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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11:38 (금)
coverstory 한방 '헌재 결정 나몰라라'

coverstory 한방 '헌재 결정 나몰라라'

  • 고수진 기자 sj9270@doctorsnews.co.kr
  • 승인 2012.07.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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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한방 현대 의료기기 사용 불법 판결'에도
부인과 진료 한의원 대부분 초음파 버젓이 사용

 

 
입구부터 한약냄새가 진동하는 한의원으로 들어서니 4명의 여성 환자들이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간호사는 한의원을 처음 방문한 기자에게 생혈액검사·자동팔강검사·체지방검사 등 3가지 기본 검사를 요구했다.

간호사는 먼저 기자의 혈액을 채취해 그 자리에서 특수 현미경으로 파악했다. 혈액검사를 통해 몸의 허약정도를 측정하고, 혈액순환이 잘되는지 알 수 있는 검사라고 간호사는 설명했다.

이어진 자동팔강검사는 인체에 미세한 자극을 가해 그 반응을 살펴보는 검사라고 말한다.

이 검사는 인체 오장 육부에 흐르는 생체전류의 세기를 측정해 인체의 표리·음양·허실·한열 상태를 그래프로 도식화하고 병적인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체지방 검사를 하며 비만도까지 측정을 한다.

자궁근종 검사를 위해 한의원을 찾았지만, 굳이 이런 기본 검사가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진료비용은 기본검사와 초음파검사 비용을 포함한 5만원과 한의사 진료비 3000원이 들어갔다.

# 기본 검사를 끝낸 뒤, 한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가자 먼저 눈에 띈 것은 옆에 있는 작은 공간.

한의사는 간단한 질문과 진맥을 하고 나서, 그곳으로 안내했다. B 업체의 초음파 장비가 놓여진 곳이다.

그는 진단 초음파장비를 이용해 복부 초음파를 시행했으며, 자궁근종이 있는지 자궁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했다.

한의사는 "미혼 여성들이 산부인과 문턱을 드나들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에는 한의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의원에서도 초음파를 이용해 자궁근종과 같은 여성질환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해주고 있었다.

한의사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해 정확히 확인하고 치료에 효율을 높이고 있을 뿐"이라며 "현대의학이 발전한 만큼 한방에서도 필요한 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특히 한의사는 "산부인과와 연계하는 곳도 있지만, 부인과 진료를 하는 한의원 대부분은 편의를 위해서 초음파 장비를 이용해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결과, 자궁근종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자궁 상태가 약해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항상 하복부를 따뜻하게 해주고 따뜻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라고 권했다.

한의사는 "차가운 음식을 주로 먹으면 자궁이 냉해지고, 자궁 혈류 순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초음파 검사결과에 이어 체지방 검사 결과를 토대로 진단을 내렸다.

기자는 몸무게에 비해 근육량이 거의 없고, 체지방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인다며 꾸준한 운동을 권유했다.

# 인터넷에 '한의원 초음파' 검색하니 100여개 사이트 등장

인터넷에 '한의원 초음파'를 검색하면, 여성질환 진단·다이어트·여드름 치료까지 초음파를 이용하는 한의원은 약 100여개의 사이트와 블로그가 나타난다. 이중 3곳의 한의원에 전화해서 확인해본 결과, 실제 초음파를 사용하고 있다.

요즘 한의원에서는 여름시즌을 맞아 초음파 집중장치를 이용해 피하 지방세포를 분해해서 다이어트에 활용하거나, 초음파를 피부속까지 침투시켜 여드름 치료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방 초음파'라는 이름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Cover Story

헌재 "초음파는 의사 업무영역, 한의사 사용불가"

한의원에서 초음파 장비를 널리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은 불법행위"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 관련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심판에서, 재판관 7 : 1의 의견으로 이같이 판단했다.

한의원을 운영중인 청구인들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경영하는 한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 'Osteoimager plus'를 이용해 성장판검사를 해왔다.

이들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약을 처방해 주고, 그 대가로 금원을 교부받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다 적발돼 부산지방검찰철 동부지청으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이들 한의사는 기소유예처분이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한의사들이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 환자를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침술 등 치료행위를 한 것은 한의학적 지식이나 방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기초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못 박았다.

또 헌재는 "우리나라 의료법은 아직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영역과 면허범위를 구별하는 이원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면서 "초음파검사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진료과목 및 전문의 영역인 영상의학과의 업무영역에 포함돼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 그래픽=윤세호 기자

한의협, 현대의료기기 넘보지 않겠다더니 말바꿔

이러한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한의약육성법'을 근거로 들면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계속해서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1년 7월에 개정된 한의약육성법은 한방의료 범주에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와 함께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김정곤 한의협 회장은 지난해 6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자 "한의계가 한의약육성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면서 "한의약 정의를 바꿔줌으로써 현행법에선 한방약침 등 새로운 한방 진료를 할 때마다 유권해석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한의협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한의사의 현대적 진단기기 활용은 질병치료를 위한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현대적 진단기기가 의사만 사용하는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의료인들이 환자의 상태를 더 안전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한의협은 "개정된 한의약육성법은 한방의료란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것'까지도 한방의료임을 명시하고 있다"면서 "한방의료에서는 한의약육성법 개정 이전부터 전자 침술·레이저 침술·초음파 치료·극초단파 치료·저주파 치료 등을 널리 시술해 왔다"고 했다.

한의협은 한방의료기관 의료기기 사용 고발건과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대응 매뉴얼 제시 및 고문변호사와의 자문 협력·간호학원에서의 한의학과목 커리큘럼 개설·관련 피해를 입고 있는 인접 시도지부와의 유기적인 협력 대처·맞대응 고소고발 등을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고 한의협은 덧붙였다.

한방특위 "의사 흉내내기 그만두라"

 
그러나 이에 대해 의료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엄연한 불법행위를 고발한 것임에도 적반하장격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방특위)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고 "한의사는 의사 흉내내가를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한방특위는 "한방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의약육성법을 들먹이며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최근 포괄수가제 등으로 의료계가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하고, 내년 한의협 선거를 앞두고 과욕을 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방특위는 "한의협의 잘못된 언행으로 말미암아 불법으로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다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한의사들 뿐"이라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회원들이 전과자가 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는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위법행위 근절해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이 의사와 한의사의 밥그릇 싸움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 의학을 교육받지 못한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한 관계자는 "의사들은 의과대학 6년의 과정동안 현대 의학기기의 기본원리와 그 과학적 배경을 익히기 위해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많은 기초과학의 이론과 실제를 공부하고, 기기들의 사용과 응용에 대한 실습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론 교육도 임상 수련도 거친 적이 없는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에 집착하는 것은 한의사의 진단법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는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환자가, 전부 서양의학의 시선으로 몸을 바라보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면서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겉모습만 한의학이지 알맹이는 서양의학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로 환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한의사의 진단법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식과 수단이 분명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증가하는 것은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피부과의사회 관계자는 "한방에서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이용해서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정부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근절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유용상 위원장
한방과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고 의료일원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유용상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현재의 입장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한의사들이 헌재결정에도 불구하고 현대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 과거 보약이 잘 팔리던 시대에 한의계는 과학적 방법론을 한의학에 적용하는 것은 '한의학의 타락'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국민의 의식이 깨어나고 투명한 사회가 되면서 한의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한의약육성법에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한'이란 문구를 넣고는 처음의 주장과는 다르게 현대의학의 방법론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협에서는 한의약육성법을 근거로 들면서 계속해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촉구하고 있다.

- 한의약육성법에 나온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한'이라는 문구는 한의학이 현대의료기기나 약리학적으로 개발한 천연 식물에서 개발된 약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의학의 과학화란 이제까지의 한의학 이론과 술기, 약물(탕·환)이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하며 약물은 과학적, 통계학적으로 유효한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을 흉내내거나 도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 한의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현대의학과 한의학이 환자를 대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다른 목적과 수단으로 환자를 대하고 치료해야 한다. 한의학은 무분별하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현대의학과 비교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 한의학은 한의학 본래 모습대로 남겨두면서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해나가야 한다.

▶한방특위 위원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한방에서 무분별하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면서 결국 국민만 피해보고 있다. 국민의 피해를 줄이고 정부 역시 의료 낭비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선, 계속해서 한방 의료기관의 불법의료행위를 찾아내고 고발조치를 해나갈 계획이다.

또 회원들에게 불법의료행위를 알리고 홍보하는데 주력해 나가겠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시민단체 '과학중심연구원'도 활성화해 시민단체에서 한의학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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