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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편리한 '낙태' 보다 '여성 건강'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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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환·최승원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2.06.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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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피임약 약국판매 논란에 여성 건강 '위험'
종교계도 일반의약품 전환 강력 반대

▲ 이날 사단법인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원들도 7일 서울 식약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의협신문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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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놓고 사회적인 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를 비롯해 종교계·시민단체가 여성들의 건강에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7일 사전 피임제는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사후긴급 피임제(응급 피임약)는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식약청은 사전 피임제는 피임효과를 위해 장기간 복용하는 까닭에 여성 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고, 혈전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했다.

또 사후긴급 피임제는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할 경우 사전 피임제에서 문제가 되는 혈전증 등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며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식약청의 이같은 분류 결과에 대해 의료계는 사전 피임제를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한 것은 환영하지만 사후긴급 피임제를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은 "응급 피임약을 반복해서 사용을 하더라도 출혈은 물론 오심·복통 등의 부작용 발현의 빈도가 높고, 임신 실패율이 높아 여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예상보다 클 수 있으므로 전문의약품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한산부인과학회·대한산부인과의사회·진오비 회원들이 보건복지부 앞에서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또 "대한약사회 등 일부 단체가 국민의 편의성을 강조하면서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오·남용 방지를 내세운 의약분업의 취지를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들 의료계 단체는 "당장의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종교계도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고 나섰다. 천주교 청주교구 생명위원회는 7일 식약청이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청원군 오송 식약청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면서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국민을 낙태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주장, 의료계에 힘을 보탰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도 "여성의 건강권 침해는 물론 퇴폐적인 성문화까지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 및 종교계는 정부가 응급 피임약을 상용약으로 인식시키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당장 멈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 천주교 청주교구 생명위원회가 5일 오송 식약청사 앞에서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국민들을 낙태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라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응급 피임약은 정상적인 피임방법과 달리 피임 실패율이 높아,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율 감소에 효과가 없음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며 "응급 피임약이 마치 원치 않는 임신방지의 대표적인 해결책인 양 오도해 잘못된 환상을 일반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안나 진오비 대변인도 "우리나라 정부가 여성들의 성 건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이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응급 피임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경우 피임실패율이 높아지고, 이는 결국 낙태율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반복 사용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사부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이 '여성의 건강 위협'이라는 중요한 이슈가 있음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어 의료계·종교계·시민단체의 반발은 더욱 더 거세질 전망이다.

의·약사 밥그릇 싸움? 국민 건강이 우선이다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는 의료계의 주장은 여전히 의사-약사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다.

피임약 모두가 전문의약품이 될 경우, 또는 피임약 모두가 일반의약품으로 될 경우 의사와 약사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의사-약사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때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정부다. 의약분업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의사-약사간 갈등을 조장, 국민의 불편문제를 비껴갔다.

하지만 의료계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더라도 '국민의 건강이 우선'이라면 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응급 피임약을 반복해서 복용하면 약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부정출혈을 월경으로 오해해 임신 진단이 늦어질 수 있고, 자궁외임신을 늦게 발견하면 난관파열등으로 복강내 출혈을 초래하게 돼 복용 후 세심한 관리가 없다면 다음 임신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응급 피임약 오·남용, 원치 않은 임신 못 줄여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응급 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미국·영국·노르웨이, 스웨덴, 중국 등에서 낙태율이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사전 피임을 소홀히 하게 됨으로써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는 감소하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의 임신과 성병 유병률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응급 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후 사회적 효과 보고사례' 자료를 보면, 노르웨이와 영국은 응급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돼 응급 피임약의 판매량이 급증했지만, 낙태율 감소 효과는 없었다.

스웨덴은 2001년 응급 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된 이후 응급 피임약 매출액이 3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낙태율은 오히려 17% 증가했다. 미국도 응급 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여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나 낙태의 비율을 크게 감소시키는 통계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정상적인 피임율이 매우 낮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응급 피임약 마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된다면 정상적인 피임율의 향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우려되고 있다.

▲ ⓒ의협신문 김선경

응급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된 영국…판매량은 급증, 낙태율은 그대로

응급 피임약이란 계획임신을 위한 정상적인 피임방법을 사용하던 중 불가피하게 실패한 경우나 강간 등의 피치 못할 경우 응급으로 사용하는 고용량의 호르몬(일반 피임약의 10∼15배)으로 만들어진 응급의약품이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대한약사회가 편리성을 앞세우고, 부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전 피임 없는 무절제한 성교의 빈도가 증가해 원치 않는 임신 가능성을 높이고 콘돔등을 이용한 피임 감소로 성병과 골반염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불법 낙태증가 및 이로 인한 후유증이 증가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또 "피임 상담은 여성의 매우 사적인 문제에 대한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노출된 공간인 약국이 아니라 의사와 1대 1 상담이 가능한 병원이 적합하다"며 "의사의 상담을 통해 제대로 된 피임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부회장은 "병원의 응급실도 24시간 운영되고 있고 응급 피임약도 비치가 돼 있다"며 "일반의약품을 찾기 위해 한밤중에 문 열린 약국을 찾아 헤매야 할 것이 아니라, 응급 의약품으로 24시간 운영되는 병원에서 직접 투약할 수 있도록 '의약분업 예외약품'으로 지정하는 것이 더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 7일 이선희 식약청 의약품심사부장이 응급피임약의 안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식약청, 출혈 등 부작용 위험 인식 낮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응급 피임약 반복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선희 식약청 의약품심사부장은 "응급 피임약은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므로 의료계가 우려하는 정도의 부작용은 없다"고 말했다. 또 "가장 흔한 부작용은 구역·구토·일시적인 생리주기 변화등으로 일반적으로 48시간 이내에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재호 의협 의무이사는 "응급 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됐을 때 국민이 얼마나 복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무분별하게 국민들이 복용할 경우 여성들에게 돌아갈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응급 피임약을 복용하면 완전히 피임이 된다는 인식이 높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며 "반복 사용으로 인해 피임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낙태율이 오히려 증가할 것이고, 성문란 등 역기능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WHO 조사결과 대상자 1/3 반복 복용 못참고 이탈

식약청은 7일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계획' 브리핑에서 WHO에서 실시한 반복사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들에게 1개월 동안 응급 피임약을 4회 복용하게 한 결과 월경출혈이 가장 많았고, 그밖에 오심·복통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또 조사 대상 여성들 중 1/3이 조사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탈했다. 그만큼 여성들이 반복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참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식약청은 1/3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왜 응급 피임약 복용을 중단했는지, 월경출혈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최안나 진오비 대변인은 "응급 피임약을 1회 복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여러 번 복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의약품 재분류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응급 피임약을 여러 번 복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실정에서 식약청은 응급 피임약을 무리하게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시킬 것이 아니라 당분간 예외품목으로 구분하고 충분히 안전성 검토를 한 뒤 재분류 논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의협신문 김선경
보건복지부 앞 1인 시위 최안나 진오비 대변인

그녀가 이번에도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정부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예약한 환자 스케줄을 부랴부랴 정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 발표 후 보건복지부로 내달렸다. 한손에는 1인 시위용 피켓과 다른 손엔 전단지를 들고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 진을 쳤다.

지나가는 시민은 물론, 시위를 감시하기 위해 온 무전기를 든 검은 양복의 남자에게도 전단지를 쥐어 준다. "의사와 상담해서 제대로된 피임하세요"란 말과 함께. 전단지를 받아든 '검은 양복'이 황당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는 낙태반대 운동으로 유명세를 치른 최안나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대변인이다.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려는 의약품 재분류에 대해 평을 한다면?

-전문약 중 일반약으로 전환하려는 212개 품목 가운데 응급피임약을 뺀 211개 의약품의 부작용을 모두 합친 것보다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이 더 치명적이다. 피임의 실패가 곧 낙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응급피임약 전환은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라고 본다.

응급피임약 일반약 전환의 가장 큰 문제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치명적인 조치라는 점이다. 임신을 한지 모르고 성관계를 했다가 임부금기의약품인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사전 피임약도 임부금기의약품인데 하물며 응급피임약은 사전 피임약보다 약효가 10∼30배까지 높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형아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원치않는 임신과 낙태를 줄이기 위해 접근성을 높이려는 조치라는 해명이다

-우리보다 10여년 먼저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한 미국이나 영국·노르웨이·스웨덴·중국 등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약 전환에도 낙태율이나 원치않는 임신이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약으로 전환해도 달성하려는 목적이 전혀 달성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의 경우도 일반약으로 전환한 후 사회적인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전문의약품으로 두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응급피임약의 피임 실패율이 최소 15%나 된다는 것이 제약사의 발표다. 현장에서는 실패율이 훨씬 더 된다고 보고 있다. 15∼30%의 실패율에도 약을 먹고 피임한 것으로 생각할텐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피임법은 그때그때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사먹는 것으로 해결해서도 안되고, 할수도 없다.

사후피임약이란 용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응급피임약은 평생 한두번 정말 응급한 경우 마지못해 쓰는 약이다. 하지만 피임연구회가 최근 조사한 결과, 응급피임약 소비자의 80%가 20대 미혼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재복용률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응급하게 평생 한두번 사용해야 하는 응급피임약이 마치 일반 피임약처럼 상시복용되더라는 말이다.

그럼 원치않는 임신과 낙태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나?

-의사를 만나 상담한 후 자기에게 가장 맞는 피임법을 선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산부인과 의사들도 젊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현실을 바꾸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진오비는 종교단체가 아닌 전문가단체다. 전문가단체로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그렇게 얘기했는데 오늘 정부 발표를 보면 일반약으로 하겠다는 말이다. 아무리 근거를 들어 얘기해도 안듣는다. 최종결정되는 8월까지 전환반대를 계속 외칠 것이다.

9일에는 서울 시청앞 과장에서 낙태 반대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정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계속 목소릴 내겠다. 

 최승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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