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의료분쟁의 피해자
의사도 의료분쟁의 피해자
  • 의협신문 admin@doctorsnew.co.kr
  • 승인 2012.07.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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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훈정(충북 금왕삼성연합의원 대한의사협회 감사)
▲ 좌훈정(충북 금왕삼성연합의원 대한의사협회 감사)

몇 달 전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채선당 사건', '국물녀 사건'처럼, 한 꺼풀 뒤집어 보면 가해자, 피해자가 바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사건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사건들은 그나마 CCTV나 목격자의 증언 등으로 진실이 밝혀진 케이스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진정한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함을 당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의료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의료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료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항상 흠결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일정한 확률로 '사고'가 발생하고 분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의료진의 고의거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사회적, 제도적으로 안고가는 것이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의료분쟁의 당사자 한 측인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사고로 주장하는 경우, 그것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전달되는 시위 현장이나 인터넷 등은 물론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방송 등 매체들도 이미 의료진의 과실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 우리 의료 현실의 가장 큰 문제다. 그 결과 의료분쟁이 소송 등으로 다투어보기도 전에 의사가 매도되고 심각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해당 의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기회도 포기한 채 울며 겨자먹기로 합의를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대학 때 임상 실습 도중 교수님으로부터 인상 깊게 들었던 가르침 중 하나는 '의사는 과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만약 의사가 최선을 다 했음에도 치료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최선'이란 의사가 처한 환경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바를 다 한 것인지를 말한다. 대학병원에서 최첨단 설비와 완벽한 인력을 갖추어 놓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다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그렇게 만든 의료시스템의 문제이지 의사 개인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는 의료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료기관의 경영자나 정부를 상대로 책임을 물어야하지 않을까.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고 분쟁의 구제 방법이 빈약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의료분쟁 발생 시 환자나 보호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자력구제나 기타 의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영업을 방해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강력히 차단하는 것이 올바른 의료문화 정착을 위해서 절실하다. 허나 아직도 '의료분쟁의 피해자는 약자'라는 선입견때문인지 분쟁 현장에서 공권력이 적절히 개입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스마트폰 등 SNS의 발달로 의료분쟁의 현장이 의료기관 주변에서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으로 차츰 확대되고 있다. 보다 많은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료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의료진에게 심각한 피해가 미칠 수 있다. 다중공간에 널리 뿌려진 사실 왜곡이나 명예훼손 등의 정보는 돌이키기 어렵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입은 피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사법 당국은 아직 의료분쟁에 있어 의사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적어도 의료 현장에 있어서만큼은 법률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흉악법들에게도 존중되는 사생활 보호 같은 것도 의사들에게 만큼는 예외라는 듯이 사이버 공간에서 무차별 난도질이 가해지고 있다.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피해자다. 소송 결과 무죄로 밝혀진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는 글이 하나 올라올 때마다 대중들은 또 하나의 마녀를 심판대 위에 올린 양 마구잡이로 칼질을 해댄다. 의료분쟁조정법에는 왜 의사의 피해를 보상하는 조항은 없는가. 국민의 한 사람인 의사가 보호받아야 할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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