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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아픔 만큼 성숙해지고

청진기 아픔 만큼 성숙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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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3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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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그 아이를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난다. 아이 엄마는 며칠째 온 식구가 한잠도 못 잤다는 말부터 했다. 심한 기침과 고열에 탈수증세로 애 피부는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짜증이 가득했던 환자가 이 병원에서는 하루 만에, 저 병원에서는 당일 밤도 넘기지 못하고 입원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손을 바꾸어가며 찔러도 모두 포기할 정도였단다. '입원은 불가능'이라며 주저앉는 애 엄마에게 치료를 일단 시작은 해보자고 했다. 진짜 적응이 안 되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며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였다.

근 10년 동안, 수 없는 시도 끝에 기적처럼 얻은 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아이 엄마의 불안을 읽으며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새내기 의사로서 사명감과 투지가 넘쳐나던 때였다. 흉부 사진을 보니 폐에 염증이 심하고 늑막 삼출까지 동반되어 있었다. 집에도 안 가고 환자 곁을 지키며 치료에 매달렸다.

축 처져 있던 아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성질도 살아났다. 주삿바늘을 뽑아 피범벅을 만들고, 울며불며 구르다 수액 걸이를 넘어뜨리곤 했다. 병세가 좋아지자 성격도 표정도 차츰 안정되어갔다. 퇴원 날엔 앙증맞은 거수경례까지 날렸다.

그런 환자가 단골이 되고 또 지인들이 찾아오고 그러면 나는 더 신이 나서 진료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하루 한 달 한 해가 지나갔다. 그때 그 환자를 포기했더라면? 상태가 안 좋다 싶은 이들을 모두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편하게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지금의 병원에 취직하던 때가 생각난다. 병원장님은 여의사라는 이유로 거절하셨다. 이 병원 특성상 별별 환자들이 다 있는데다 거친 사람들이 많아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를 추천한 은사님은 '일단 100일만 지켜보다가 그때에도 여자라서 마음에 안 들면 남자로 바꿔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석 달 열흘의 시한부 생명을 부여받은 나는 하루를 25시간이라 여기며 뛰었다. '여자라서 그래'하는 뒷말을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동기들이 무슨 훈장 탈일이라도 있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은사님께서 "남자 의사로 바꾸어 드릴까요?"라고 하니 우리 원장님 손사래 치더라고 하시며 올림픽영웅을 격려하듯 내 어깨를 잡고 기뻐하셨다.

간혹 사는 것이 힘들면 그때 일을 떠올린다. 일단은 써보고 안되면 바꿔준다고 하셨다던 은사님. 풋내 나던 이십 대의 나날들, 따끈했던 그 마음을 되새긴다. 짧은 시험 주행 끝에 중도하차 할 수도 있었던 근무지에서 스무 해를 보냈다. 병원은 성장했고, 한 명도 없었던 여자 스텝이 지금은 절반이다.

꺾꽂이할 때 자른 가지를 물기가 부족한 모래밭에 심는다고 한다. 영양소의 공급이 풍족한 땅에 꽂아 놓은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내려 살아남으려는 힘이 퇴화하여 죽기 쉽지만, 모래밭에서는 생존하기 위해 부지런히 영양소를 찾아 나서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보드랍고 여린 순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 사람도 아픈 만큼 성숙해질 것이리라.

웃음을 머금고 손짓하며 퇴원하던 아이의 얼굴이 비 갠 하늘처럼 말갛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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