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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0 20:40 (토)
청춘착란

청춘착란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2.09.0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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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지음/열림원 펴냄/1만 2800원

 
시인은 청춘을 '공황장애'속에 보냈다. 아니 버텼다. 그에게 시는 질곡의 시간을 견디기 위한, 숨결을 이어가기 위한 벤틸레이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박진성 시인이 산문집 <청춘착란>을 펴냈다. 고3때 부터 30대 초반까지 16년간 공황장애를 겪은 저자가 온몸으로 앓으면서 시에 바친 기록이다. 그에게는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당신과 내가 뒤바뀌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던 착란의 청춘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감춰져 있던 자신의 흠을 내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흠에 덧대본다. 흠과 흠이 만나서 서로 다치지 않으려면 만남 곳곳에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휴식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에 나선다. '자낙스'와 '바리움'으로 시작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의 삶은 어떤 구원으로 향하고 있을까.

공황장애 환자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공황발작이다. 여기에 언제 공황발작이 올지 모르는 공포, 언제 호흡곤란이 오고 언제 비현실적인 생각들이 덮칠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이는 '예기불안'은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시에 자신의 병 얘기를 쓰기 시작한다. 절박하니 시가 살아나고 그 안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의 고통도 담겼다. 시어를 통해 그들의 아픔을 알리면서 대변하고 싶었다. "병 자체는 단지 치료의 대상일 뿐이다. 문제는 그 병을 무시무시한 것으로 만드는 사회의 통념"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을 견뎌내기 위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그의 시집 <목숨>에서 병에 관한 시들은 자연적으로 터져 나온 그의 외침이자 철저하게 계산된 목소리였다.

첫번째 장 '나는 신이 아픈날 태어났습니다'는 절규다. 처참하게 무너진 한 영혼의 아우성이다. 1996년 고3때부터 시작된 그이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호흡한다. 삶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왜 죽고싶냐는 의사의 물음에 "외로워서"라고 답했다. 정신이 아파서 들어간 병원에서 바라본 세상은 온통 아팠다.

두번째 장 '나무는 언제 쉬는가'에서 저자는 세상과 화해에 나선다. 그의 눈에 아프게만 비쳤던 세상은 함께 견뎌줄 벗이 있고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삶들이 있었다. 시로, 한편으로는 술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나누며 어울리는 무리의 한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번째 장 '고통이 리듬을 타면 음악이다'에서 그는 고통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다. 살면서 어떤 모습으로든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향한 마음이다.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이야기, 김윤아이야기, 몇편의 영화이야기, 책 곳곳에 스며든 시인 이성복 이야기, 그 외 여러 군상들 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 간다. 그는 이미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전령이지 않을까.

시인이 쓴 산문집에는 시 같은 산문뿐이다.

박진성 시인은 1978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시집 <목숨> <아라리>를 펴냈다. 의사시인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의 두번째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에 시평을 싣기도 했다(☎02-314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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