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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일의 어려움

청진기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일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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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7.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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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원(충주시보건소 공보의)

▲ 권용원(충주시보건소 공보의)
지난 4월부터 서울시 대형마트들을 대상으로 일요일 강제휴무가 시행되었다. 월 2회, 둘째 일요일과 넷째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 시민들이 지역 재래시장을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대형마트 강제휴무제의 취지이다.

이렇듯 대형자본으로부터 지역의 재래시장 및 소매상들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고, 전국으로 확대실시되고 있다. 한편 거대형자본과 경쟁해야 하는 영세상인들의 곤란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고 있는지, 득과 실을 견주었을때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집단이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좋은 정책이 필요하지만, 좋은 정책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정책이 자리잡는 현장의 목격자들이다. 주변의 누군가는 웃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울기도 한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종종 예기치 못한 피해를 남긴다.

지난 몇 주 동안 포괄수가제의 당연적용을 두고 찬반논란이 뜨거웠었다.

포괄수가제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진료의 양과 질이 일관된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불필요한 검사나 처치가 줄어든다는 점, 그리고 수가의 계산이 간단하다는 점 등을 포괄수가제의 장점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같은 질병군으로 묶이는 환자라고 하여도 요구되는 입원일수, 검사의 종류 및 횟수 등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 질병군으로 묶이는 환자들에 대해 일괄적인 수가를 적용하게 되었을 경우, 합병증의 존재 등으로 인해 입원기간이 길어지고, 요구되는 검사와 처치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어려운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정해진 포괄수가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모순도 있다. 결국 과잉진료를 견제하려다가 과소진료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환자의 본인부담 및 건강보험재정의 지출을 줄이는 취지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괄수가제로 인한 수가의 제한이 의료서비스 질 역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건학 교과서에 나오는 뻔한 내용을 굳이 들먹이는 까탈스러운 사람이 돼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예상할 수 있는 여러 우려들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듣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포괄수가제를 시행하여 과잉진료로 인한 건강보험재정의 지출을 줄인다는 이야기는 듣지만, 정작 무엇이 과잉인지 적정인지에 대한 기준조차 다소 모호한 느낌이다. 뇌출혈이 의심되어 CT를 찍은 환자의 CT결과에 따라 과잉과 적정이 판가름난다.

이제 이런 모호함을 뚫고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은 곤란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좋은 의사인지 나쁜 의사인지가 갈릴뿐 아니라, 어떤 검사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과잉진료인지 적정진료인지가 갈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포괄수가제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한계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의료정책 수립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책이 다소 미흡해 보인다는 점이다.

진료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에 대해서 결국 의사들이 적절히 판단하여 환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설명은, 수년간 '근거중심'이나 '가이드라인'과 같은 단어들에 익숙한 의사들에게는 또다른 짐처럼 느껴진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제는 예전에 할 수 있던 수술, 예전에 쓸 수 있던 약, 예전에 쓸 수 있었던 기구들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사실을 직접 설명하는 일은 의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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