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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이유 있는 의학계 국제학술대회 '열풍'

coverstory 이유 있는 의학계 국제학술대회 '열풍'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6.0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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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학회 1만 2000명·안과학회 5000명 대규모 컨벤션 성황

 

Cover Story

4월 15일 부산. 아시아태평양안과학회학술대회(2012 Asia Pacific Academy of Ophthalmology Congress, 이하 APAO)가 열린 벡스코 대형 스크린에 참석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주최 측은 이날 오전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과의 위성연결을 통해 한국과 독일, 일본 의료진의 4개 케이스에 대한 수술을 생중계했다. 집도의 브리핑 및 패널과의 토론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동안 대회장을 가득 채운 인파는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눈에 띄는 점은 나흘에 걸쳐 진행된 이 대규모 학술행사가 유럽안과학회학술대회와 동시 개최됐다는 점이다. 2년마다 열리는 유럽안과학회는 원래 올해 차례가 아니었지만, 최신지견을 공유하자는 APAO의 제안을 받아들여 61개국 소속 안과의사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총 참석인원은 5000여명. APAO가 한국에서 개최된 것은 1989년 서울 이후 23년만이다.

의료 한류의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전까지 유수 선진국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에 초청 받아 구연발표 등을 통해 활약하는 게 개인적 영예이자 기회였다면, 국내 학회가 해외 석학들을 불러들여 직접 성대한 잔치를 꾸리는 것으로 양상이 바뀌는 분위기다.

실제 의학 학술대회 개최 건수는 괄목할만한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의학 컨벤션 행사는 2009년 478개에서 2010년 861개로 1년 새 두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 가운데 국제 의학 학술대회의 경우 다른 국제회의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고부가가치 효과가 있어 유치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계 행사 특성상 각국의 지위나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계층이 방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비용 이외에 지역 홍보 효과와 관광 등을 통해 얻게 될 간접적 수익까지 고려하면 대회 유치에 따른 경제적 가치는 참석인원이 늘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경합 뚫고 연이은 성공 "메이저 과만 유치하란 법 있나"

국내 의료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학술대회는 지난해 이맘때쯤 열린 제22차 세계피부과학술대회(World Congress of Dermatology)다. 5월 24일부터 29일까지 장장 6일간 서울 코엑스 전관을 점령한 이 매머드급 학술대회에는 피부과 전문의 및 의료산업 관계자 등 100여개국 1만 2000여명이 참석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학술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2002년부터 공을 들였다. 150명에 달하는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특별시·한국관광공사 및 해외공관까지 총동원해 올림픽·월드컵에 버금가는 유치활동을 펼친 것. 서울은 치열한 경쟁 끝에 2007년 이탈리아 로마와 영국 런던을 제치고 개최지로 최종 낙점됐다.

지금까지 이 학술대회를 개최한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13개국에 불과하다. 학술대회 유치가 단순 전문영역을 넘어 한국 의료계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대한안과학회는 2008년 7월 인도와의 열띤 경합 끝에 APAO 최종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학회 측은 부산이 이미 여러 국제회의 개최로 증명된 아시아 주요 컨벤션 지역인데다, 다채로운 시내 관광이 가능한 점을 홍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위 '메이저 과'를 넘어 글로벌하게 움직이는 분야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는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가정의학 전문가들이 모여 1차 의료에서의 임상지침, 가정의학 전문의의 역할을 논한 '세계가정의학회 제19차 아·태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최소 1500명에서 최대 2000명의 참석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한 조직위원회측은 40여개국에서 최대치에 가까운 1900명이 행사장을 찾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는 후문. 특히 평일이었던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외국인의 참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5월 31일~6월 2일까지 서울 가톨릭의대에서 열린 제28차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서태평양의학교육협회(AMEWPR)와 동시에 열려 관심을 모았다. 세계의학교육연맹의 서태평양지역 산하단체인 AMEWPR은 뉴질랜드·라오스·말레이시아·일본·중국·호주 등 14개국 회원국과 배석국으로 구성돼 있다. 의장은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고려의대 교수). 11개국 의과대학의 주요 보직자 21명이 이사회 참석 차 한국을 방문했다.

내년 국제학술대회 20건 중 절반은 의학계 차지

▲ 지난해 5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2차 세계피부과학술대회. 100여개국, 1만 2000여명의 참석자가 몰려 국내 의료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학술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향후 10년간 예정된 컨벤션 캘린더를 보면 국제학술대회 붐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의협신문>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예상 외국인 참가자가 1000명 이상인 것으로 분류된 대규모 학술행사 유치에서 의학계의 존재는 독보적인 수준이다.

올해 아시아태평양안과학회 총회와 관상동맥중재시술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데 이어 2013년은 국제이비인후과연맹 세계학술대회·세계흉부영상의학회 학술대회·세계중환자의학회·세계신경외과학술대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표 참조>.

관광공사에 등록된 공식적인 데이터 20건 가운데 10건이 의학 분야. 이 정도면 2013년은 국제 의학 학술대회의 '홍수'라 부를 만하다.

이후에도 세계내과학회(2014년)·세계알레르기학술대회(2015)·세계고혈압학술대회(2016) 개최 등으로 대도시에 위치한 컨벤션센터는 벌써부터 성수기 예약이 꽉 차 있다.

학계에서는 최근 많은 국제학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현상에 대해 "국내 의료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의사들의 발표 논문이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확연히 순위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상에 올라서 있다는 것.

이에 대해 김동익 대한의학회장(연세의대)은 "1980~90년대 의사들이 미국에 많이 가는 '아웃바운드'를 통해 실력을 알렸다면, 이제는 '인바운드' 국제화에 적극 나서야 할 시기"라면서 "모든 교류가 이 땅에서 이뤄지게 하는 게 의학회의 목표"라고 언급했다.

젊은 의사들이 국내에서 열리는 학술대회를 통해 국제 무대를 향한 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학회 유치가 갖는 또 다른 이점으로 꼽힌다. APAO에서는 장래성이 있는 국내외 젊은 교수 60명을 선정해 등록비를 면제하고, 500달러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곽형우 대한안과학회 이사장(경희의대)은 "사실 국제학회의 주인공은 젊은 의사들이다. SCI 학술지에 논문만 게재할 게 아니라, 자꾸 교류해야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라며 "호스트로서 손님을 맞이하면 사귀기 더 편하지 않나. 어떤 학문이든 일단 얼굴은 알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의사들의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학술 목적의 회의장을 포함한 관광 및 숙박 여건이 뒷받침 되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유치 활성화의 주요인이다.

최기용 안과학회 홍보이사(한길안과병원)는 "기존 미국과 유럽 중심에서 아시아 국가의 주도적 개최로 학술대회 동향이 바뀌고 있다"면서 "유치가 느는 것은 국내 의료수준이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는 데다, 한국이 그만큼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2013~2016 개최 예정인 의학부문 외국인 참가자 1000명 이상 국제학술대회

 

연 도 행 사 명 날 짜 장 소
2013 제29차 세계 인유두종바이러스 학술대회 5월 3∼9일 서울교육 문화회관
제20차 국제이비인후과연맹 세계학술대회 6월 1∼5일 서울 코엑스
제3회 세계흉부영상의학회 학술대회 6월 8∼11일 서울 코엑스
제20차 세계노년학 노인의학대회 6월 23∼28일 서울 코엑스
제101차 세계치과의사협회총회 8월 29일∼9월 1일 서울 코엑스
제12차 세계중환자의학회 8월 29일∼9월 1일 서울(예정)
제29회 국제간질학술대회 9월 중 서울 코엑스
제5회 세계수면대회 9월 7∼11일 서울 코엑스
제15차 세계신경외과학술대회 9월 9∼13일 서울 코엑스
핵의학 심포지엄 및 의료영상 컨퍼런스 10월 27일∼11월 2일 서울 코엑스
2014 제6차 국제조울병학회 학술대회 3월 26∼29일 서울 코엑스
2014 세계수혈학회 6월 20∼24일 서울 코엑스
제32차 세계내과학회 학술대회 10월 26∼30일 서울 코엑스
2015 제6회 세계수면대회 3월 중 서울 코엑스
2015 국제정맥학회 총회 9월 7∼11일 서울(예정)
세계알레르기 학술대회 10월 10∼14일 서울 코엑스
2016 2016 세계견주관절학회 학술대회 9월 3∼10일 ICC 제주
제26차 세계고혈압학회 학술대회 9월 24∼29일 서울 코엑스

 

※ 출처: 한국관광공사 MICE CALENDAR in KOREA

"학회 참석에 관광은 덤" 직·간접 국익 창출 효과

그렇다면 국제학술대회를 한 번 유치할 때마다 생기는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외국인 학회 참가자들은 학술대회 기간 동안 등록비와 숙박비뿐 아니라 쇼핑비·식음료비·현지교통비·오락·운동·문화 등의 비용을 소비하면서 체류하게 된다.

최근에는 외국인 참석자가 많은 학회에서 통상적인 학술 세션 이외에 한국을 소개하는 별도 프로그램이나 주변 관광코스를 준비하는 것도 자연스런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다. 환영연에서 문화공연단을 초청하고, 전통음식을 선보인 세계피부과학회는 의학 교류를 넘어 한국의 문화대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태가정의학회에서는 3일째 되는 날 제주 중문단지의 수려한 경관을 따라 함께 걷는 해돋이 관광을 진행했다. APAO를 찾은 유럽 참석자들은 "학회 기간 동안 부산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며 높은 만족도를 보이기도 했다.

대규모 국제행사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생산·부가가치·수입·노동유발계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산업연관 분석법이 흔히 쓰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세계피부과학회의 경우 관광·숙박·쇼핑 등 참가자들이 지출한 직접 비용만 1500cc 자동차 5000대 수출에 맞먹는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임대료·세금 등 간접 효과까지 감안하면 20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와 2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2007년 9월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에는 5000여명이 참석해 약832억 원의 수익이 생긴 것으로 집계된다. APAO는 부산 개최 한 달 전 이미 주변 호텔 2000개 숙소 및 관광 패키지가 동이 났다. 주최측은 참석자들의 직접 지출 비용만 80억 원 이상, 약 1500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이상의 통계로 보면 국제 의학 학술대회는 더 이상 의료계만의 잔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국가 산업적 측면에서도 육성하고 지원해줘야 할 성장동력인 것이다.

공정경쟁규약 적용 혼란…국제화 걸림돌 개선될까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강화된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은 리베이트 쌍벌제 한파로 얼어붙은 학술활동을 한 층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소 선정에 있어 낭비성이 있는 곳을 지양하고, 검소하게 행사를 진행하려는 변화가 포착되기도 하지만 수 천명이 몰리는 국제학술대회는 수용가능한 장소를 구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대폭적인 비용 절감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에서 아·태가정의학회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영식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울산의대)은 학회 사무총장으로부터 "2019년 세계학회 유치에도 한국이 유리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 이사장은 "행사 후원을 요청하면 리베이트다 뭐다 해서 인식이 좋지 않다. 작년에 후원을 약속한 제약사들이 올해 무더기로 펑크를 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며 "예전에는 맨파워가 부족해서 유치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재정이 걱정돼 집행부에서도 세계학회 유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의학회는 규약의 목적과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건실한 학회와 중요한 학술대회에 대한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수천 명의 외국 저명 의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힘들게 유치했는데, 경직된 행정절차로 원만한 운영에 차질을 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학술대회 참여시 국내학회가 해외 학술단체로부터 위임장을 받는 것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익 의학회장은 "공정경쟁규약이 학문의 주체가 되는 의료계 입장에서 결정된 게 아니라, 제약계와 공정거래위원회 사이 내부 규약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기업체의 순수한 기부는 산학협력 차원에서 어느 정도 권장돼야 하지 않느냐"며, "이러한 과정에서 의학의 새로운 발견이 이뤄지고 신의료기술이 발전해나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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