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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또다시 맞고 있는 의료의 격동기

시론 또다시 맞고 있는 의료의 격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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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7.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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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숙(대한의사협회 부회장,서울 김화내과)

김화숙(대한의사협회 부회장,서울 김화내과)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진료 후 "선생님 약값에 상관 말고 좋은 약을 처방 해 주세요"라고 하며 늘 좋은 약과 최고의 진료를 받기 원한다. 과거에는 미국 의료기술이 좋다고 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진료와 수술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국의 의료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미국에 사는 교포는 한국에 와서 진료를 받는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의료 천국이지요." "모든 검사와 필요한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올 경우 여행 경비 포함해도 미국에서 진료 받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어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네 그 동안 의사들이 희생해서 이루어 놓은 좋은 의료 보험 제도이지요." 하고 자부심을 갖곤 했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의료의 격동기가 찾아왔다. 2000년에 의약 분업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의료 대란으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그 후 12년이 지난 오늘날 또다시 의료계는 요동을 치고 있다. 의약분업보다 훨씬 더 위험한 '포괄수가제'라는 제도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택시를 타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기사님! 포괄 수가제라는 제도 아세요?" 하니 대답이 "알지요. 사람이 물건입니까? 사람마다 병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값 내고 똑같이 수술 합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몇 마디 하다 내리게 되어 더 토론 하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일반 국민들은 의료 정액제라고 하면 물건의 정찰제를 떠올리며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사는 기분으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급성 맹장염·치질·제왕절개·자궁적출· 편도· 백내장· 탈장에 관한 수술은 비용이 똑 같다. 모든 환자의 질환이 물건 취급을 받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 인체는 100명이면 100명 모두가 똑 같지 않다. 한 명 한 명 체질이 다르고 투약 후, 수술 후 반응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고령의 환자, 당뇨환자, 면역이 약한 사람은 수술 후 2차 감염과 다른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제왕 절개 후 사람에 따라 장 유착이 심하게 오거나 자궁 수축이 안 되어 때론 출혈 과다로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기존 질환이 있는 환자가 응급 수술을 받을 때 어떠한 합병증이 발생할 지 예측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우리 인체의 반응은 다양하게 일어난다. 맹장 수술 시행 후 환자가 원한다고 해도 위내시경이나 심장에 대한 추가 검사는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시행 할 수가 없다. 옛날부터 의료는 인술이라 하였다.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정부는 행정적 편의와 국민을 위해 비용 절감을 내세워 진료의 영역까지 감독을 하겠다니 우리 의사는 고유의 진료권마저도 박탈 당하는 느낌이다.

현직 외과 의사가 포괄수가제를 시범 사업하는 모 병원에 두 달 간 파견 나가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외과 의사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수술 상태와 회복 경과를 보고 퇴원 날짜를 정하는 것이 원칙 인데, 포괄수가제에 해당하는 환자는 이미 입원부터 퇴원까지 처방이 미리 입력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처의 흔적이 거의 없고 회복이 빠른 신기술에 해당하는 복강경 수술은 비싼 장비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금기되고 개복 수술을 한다는 것이다. 수술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일회용 수술 가운과 기구를 사용 하는데 이것 역시 모든 물품을 소독해서 재활용하고 수술 가운도 세탁해서 다시 쓴다고 한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소모품도 저비용의 제품을 사용 한다는 것이다. 염증이 심한 환자의 경우 수술 후 장기 내 유착이나 장 폐색을 예방하기 위해 유착 방지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사용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외과의사는 두 달간 일을 하면서 포괄수가제는 의료비용의 감소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수술을 받는 환자입장에서는 분명 피하고 싶은 제도였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 진료가 불법은 아니지만 의사로서 양심상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환자, 기저 질환이 있어 위험성이 있는 환자, 입원 기간이 길어질 환자는 모두 대학 병원으로 보내야 하며 규격에 맞출 수 있는 환자만 골라 수술을 해야 한다며 한탄을 했다. 결국 환자입장에서는 충분히 치료받고 회복 후 퇴원하고 싶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정해진 비용 내에서 치료해야 하며 입원이 길어지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조기 퇴원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원한다고 해도 더 이상 입원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강제퇴원 후 재입원을 해야 하는 문제점과 합병증이 생겨 재입원 하게 되면 비용 절약은 커녕 비용이 더 들게 될 수도 있다.

백내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질환에 대한 의료수가가 인상이 되었는데 의사들이 왜 반대할까? 제한된 진료비 내에서 환자 개개인에 맞는 제대로 된 수술을 시행할 수 있을까? 는 의문점과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경우와 저수가 체제하에 의사들이 과연 소신 진료를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점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과잉진료를 억제하며 건강보험재정의 안정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만일 한 명의 생명도 이러한 제도 하에서 희생이 된다면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지난 6월 의료계는 정부가 7월1일부터 포괄수가제 강제시행을 천명하자  응급 환자를 제외하고 7개 군의 수술에 대해 일주일간 수술 연기를 한다고 선포했다. 연일 방송은 이 사실에 대해 흥미롭게 보도하고 제2의 의료 대란이 오나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필자는 의협 집행부의 한 사람으로 또다시 2000년도의 의료대란이 일어날까 봐 가슴을 조이고 있는데 6월 29일 정몽준 의원을 포함 한 국회의원 3명이 의협을 방문하여 의협 집행부 회장단과 협의하면서 중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건강보험 정책 심의위원회의 구조개선과 포괄수가제도개선기획단을 만들어 정책을 개선해달라는 의협의 요구를 수용하고 개선하겠다는 합의를 하였다. 협상을 하기 전 의협회장은 포괄수가제와 관련이 있는 4개과 개원의회장단과 장고의 논의를 하였고, 이후 의협회장이 일주일간 수술연기를 철회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의료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협상에 대해 많은 회원들은 2000년도의 의료대란을 상기하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소통이 안된 상태에서 당장수술 연기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흥분하고 분노하기보다는 한번 숨을 돌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면서 생각하는 여유도 필요 한 것 같다. 주위에 싸여있는 풀기 힘든 난제들은 시간이 걸려도 차근 차근 이해와 대화, 아니면 법을 바꾸어서, 국민들에게 호소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한편 의협은 국민들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 하여 포괄 수가제에 대한 정책을 결정 하겠다고 하였다. 포괄수가제는 홍보가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국민 51.1%가 찬성 한다고 하지만, 안과 개원 의사회에서 실시 한 경우는 92%가 시행을 연기하자고 하였으며 각 병원을 방문 한 일반 환자 대상으로 70.6%가 시행 연기를 원하였다.

건강보험 정책 심의위원회의 위원구성은 가입자대표 8명, 공급자대표 8명, 공익대표 8명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이들의 분포는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보공단, 심평원,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사회연구원의 공익단체와 양대노총, 경영자 총연합,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자영업자단체, 농업 경영회, 치과 ,한의사, 간호협회, 약사,제약업계, 병원 협회가 각 1명, 의협 대표인 의사는 2명뿐 이다. 이러한 체제 아래서 지금까지 모든 의료정책은 적법하게 의논 하여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다수에 의해 결정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불공정한 구조개선은 2004년도에 감사원에서 이미 시정 하라고 지적을 하였는데도 아직 반영 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몽준 의원과의 합의는 정책에 반영 되어야 하며 개선해야 할 문제점은 우리와 같은 제도를 갖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 연구 관찰하여 하루 빨리 논의 되어야한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된 의료 보험 제도라 하여 각 나라에서 한국의 보험 제도를 배우기 위해 연수를 오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의사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사들이 양심의 가책 없는 소신 진료를 위해 정부는 제도의 보완점을 찾아 시정하고, 과잉진료를 하여야만 저 수가를 해결 할 수 있는 현제도를 고쳐야 하며 의사, 국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모두 행복 할 수 있는 절충 점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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