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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공보의 "휴가 잡혀도 배 안뜨면 발만 동동"

울릉도 공보의 "휴가 잡혀도 배 안뜨면 발만 동동"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5.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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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 대공협 '위문단' 전격 동행…환자 헬기후송 현장 취재

동해 유일의 도서군인 울릉도는 요즘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5만 1370명. 5월에는 하루 평균 방문객만 2000명을 돌파했다. 울릉군민은 1만 명을 넘어섰다.

울릉도가 해양 관광지로 급부상할수록 묵묵히 주민과 관광객들의 건강을 지키는 공중보건의사들의 손길은 바빠진다. 극장도, 도넛 가게도 없는 낯선 오지에서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의사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의협신문>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위문단과 함께한 2박 3일간의 특별한 동행기를 소개한다.

 
▲ 울릉군 보건의료원은 2004년 현 위치에 20병상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의료원장을 제외한 21명의 의사는 모두 공보의로, 이들은 평균 1년을 체류한 뒤 이듬해 다른 지역을 신청해 근무하게 된다. 강아지 '보이'도 그 시간을 함께한다. ⓒ의협신문 이은빈

【울릉=이은빈기자】가만히 있어도 콧노래가 나올 법한 봄의 끝자락, 울릉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18일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포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가 아침 9시.

대공협 위문단으로 나선 유덕현 회장과 전인표 부회장, 박수동 대외협력이사와 은동엽 고문은 "달달한 게 먹고 싶다"는 현지 공보의의 부탁으로 인근 대학가에서 D사 도넛 여섯박스를 어렵게 구입했다.

3시간 30분 가량 항해한 배는 오후 1시께 울릉도 도동항에 닿았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가 쨍쨍한 햇볕을 받아 연푸른 에머럴드빛을 띤다. 마중 나온 김종민 공보의(30)의 인도로 구비구비진 언덕을 오르니 '울릉군 보건의료원'이란 간판이 보였다.

울릉도는 1년 중 쾌청한 날이 26일밖에 되지 않는 해양성 기후 지역이다. 강수일은 155일, 겨울이면 화산암으로 이뤄진 섬 전체가 눈으로 뒤덮힌다. 하루 한 차례 왕복 운항하는 배편은 그마저도 기후가 불안정한 시기가 되면 무기한 연기되기 일쑤다.

공보의들이 휴가가 잡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의료원 로비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 한 원무직원은 "이렇게 좋은 날 오신 것도 행운"이라며 활짝 웃었다.

울릉군 보건의료원은 직제개편을 거쳐 2004년 현재 위치에 20병상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의료원장을 제외한 21명의 의사는 모두 공보의로, 이들은 평균 1년을 울릉도에 체류한 뒤 이듬해 다른 지역을 신청해 근무하게 된다. 도간 이동이 가능해 경상북도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지역을 지원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 매주 금요일 저녁, 김영헌 보건의료원장과 공보의들은 울릉군민과 관광객들의 보건의료 지원과 각종 현안에 대한 회의를 한다.

"원서 들어온 게 63년생 한 명 뿐이야? 어휴…"

간호사 2명 채용 공고를 낸 김영헌 의료원장(47)의 표정이 어둡다.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기간제근로자를 뽑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지원자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 김 원장은 "의사는 공보의로 확보하더라도 연고지도 없는 외딴 섬에 젊은 간호사가 들어오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만은 대부분 육지 "20년도 더 된 기기 불안해"

실제로 인력난 해소는 지역 내 유일한 의료기관인 병원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손꼽힌다. 만성적인 보조인력 부족으로 원장이 직접 주사를 놓고, 전문의가 접수를 도맡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별 관련이 없어보이는 안과와 일반외과 진료실이 1명의 간호사 자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원내조제를 하고 있지만 약사가 없어 10여년 전부터 간호사가 약을 관리해오고 있다. 치과에서는 치위생사가 없어 공보의 혼자 이 치료를 하거나, 간호사가 약간의 보조를 맞춰주는 정도가 전부다.

35년을 고향인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최종순 간호계장(56)은 울릉군 보건의료의 산 증인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는 "의료진이 상주해야 하는 응급실에도 환자가 많지 않으니 간호사는 없어도 되지 않냐는 행정편의적 발상이 문제"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보의들이 발령받은 게 4월 20일이니, 방문일은 이들이 복무 한달째에 다다른 시점이기도 했다. 최진영 산부인과장(31)은 그 사이 분만 한 건을 받았다. 도내 전체 분만건수가 1년에 3건 정도임을 감안하면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한 셈이다.

최 과장은 "근처에 산후조리원이 없어서 요즘은 대부분 육지에 가서 낳는 추세"라면서 "분만 과정에서 과다출혈 등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대처능력이 떨어지다보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2층에 위치한 수술실에서는 맹장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 진행된다. 수술실 전담 간호사가 1명뿐이기 때문에 휴가 등 부재중일 때는 관련 전문의가 어시스트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경진 마취통증의학과장(31)은 20년은 더 된 듯한 노후된 마취기기가 영 불만이다. 이 과장은 "기기가 너무 오래돼서 꼭 봐야하는 모니터 수치가 안 나와 버리니까 불안한 감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진욱 일반외과장(30)에게도 열악한 수술장비는 고민거리다. 그는 "이틀에 한 건 정도 수술을 하는데 수술장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하다"면서 "병동 간호사도 조무사 출신이 많고, 회복실도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 산허리가 아늑하게 감싼 평온한 마을 건너로 하늘과 맞닿은 쪽빛 바다가 모습을 내보인다.

"여자친구 없어요" 외로운 영혼들의 끈끈한 우정

금요일 저녁 6시. 고된 일과를 마친 원장과 공보의들은 3층 세미나실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며 회의를 진행한다. 관사 수돗물이 너무 약하게 나와 불편하다든가, 무선 인터넷이 병원에서 되지 않아 메일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애로사항이 쏟아졌다.

설수환 내과장은(29) "내과는 외래환자가 많아 컴퓨터가 자주 다운된다"면서 "최신형 컴퓨터를 깔아달라"고 장난기 어린 볼멘소리를 던져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고, 섬 안에는 극장이나 카페 같은 흔한 편의시설도 없다. 밤이 되면 먹먹한 바다를 비추는 등대만이 희미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외딴 섬. 제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울릉도에 오게 된 공보의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이어진 뒷풀이에서 김종민 공보의는 "굳이 회의가 끝난 다음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서너번 이상의 술자리는 기본"이라고 귀띔했다. 이제 한달째.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젊은 의사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날마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종민 공보의와 '보이'의 즐거운 한 때. 
장남길 응급의학과장(32)은 "근무환경이 나쁜 건 아니지만, 교통이 불편한 게 가장 힘들다"며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털어놨다.

스마트폰 '페이스 타임' 기능을 이용해 임신 5개월인 아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다는 그는 "태교를 곁에서 할 수 없어 속상하다"면서 아내가 울릉도로 오는 6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이 기혼자일 것이라는 기자의 근거 없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1명 중 '품절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미혼자 가운데서도 현재진행중인 연애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옆자리 공보의는 "거의 다 정리하고 오는 분위기"라고 씁쓸히 읊조렸다.

비뇨기과 전문의인 양소전 공보의(30)는 인적이 드문 북면 보건지소로 배치받으면서 인테리어의 세계에 재미를 붙인 케이스다.

그는 "같은 울릉도가 아니다. 여기 있으면 관광객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서 "자취 10년 노하우를 발휘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관사를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부상자 헬기후송, 그 긴박한 순간

토요일 저녁 6시 30분. 주말을 맞아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고 식사를 기다리던 의료진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거북바위가 있는 해안가 도로에서 승용차 한대가 관광객 3명을 들이받은 뒤 바다로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운전자는 무사했지만, 현장에서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응급실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한낮 스쿠터를 타고 단체로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신나하던 얼굴들은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아, 아파." 들것에 실려온 40대 여성환자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묻는 질문에 낮은 신음만 되풀이했다. 옆에 눕힌 비슷한 또래의 여성환자 얼굴은 피범벅 상태.

간호사가 혈압과 체온을 확인하는 동안 빙 둘러선 각 진료과장들은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치료 순서를 상의했다. 한호성 정형외과장(31)은 "빨리 CT를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다급히 제안했다.

"자꾸 말만 하지 말고, 행동을 취해야 할 거 아냐!"

채 5분이 지났을까. 환자 동행인의 고성이 울렸다. 관광하던 지인이 사고를 당하는 광경을 본 그 중년남성은 극도의 흥분상태로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였다. 응급실 한쪽 벽에 게시된 '폭행·폭언·난동을 하는 자는 즉시 위법조치함'이라는 경고문은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 의료진이 교통사고 부상환자의 CT 촬영 결과를 보며 치료법을 상의하고 있다.

2010년 울릉도에서 근무한 은동엽 대공협 고문은 "관광객이 다쳐서 오면 기본적으로 지역 의료진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의들이 총출동해 오더내고 상의하고 있는데, 보호자도 아닌 사람이 난동을 부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이해못할 것도 아니지만 신뢰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CT촬영 결과 환자는 뇌 부상이 심각했다. 김영헌 원장은 응급헬기를 불렀다. 도착까지는 1시간이 소요된다. 응급환자 후송은 이전까지 119 소방본부에서 담당했지만, 자주 결항되는 일이 생기면서 해양경찰청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관계 부처를 설득해 신속한 후송체계를 구축한 것은 순전히 김 원장의 노력 덕분이라고 병원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후송차량은 저동항 방파제를 향했다. 헬기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8분. 울릉도에 와서 두번째 헬기를 타게 된 김종민 공보의는 차 안에서 수액을 연결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했다.

"수년 전에는 하루 3번까지 헬기를 부른 사례도 있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후송할 때마다 의사가 동행하기 때문에, 주민으로서는 그만큼의 의료공백이 빚어지는 측면이 있다.

상상 이상의 소음과 진동을 동반한 헬기는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을 태우고 깜깜한 바다를 가로질러 외딴 섬을 벗어났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동분서주한 김영헌 원장은 그제서야 "저녁 메뉴는 회가 어떠시냐"며 말을 걸어왔다. 밤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신비의 섬'에 뛰어든 그 남자에겐 무슨 일이…


-한호성 정형외과장의 24시-

울릉군 보건의료원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고, 짬짬이 수술도 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한호성 정형외과장(31). 의국장으로서 공보의들을 대표하는 일을 겸하고 있는 한 과장의 하루 일과를 <의협신문>이 밀착취재해 1인칭으로 재구성했다.

09:00 "선생님, 그냥 주사 놔주시면 안되나요?"
아침부터 스테로이드 주사를 찾는 어르신 환자를 설득하느라 진을 뺐다. 신체 검사를 하고 약 처방을 해드렸는데 주사는 없냐고 아쉬워하신다. 밭일을 해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대뜸 주사를 놔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무릎과 허리 수명을 당겨쓰는 꼴이라 좋지 않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한호성 공보의는 한 달 동안 1059명의 환자를 봤다.
10:50 내향성 발톱이 심한 환자가 있어서 수술을 했다. 전날 GS 과장과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수술방법을 상의했는데, 내가 하는 과정을 지켜보고는 "동영상 보다 낫다"고 칭찬해줘서 으쓱했다. 15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지만 환자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13:00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다시 외래. 지금까지 19명을 봤으니 여기 온 이래 가장 한가한 수준이다. 환자 인대에 이상이 있어서 MRI를 찍어봐야할 것 같은데, 일하시는 분이라 육지에 나가려면 7~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일단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14:20 잠시 환자가 끊긴 시간. 간호사가 지역 특산품이라며 울릉도 우산 고로쇠물을 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맛인가 했는데, 달달하고 인삼향도 나는 게 익숙해지니 먹을만하다. 약소도, 따개비밥도 여기 와서 처음 먹어본 것들이다. 육지 음식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울릉도에 와서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기쁨도 있는 듯하다.

16:00 80대 어르신이 무리하게 약초를 캐다가 무릎이 쑤신다며 찾아오셨다. 울릉도 특산물로 '명이절임'이라는 게 있다. 산비탈에서 자라는 명이나물을 뜯어 간장에 절인 반찬인데, 채취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5월 초 '명이 특수' 기간이 끝나고 나니 골절 환자가 확연히 줄었다. 한 달 동안 1059명의 환자를 봤다.

18:30 6시까지 근무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테니스를 친다. 30분만 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 다들 초보지만 재미를 붙여 열심히 하고 있다. 이웅휘 가정의학과 공보의(30)는 야구를 시작한다고 글러브를 주문했다. 매년 열리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하면 포상휴가를 준다는 솔깃한 얘기도 들었다.

21:00 약속을 잡지 않아도 저녁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담소를 나눈다.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거나 새로 출시된 게임을 같이 하다보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구나 싶다. 대학병원에 없는 케이스가 많아서, 내일부터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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