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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젊은 의사 커뮤니티가 '활짝' 피었습니다

coverstory 젊은 의사 커뮤니티가 '활짝' 피었습니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5.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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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전공의·공보의 합심 네트워크 본격화 "최대 5만명"
'주닥''코메디언' 사이트 5∼6월 나란히 오픈…참여도 '관건'

 

Cover Story

올해 초 인턴제 폐지를 두고 한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의학계와 어느 정도 조율이 끝나고 입법예고만을 남겨두고 있던 상황에서 전국 의대생들이 "우리를 소외시키지 말라"며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바뀌는 수련제도를 적용받게 될 당사자로서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를 내세운 서명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삽시간에 3000여명이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에 기반한 결집력이 두드러졌다. 학생들은 지역·학교를 불문하고 뭉치기 시작했다. 중심에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이하 의대협)가 있었다.

얼핏 위기감에 사로잡힌 의대생들이 우연히 행동에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인턴제 폐지는 이들이 조직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내세운 일종의 전략이자 본보기였다. 전공의, 공중보건의사와 예비의사인 의대·의전원생이 '젊은 의사'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이고 있다. 그들의 놀이터는 스마트폰과 웹상의 커뮤니티다.

이달 20일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는 '주닥(www.judoc.net)'은 의대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가 합심해 만든 젊은 의사 허브 사이트다. 학생과 전공의·공보의 외에도 군의관과 임상강사(펠로우)까지 20~30대 연령층이 주 공략대상.

신분 검증 '철저'…멘토링·과별 게시판 "여기 모여라"

주닥은 '주니어닥터'를 줄인 말로, 운영진은 학생 1만6000여명·전공의 1만7000여명·공보의 3000여명·군의관 2400여명 등을 추산하면 최대 5만 명까지 회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젊은 의사들이 온라인에서 소통 채널을 강화함으로써 의료계의 중요한 한 축으로 급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로그인 화면부터 뜬다. 회원이 아닌 사람은 글을 보거나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 내부가 어떤 메뉴로 구성돼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가입은 의대협·대전협·대공협과 연계한 이중 확인과 확실한 신분 증명을 토대로 이뤄진다.

"회원 외 열람, 불펌을 금지한 보안지침을 정하는 데에만 막대한 법률 자문료가 들어갔다"고 운영진 중 한 사람은 귀띔했다.

젊은 의사 네트워크라고 해서 반드시 '젊은' 사람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닥에서 운영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선배의사들은 기꺼이 가입대상이 된다. 단, 보이는 메뉴나 글쓰기 권한에서 차등이 있을 수 있다.

운영진은 학생·인턴·전공의·공보의·군의관·임상강사·봉직의 등 다양한 계층이 모이는 사이트라는 점에 착안해 이들을 연결해주는 멘토링 시스템을 고안했다. 가령 예과 1학년 학생과 본과 2학년, 전공의 3년차와 공보의, 대학교수를 한 팀으로 엮어 소통을 유도하는 식이다.

사이트 메인 상단에는 ▲젊은 의사 광장 ▲영닥터 지식인 ▲자원봉사 ▲연애/결혼 ▲유머게시판 ▲병원/진로/멘토링 등의 공통메뉴와 더불어 가입 당시 입력한 회원 정보에 따른 개별 메뉴가 보이도록 돼 있다. 소아청소년과 여성 전공의가 로그인을 할 경우 이상의 공통메뉴 옆에 '닥터 레이디' 게시판과 '소청과 전공의' 게시판이 별도로 나타난다.

이 같은 기능은 전공의들이 특정 사안에 맞물려 과별로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할 일이 생기거나, 단체 내에서 의견을 수렴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사이트 제작을 주도한 안상현 대전협 학술이사는 "정책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터졌을 때 당사자들이 뭉칠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서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에 따른 대응전략을 정하는 논의의 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련병원 정보 공유, 처우 개선에도 잠재적 영향"

주닥이 이른바 '킬러컨텐츠'로 주력한 기능은 따로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불안한 미래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련병원/과별 현황파악 정보가 그것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젊은 의사들은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병원과 해당 과 의국 분위기가 어떤지 자유롭게 묻고 답함으로써 사전에 유용한 팁을 얻게 된다. 회원들 사이에서는 A병원에서 받고 있는 실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잡일은 얼마나 시키는지, 주치의가 하루에 환자를 몇 번 보는지와 같은 은밀한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될 수 있다.

이는 진로 탐색에도 도움이 되지만, 다른 곳과 비교해보면서 현재 자신의 위치를 평가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도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대공협 홈페이지에는 회원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보건지소에서 하루 환자를 어느 정도 보는지, 보조인력은 몇 명인지, 휴가를 낼 때 구두로 얘기해도 되는지와 같은 '깨알 같은' 정보가 수시 업데이트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안 학술이사는 "수련병원에 대한 정보는 기본적으로 조사하고 들어가는 게 맞는 건데, 그 동안은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정보 비대칭이 심화되다 보니 잘못된 선택을 한 뒤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다른 병원의 근무여건과 비교해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고, 미리 알아보고 갈수도 있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닥이 전공의를 메인 타깃으로 젊은 의사 네트워크의 허브 기능을 맡기로 했다면, 의대생들은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코메디언' 사이트 구축에 한창이다. 장차 한국 의료를 책임질 인재들의 공간이라는 뜻을 친근한 어감을 살려 함축한 코메디언은 주닥과의 연동을 통해 '젊은 의사 광장'과 '영닥터 지식인' 메뉴를 함께 쓰기로 했다.

 #. 지식인 예시: Foley cath.(소변줄) 넣는데 urine bag(소변주머니) 아래 밸브를 잠그지 않아 바닥에 소변이 다 샜어요. 어떻게 하죠?ㅠㅠ

이 가운데서도 영닥터 지식인은 의료계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A 다음에 나오는 알파벳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엉뚱한 질문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질문자가 궁금한 점을 올리면, 선배의사가 경험을 토대로 부담 없이 댓글을 달 수 있다. 전체 익명이 원칙이지만 답변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선배의사의 ID에는 'R3'과 같은 신분이 간략히 표시된다.

남기훈 의대협 의장은 "실습을 잘 돌기 위해서는 선배들 경험이 중요하다. OCS 사용법이나 논문 저널을 찾을 때에도 조언 한마디로 실수를 줄일 수 있다"며 "평소 궁금해도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나 자존심 때문에 물어볼 수 없었던 궁금증을 마음껏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의학 관련 서적 및 공구를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코디 마켓'과 커뮤니티 참여도를 반영한 포인트 제도가 운영된다. 의대협은 6월 말 사이트 오픈을 목표로 구체적인 컨텐츠 보강안을 마련하고, 마켓 운영을 위해 주요 출판사 및 교재 판매처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의사사회 근본 뒤흔들 '커뮤니티 재편' 바람

그렇다면 의사 커뮤니티는 어떻게 형성돼 있으며, 이들 사이에서 주닥과 코메디언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안착할 것인가. 현재 전국의사총연합·대공협 등 각 직역단체는 대체로 공식 사이트와 대표 커뮤니티가 분리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표 참조>.

 ▲의사 커뮤니티 현황

개원의들이 '닥플'을 통해서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름의 집합체를 형성하고 있다면, 공보의들은 '공보닷컴'에 모여 복무지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의사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모두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상업성에 물들어 발길이 뜸해진 곳도 있고, 사이트 특성상 의사 국가고시 준비기간에만 '반짝' 인기를 끄는 곳도 있다. 주닥과 코메디언이 노리는 것은 이들 커뮤니티의 재편이다.

의대생들은 코메디언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국시에 대한 정보도 얻고, 젊은 의사 네트워크를 표방한 주닥은 전공의를 중심으로 임상강사, 군의관까지 흡수함으로써 활동 범위를 넓힌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도제식 교육에 얽매여 폐쇄적인 행동반경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의사사회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학회나 지역의사회 같은 특정 행사에서나 다른 지역·학교 출신 의사를 만날 수 있었던 인터넷 세대 이전의 선배의사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며 격세지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수도권의 한 50대 개원의는 "나 때만 해도 서울시내 8개 의대대표가 모여 진행한 체육대회가 타 의대와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그마저도 광주 사태로 중단됐었다"며 "젊은 의사들부터 열린 마음을 갖고 교류하기 시작한다면 기성세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온라인을 통해 강화된 조직력은 '오프라인'에서의 정치 세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 같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익명게시판 특성상 마녀사냥식의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사이버 윤리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 36대 임원진은 지난해 회원 4명이 의협 플라자 게시판 및 의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집행부에 대한 허위사실을 지속적으로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중앙윤리위원회에 징계를 요청한 바 있다.

제37대 집행부가 3일 첫 상임이사회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징계요청을 철회키로 했지만, 온라인에서의 상호비방전이 의료계 내부의 반목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전 병원의사회장을 지낸 주신구 회원은 4월 29일 열린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익명게시판의 폭력성과 인격살인을 고발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주 회원은 배포한 자료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악플로 무참하게 짓밟히고 마음을 다친 회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며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사회원을 향한 욕설·매도·신상털기 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심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패배주의 답습 거부" 시험대 오른 젊은 의사들

익명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상의 사례들은 젊은 의사들의 커뮤니티에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다. 주닥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반말과 비속어, 욕설 등을 금지한 규정을 만들었다.

성패는 회원들이 규정을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상현 학술이사는 "게임사이트와 공보닷컴 운영진으로 7년여간 참여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다"면서 "10년 가까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 주닥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여론 형성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의료계의 어두운 분위기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김일호 대전협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에 고립돼 있던 의사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창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 잡음도 있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포용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닥 설계에 참여한 한 전공의는 "'너희가 나오면 다 끝났다. 다 똑같다'고 하면서 한숨쉬는 선배의사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왜 의사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지 이유를 생각해보니, 타의에 의해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며 "타의에 의해 움직이는 삶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거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하루 글 1~2개 올라오는 정도로 커뮤니티가 죽어 있다면 소통의 창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주닥 운영진은 초창기 회원 1만 명 확보를 목표로 주변 인맥과 홍보수단을 최대한 동원해 네트워크 활성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유덕현 대공협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공보의가 한데 모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처음으로 생겼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정착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생길 수 있겠지만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박찬대 의협 정보통신이사는 새로운 커뮤니티 활동에 기대감을 내비치면서 운영진이 원할 경우 협회 차원에서 서버 공유 등의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공의 수련병원 정보 공유에 특히 관심을 보인 그는 "젊은 의사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목적을 분명히 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기술자문 등의 지원을 요청하면 언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문화산업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이현석 원장(현대중앙의원)은 "인터넷을 통해 분파가 심해지고, 정보가 왜곡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심각한 수준의 인신공격이나 사실 왜곡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본인 시야를 좁게 만든다"면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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