동안 "법적 소송으로는 가지말고, 그냥 부당청구 금액을 줘버려라"라고 말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증언이다.

C원장은 하루 1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했으며, 이 가운데 60~70명 정도의 노인환자는 날마다 S의원을 찾고 있었다. 오전 7시 이전에 병원문을 연 것도 영암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벽 첫차로 찾아오는 노인환자들을 병원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족측의 전언이다. C원장은 평소 자녀들에게도 "의사가 돼라"고 말할 정도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현지조사 이후 "절대 의사는 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의사들은 약하다. 진료실에서 환자만 보고 사회생활을 모르던 의사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만 보고 선량한 의사를 죄인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이같은 사건이 다시는 재연되서는 안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본지가 심평원과 공단에 C 원장사건과 관련 문의한 결과 2년전 공단 영암지사에서 현지확인을 의뢰했으나 자료 불충분으로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 불가회신을 보낸 바 있으며, 올해 현지조사를 재의뢰해 6월에 현지조사가 시행됐다. 조사는 6월20일~28일 총 3년치 자료를 조사했으며, 가족진료 허위청구로  380여 만원이 확인됐으나 금액이 미미해 8월 심평원에서 C원장에게 유선으로 처분없음을 알려줬으며, 사전통지는 미 시행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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