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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영아원 아이들
청진기 영아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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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6.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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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부살알로시오기념벼원 소아청소년과장)
▲ 이정희(부살알로시오기념벼원 소아청소년과장)

뜻밖에 영아원 아이들을 진료하는 자리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몇 번을 망설이다 개원을 접고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이런 결심에는 그동안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한몫을 했다. 가끔 부딪치는 심평원 직원과의 지겨운 시비와 아리송한 잣대로 들이대는 '묻지마 삭감'에 진저리를 쳤다.

'당신은 다른 의사들보다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남용하고 있다. 고가 약을 분별없이 사용한다. 환자의 방문 일수는 전국 평균을 웃돌고 있다. 주사제는 왜 그렇게 많이 사용하나.'

이런 경고는 실사의 예고편이라 주눅이 들었다.

여기에 소신껏 진료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 이런 소망으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낯선 환경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생소한 분위기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친모의 품을 떠나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들은 출생의 아픔과 성장의 외로움을 함께 한 동병상련한 사이다.

자라면서 행동이 비슷해지고 품행도 닮아간다. 여럿이 함께 생활하니 눈치가 빠르고 성장발육도 앞선다. 생후 6개월 전에 앉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돌전에 서고 걷는 아이들이 있다.

한명이 앉기 시작하면 금세 다른 아이들도 따라 앉고, 한명이 기면 따라 긴다. 한명이 아장아장 걸으면 다른 녀석은 아예 뛰려한다. 이때쯤이면 장난감을 두고 다투기도 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갑자기 대기실이 소란하더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돌을 갓 넘긴 현준이가 떼를 쓰고 있다.

이 순둥이가 보채고 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밝은 성격에 귀여운 외모와 우윳빛 피부로 영아원에서는 인기가 짱이다. 그 고운 피부에 난리가 났다. 얼굴과 팔 다리에 섬처럼 뻘겋게 솟아오른 얼룩반접이 벌레 같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유식에 계란이 들어갔던가 보다. 벌써 3번째이다. 통증만 아픔이 아니다. 가려움도 아이들에게는 큰 고통이다. 우선 스테로이드를 먹이고 항히스타민제 주사를 주며 관찰했다.

영아원 아이들은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각양각색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다. 환경보다는 유전인자의 영향이 큰가 보다. 잘 우는 아이, 잘 웃는 아이. 낯가림이 심한 아이, 붙임성이 있는 아이. 공주병에 걸린 아이, 왕자 병에 걸린 아이.

순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제법 까칠한 아이도 있다. 잠시 후, 현준이가 빙그레 웃으며 진료실로 들어온다. 언제 난동을 부렸느냐는 듯 방실거린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피부도 멀쩡해졌다.

영아원 아이들은 어릴 때는 세상모르게 자라다가 철이 들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서서히 알게 된다. 외부 아이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자기는 별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갑자기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민감해진다. 때로는 갈등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품는다.

이럴 때 영아원도 긴장이 된다.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예민한 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하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갖는다. 이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도록 일깨운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기적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영아원 수녀님은 달랜다. 앞으로 빈손으로 떠날 이들에게 무슨 미련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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