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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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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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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산대병원 영상의학과)

▲ 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산대병원 영상의학과)

음력 초사흘 인가 알 수는 없지만 그날도 밤늦게 까지 응급환자들과 혼잡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 한시쯤 한 아저씨가 가냘픈 한 소녀를 등에 업고 응급실로 들어섰다. 소녀의 얼굴은 하얗게 창백했고 미간은 수직으로 주름이 져 있었으며 짙은 눈썹은 상사의 계급장처럼 굽어져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응급실로 내원한 것이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응급실로 오기 전에 담당의사와 통화가 되었고 그 의사의 지시대로 응급실로 급히 달려 온 것이다. 소녀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어머니가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병원에 왔으니 안심하라고 말을 했다.

담당의사는 이미 그 소녀 환자의 병을 알고 있는 듯, 응급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간호사더러 병실로 옮기게 하고는 그날 당직 인턴인 필자에게 오늘이 고비일지 모르니 환자 곁을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고 했다.

전날 밤에도 응급환자들과 시달렸고 오랫동안 목욕을 못해 머리엔 비듬이 눈송이처럼 떨어질 판이다. 정말 피곤하고 신경이 곤두 서는 일이었지만 그 소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배의사의 부탁에 순응했다.

담당의사는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잠 좀 잘 수 있게 부탁한다는 투로 들렸다. 병실로 옮겨 약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그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미국 가서 치료 받도록 해 줄 거지.

' 순간 필자는 그 소녀가 심장판막증 환자고 류마티스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심장판막부전증 상태로 폐부종이 왔기 때문에 혈액순환에까지 악순환이 일어나면서 환자는 급급히 황폐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그래 그래' 하면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녀의 목가슴에는 숨을 내 쉴 때 마다 꼬르륵 꼬르륵 물소리가 들렸다. 폐부종으로 기관지에 물이 고였다는 신호음이었다. 소녀는 아빠로부터 다짐을 받았다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듯 숨을 가볍게 몰아쉬었다. 이마에 주름을 펴지고는 잠들듯 고요해졌다. 짙은 눈썹이 누에처럼 펴지더니 무중력 속을 활주하는 솔개의 날개처럼 아미산을 넘어 사라지고 있었다. 심장이 멈춘 것이다.

소녀가 누워 있는 침대를 평행하게 펴고는 그녀의 가슴뼈위로 오른손을 얹고 그 손등에 왼손을 얹어 심장 압박술을 시작했다. 당시엔 담당의사가 와서 사망을 선언할 때까지는 인턴이 심폐소생술을 지속해야하는 것이 인턴의 의무이기도 했다.

또한 필자는 그 담당의사가 새벽 날이 샐 때까지는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것이 후배인 필자의 도리라고 생각하면서, 달리 환자의 부모와 간호사가 입회하고 있는 이곳에서 심폐소생술을 중단할 수 있는, 그 어떤 합리적인 구실을 찾으려고 잔머리를 굴리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살며시 내 팔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아이가 되살아난 게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그러자 곁에 있던 소녀의 어머니가 "그만 애를 편안하게 좀 해 주세요" 하면서 마치 의사가 환자를 괴롭히는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말던지 왜 병원에 와서 의사로 하여금 아이를 편안하게 저승 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가 하고 반문하고 싶었다. 심폐소생술로 이 아이가 살아 난 적이 있었다면 지금 내가 심폐소생술을 중단한다면 그건 일종의 살인행위가 되는 게 아닌가.

방금 전에 나를 쳐다보았던 그 소녀의 눈빛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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