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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 회장 "의사 자율정화가 중요한 이유는..."

노환규 회장 "의사 자율정화가 중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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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1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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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윤리성·투명성은 시대적 요구...미국 의사면허국 '타산지석'

▲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의협신문 김선경
최근 마취제 등을 주사한 환자가 사망하자 의사가 그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는 마취상태인 환자를 의사가 성폭행하는 범죄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의사가 성범죄 등 강력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회에서는 관련법 개정안도 몇몇 국회의원님들에 의해 발의되었습니다. 아마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공감을 표하실 것이고, 다소나마 위안이라고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또한 의사들에게는 고도의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내가 아니면 내 가족이 아플 때, 무기력한 내 몸과 내 가족의 몸을 전적으로 맡겨야 하는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사회적 물의를 빚는 행위가 사라질까요?

국민들은 의사를 신뢰하고, 마음속에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의사에게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의심, 즉 의사가 내 몸을 추행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의심이 눈 녹듯이 사라질까요? 정답은 '글쎄요' 입니다. 설사 국민들께서 그렇다고 대답하셔도 의사들 입장에서 봤을 땐 더더욱 '글쎄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일까요? 왜 의사들은 이처럼 비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글쎄요'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의사는 어쩔 수 없이 환자와 신체적 접촉을 할 수 밖에 없는 직업군이라는 점과 의료행위의 경우 어떤 것이 정당한 의료행위인지 어떤 것이 의료행위를 빙자한 범죄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특수성이 있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실제 환자와의 신체 접촉이 빈번한 산부인과 등에서는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하기 위한 환자의 악의적인 주장에 의해 의사가 강제추행죄의 혐의를 받고 고초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또한 그 반대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의사가 환자에게 성추행을 했으나, 이것이 정당한 의료행위라고 주장하며 빠져나가는 것이지요.

정당한 의료행위, 누가 가려낼 수 있나?

아시는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이를 구별하는 역할을 법조인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전혀 문외한인 법조인들이 이를 가려낼 수 있을까요? 어떤 행위가 정당한 의료행위이고 어떤 행위가 범죄행위인지를 한 치의 억울함 없이 말입니다. 이는 저희가 법조인이라는 고도로 숙련된 직업군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의료행위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니 오해는 말아 주시구요.

우리나라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기술이 있는데 그 신기술이 옛날 의료 기술보다 오히려 환자의 예후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면? 또는 신기술이라 포장되어 있는 어떤 의료행위가 실제는 옛날 의료행위와 별반 차이가 없고 허위, 과장광고만 남발되고 있다면? 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 의학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는 많이 발생하고 있는 문제겠지요?

이처럼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의료현장에서는 수시로 일어납니다. 물론 그 때마다 법에 호소합니다만, 그분들은 법의 전문가이지 의료에 있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무위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란 옛말처럼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부분을 건드려 버리기도 합니다. 의료계는 이러한 부작용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의 비윤리성에 대한 판단을 검·경찰 그리고 판사가 아닌 같은 동료인 의사들이 담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느 선진국들처럼 말이죠. 이것을 PEER REVIEW 제도(동료 감시)라고 합니다.

미국 의사들의 내부 규율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복부통증 환자에게 검진을 실시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검진결과에 대해서 문서화하지 않은 의사에게 벌금과 3년간에 걸친 윤리교육 이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또 나이 많은 요양환자에게 진행 중인 설사병, 구토 및 세균감염에 따른 이차적인 복부통증을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은 의사는 1000불의 벌금과 교육 명령을 받았습니다.

또 웹사이트에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사실을 왜곡한 광고를 게재한 의사에게는 5000불의 벌금과 20시간의 교육 이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의사 내부의 자율징계가 필요한 이유를 잘 드러내는 사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례였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미국 텍사스 주의 의사면허국 징계사례입니다.

의료란 게 사법기관에 의해 형이 확정되는 강력범죄 외에는 처벌여부를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판단하기 상당히 곤란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전문가 집단에서 내부 규율을 통해 징계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지 미국이란 나라가 의사가 매우 예뻐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동료에 대한 윤리적 접근 필요한 때

위와 같은 동일한 사례가 우리나라에 발생했을 경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사건만 터지면 의료계가 자율정화 능력을 잃었다고 성토합니다. 의사협회가 어떠한 주장을 해도 제 식구 감싸기만 한다고 몰고 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우리나라는 아직 단 한 번도 의사들에게 자율 정화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단 한 번도 의료계 내부적으로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줘 보지 않고 그런 비난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의사협회는 의사를 규율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의사에 대한 면허 부여·징계 등 모든 권한을 가진 보건복지부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안 한 것이지요. 아니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 처벌여부를 판단하기에는 행정부 공무원이나 법조인들의 전문성이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동료의사들에 의한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법이 제재할 수 없거나 법이 판단하기 애매한 문제로 인해 환자나 또는 역으로 의사가 피해를 보는 문제를 차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정착된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성·투명성과 생명이 요구하는 전문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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