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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항문 원조병원이 만든 '치유의 숲'을 가다
대장항문 원조병원이 만든 '치유의 숲'을 가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6.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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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서울송도병원, 자연면역 증진공간 '홀론센터' 운영
검증된 통합의학 지향…전문의와 함께 '약초 캐기' 체험도

국내 대장항문 전문병원 시대를 개척한 서울송도병원. 1981년 개원한 이래 31년을 대장항문 한 길만 걸어온 이 병원이 단단히 '외도'를 했다. 강원도 양양·인제, 전라북도 고창 3곳에 통합의학을 콘셉트로 한 자연치유공간을 만든 것. 암 등 난치성질환을 치유하고 그 가족의 미래질병까지 예방하기 위해 탄생한 홀론면역증진센터를 기자가 직접 입소해 체험해봤다. '홀론'이란 하나이자 전체를 이루고, 전체이지만 하나에서 이뤄진 생명 안에 있다는 의미로 전일의학(全一醫學)의 개념을 뜻한다.
 

▲ 인제 홀론센터(정은의원) 전경. 원시림이 보존된 방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의협신문 이은빈
15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숲길을 한참이나 들어가니 산자락 어귀에 자리한 흰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은의원'이라는 간판을 보면 알 수 있듯 의료기관이지만, 위치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보통 의원은 아니다.

"입구에서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모이세요." 로비에서 이름표와 배정된 방 열쇠를 받아들고 3층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탁 트인 전망에 창문을 여니 푸르른 숲 내음이 방안 가득 들어왔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신경외과 전문의인 김동환 원장은 "비워야 다시 채워진다"며 센터에 머무르는 동안 쓸데없는 걱정을 줄이고 마음을 편히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뇌를 다루는 의사로 출발해 십여년 전 암환자를 위한 명상과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지식을 동원한 의학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주된 역할은 입소한 환자들이 마음을 열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느낌은 프로그램을 면밀히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환자들은 나의 스승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했다.

▲ 총론을 강의하는 이영진 홀론센터 본부장.

의료진은 지금까지 국내 암치료가 예방보다는 발병 후 치료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암이 발병하거나 재발·전이될 때까지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자연치유와 영양면역 분야 역시 선진국에 비해 정보가 부족했다는 판단이다.

이에 M.D.앤더슨 암센터·Wolfe 클리닉·UCLA대학 등 세계적 암 치유병원에서 쓰이는 통합의학 및 보완대체의학적 치료법을 벤치마킹해 융합형 자연치유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과학적 효과가 보고된 치유법을 엄선해 한국인 특성에 맞게 접목시키는 작업이 이뤄졌다.

총론 강의를 맡은 이영진 홀론센터 본부장은 "통합의학은 미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수의 암 전문병원들이 이미 통합의학센터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며 "통합의학과 자연면역 증진을 통해 암을 치료하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과·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이 본부장은 지난해까지 차의과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차움' 초대 부원장을 지냈다. 올해 초 서울을 떠나 자연에 한층 가까워진 홀론센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프로그램을 체계화하는 과정의 산파 역할을 했다.

5층에 위치한 홀론레스토랑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식당이다. 개개인의 키와 몸무게를 고려해 엄격히 칼로리를 맞춘 영양식단이 앞에 놓였다. 싱거운 '풀밭'일 것만 같았던 지레짐작은 엇나갔다. 윤기가 흐르는 오리고기가 곁들여진 새싹비빔밥과 가지전이 식욕을 돋웠다. "천연재료로 직접 조미료를 만들어 조리한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 센터에서 제공하는 맞춤 영양식단. 제철 약초와 직접 제조한 천연 조미료를 사용해 만든다.

이어 자율신경계 기능 검사와 동맥경화도 검사 등 기본 검진을 받았다. 뻣뻣한 몸을 힘껏 뻗어 기구를 이용한 간단한 운동법을 배우고, 5요소 요가를 20여분간 체험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힐링 아로마테라피와 도수치료를 받은 후 묵은 체증이 풀린 듯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을 거쳐 간 많은 환자들은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으로 이영진 본부장과의 산행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센터가 위치한 방태산은 1급수 계곡이 어우러진 원시림 보존 지역. 이 본부장은 6개월간 심마니들을 따라다니며 약재로 쓰이는 야생버섯과 약초를 구분하고 채취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이튿날 오전 트래킹에서 만반의 '전문복장'을 갖추고 나타난 그는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산딸기·당귀·상황버섯·오미자풀 등을 알려주면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암환자들과 함께 걸을 때 걸음을 늦춰 호흡을 맞춰주는 배려는 기본이라고.

이 본부장은 "서울이 가두리 양식장이라면, 나는 자연산이라 몸값이 비싸다"고 농을 던지면서 다른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채취한 약초는 여기 오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는 드문드문 산에서 벌레 물린 자국이 눈에 띄었다.
 

 
대장항문 전문병원으로 입지를 굳혔는데, 암환자를 위한 면역센터를 세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귀국하던 비행기 안이었다. 무심코 밖을 내다봤는데, 서울 근처에 스모크 현상이 심하더라.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에 병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현재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영향이 크다. 사회복지예산이 30% 이상 되면 국가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부해서 알았다. 암만 제대로 관리해도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결과가 홀론센터다.

외과의사로서 사회복지학 박사를 따고 실버 사업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도 수술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일주일에 이틀은 수술, 하루 외래를 보는데 보통 하루 5~7건의 수술은 거뜬히 해낸다. 항문수술에서 가장 고참이기 때문에 치루 등 다소 어려운 수술은 내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버산업에 뛰어든 계기도 외과의사로서 은퇴 후 나의 미래를 설계하다가 나온 답이었다. 나의 노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고, 송도시니어스타워를 만들어 10여년째 안정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수익을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서 입주자들이 내는 비용은 식관리비도 안 된다. 돈 벌 생각은 없지만 유지는 해야 되는데(웃음).

암 치료에 대한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은.
4년 전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다. 조기발견해서 완치했지만 암 진단 전과 후는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암과 싸우려면 기본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면역 기능이다. 암 치료는 수술 받고, 항암치료까지 받았다고 끝난 게 아니다. 감쪽같이 낫는 병도 아니지만 죽는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홀론센터가 환자들의 생활패턴을 바꿔 놓고, 사회 나가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언제든 다시 와서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유능한 인재를 많이 데려와서 면역기능 세포에 관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3~4년 후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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