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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의료는 공공재다?
의료는 공공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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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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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훈정(대한의사협회 감사)
▲ 좌훈정(대한의사협회 감사)

얼마 전 TV토론회에서 어느 변호사가 '의료는 공공재'라고 주장하여 큰 논란이 일어났었다. 그는 의료가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가 의대를 만들었고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한 것이며, 심지어 국가에서 돈을 대주었다고 발언하여 많은 의사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일부 학자들이나 공무원, 시민단체 등에서도 오래 전부터 '의료는 공공재'라는 주장을 펼쳐왔으며 그 결과 '공공의료'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까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선 '공공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부터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포털사이트 지식백과 사전에는 이렇게 표현이 되어있다.

'공공재(public goods , 公共財 )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로, 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하여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소비 혜택에서 배제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 공공재의 예로서는 국방·치안·소방·도로·공원 등이 거론된다.

쉽게 요약해보면 공공재의 특징으로 무대가성·비배제성(보편성)·비결합성(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못한다)을 들 수 있는데, 아무리 갖다붙여 보아도 우리 의료와 공공재와의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다.

공공재의 가장 큰 특징인 무대가성의 경우, 국민들이 공공재를 향유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조세 등으로 간접 지불된다), 개인이 부담하는 직접적인 비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결합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료 자원은 한정이 있는 것이므로, 한 사람이 많이 사용할 경우 다른 사람의 이용에 큰 지장이 생길 뿐더러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비배제성의 경우는 좀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사회보험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은 납부한 보험료에 따라서 의료 이용이 차별화되고 있지는 않다. 즉 보험료를 얼마 내든지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보자면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저소득층이나 장애자, 국가유공자 등는 의료급여로서 정부가 본인부담금 혜택을 주고 있으며, 소득은 있으나 보험료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 등 국민건강보험의 사각지대 또한 존재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 급여가 되지 않는 비급여의 경우 시장에 의하므로 소득에 따른 서비스의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료는 공공재로 보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경제학적인 정의로서 무엇에 가깝다고 보아야할까.

공공재·사유재 개념과 관점은 다르지만, 의료는 필수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알다시피 필수재(necessary, 必須材)는 가격변화로 수요량이 크게 바꾸지 않는 재화다. 즉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것이어서 수요가 가격 변화에 둔감한(비탄력적인) 재화를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필수재는 쌀, 석유, 전기 등이 있다.

물론 필수재가 국민 생활에 직결된 것이어서 어느 정도 국가의 관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수재가 공공재로 되려면 그 재화의 생산, 유통, 소비까지 국가가 거의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 들어 쌀이 공공재가 되려면 국유지에서 공공 근로를 통해 쌀이 생산되든지 아니면 사유지에서 생산된 쌀을 국가가 전량 수매하여 국민들에게 똑같이 배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부 교조적인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필수재가 공공재로 되는 경우는 없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가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이므로 필수재이긴 하지만, 공공재의 특징(무대가성, 비배제성, 비결합성)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공공재로 불려서는 안 된다.

국가가 의사를 양성하고 국영의료기관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식 NHS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준공공재'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공공의료'에 대해서 말해보자. 몇몇 정치인이나 학자, 시민단체에서는 틈만 나면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공공의료란 공공재로서 의료를 말하는가 아니면 의료에서 공공(중앙정부, 지자체 등)의 역할을 말하는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민 일부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재화(서비스)는 공공재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료를 보고 현재 우리 '공공의료기관'의 진료 양태를 보면 공공재로서의 의료가 아니라 공공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늘리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즉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부담을 줄이기보다는 통계상으로 보여지는 '공공'의 수치만을 늘리자는 것이다.

우리 의료에 있어 공공성을 증대시키려면 단순히 공공이 운영하는 의료기관만 늘려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든 민간이 제공하는 것이든 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고(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 부담 역시 별로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서비스를 개선시키는데 필요한 재원을 정부가 더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의료가 공공재임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공공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료의 공공성을 늘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료의 공공성을 위해 건강보험의 저수가 하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올바른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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