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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사의 성장'을 막는 황당한 응당법
청진기 '의사의 성장'을 막는 황당한 응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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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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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돈(충주시보건소 공보의)
▲ 유경돈(충주시보건소 공보의)

내과 전공의로 4년의 수련 기간을 마치고, 공중보건의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전공의 시절 챙기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돌아보면서 공중보건의 근무도 3년째에 접어들던 어느날, 필자는 의국 1년 선배와 원주 치악산 등산을 하게 됐다.

평소 등산을 자주 못해, 산타기를 좋아하는 선배와 보조 맞추기가 영 힘들었다. 필자는 처와 함께 슬렁슬렁 산책하듯 올라갔고, 선배는 쏜살같이 정상으로 향했다. 선배는 우리들끼리 흔히 말하는 '내공'이 안좋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만큼 환자를 아끼고 성심으로 대했고,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었다.

그날 즐겁게 산행을 마치고 차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이었다. 2차선 좁은 도로에 흙먼지가 자욱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공사중인가?' 무슨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먼지가 걷히며 정확히 반으로 두동강난 자동차가 있었고, 울고 있는 유치원생쯤 되어보이는 아이와 바닥에 누워있는 여인, 그리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남편이 보였다.

사색이 된 필자의 처를 차에 남겨두고, 필자와 선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그 짧은 순간, 필자와 선배는 다시 몇 년전으로 돌아갔다. '제발 돌아와라'라는 마음속 울부짖음이 들려온 것은 병원을 나와서는 처음 이었다.

처음 응급실 당직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운주머니에 갖가지 매뉴얼들을 꼽고 인계받은 환자들을 정리하면서 두근두근 했던 마음, 그때 그 긴장했던 마음이 그대로 떠오른다. 3년차가 되어 그 연차 전공의 1명이 응급실을 전담하면서 낮동안 응급실로 온 내과계 응급환자를 보게 됐다.

응급실 근무는 내과전공의 시절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무수히 경험하게 되는 급성심근경색증부터 위장관출혈·폐색전증·급성폐부종 등등 그때그때의 초치료가 환자의 예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게 됐고 2년간의 경험은 환자가 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지식적인 측면 외에도 응급실은 환자들과의 관계를 쌓는데에도 최일선이라 할 수 있다. 응급실의 진료 체계상 응급실에서 내과진료를 보게되는데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환자에게 "많이 기다리셨죠.얼마나 힘드셨는지요"라는 말로부터 진료를 시작했고, 단순한 한 두 문장의 말이지만 환자와의 첫인상을 좋게 이어갈 수 있게 했다.

8월 5일부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산적한 의료계 현안 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속칭 응당법 개정안이다. 정부는 '전문의'진료가 '응급의료의 질 개선'이라는 아주 단순한 명제 한가지 만을 본 듯 보인다.

벌써부터 시행될 개정안에 따른 꼼수들이 여기저기서 시행될 조짐 또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응급의료의 질 개선'을 위해서 고년차 전공의의 중증 응급환자 진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시행되는 법률에 대한 대응이 각론에 치우치게 되면서 이 핵심에서 멀어지면 안된다.

응당법 개정안은 전공의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반드시 의학지식의 습득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20대때 전공의 생활로 처음 실제로 환자를 접하게 된다. 수십년 의사생활의 기초를 닦고, 환자를 대하는 초심을 형성하는 단계인 것이다.

'이 사람을 살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 마음에 깊이 새기는 곳으로 응급실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기 힘들다.

필자가 응급실 근무경험이 없이 내과'전문의'가되었다면, 어느날 우연히 맞닥뜨린 교통사고 현장에서 일말의 주저없이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었겠느냐 물었을 때 '그렇다'라고 쉽게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요즘 방영되는 한 의학드라마에서 생각없이 살아오던 한 의사가 본인의 실력부족과 실수로 환자를 놓치게 되면서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의사성장드라마'라고 불린다고 한다.

의사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일반 국민들도 모두 아는 요즘, 제도적으로 의사의 성장을 막는 일은 절대 막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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