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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650리 길 홀로 달리다
고향 650리 길 홀로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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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0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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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214회 완주 이재승 연세대명예교수

1944년 9월 생인 이재승 연세대 명예교수(소아과학교실)는 대한신장학회장·대한소아신장학회장·대한소아과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의학 발전을 견인했다.

2002년 마라톤에 입문, 마라톤 풀코스를 214회 완주했다. 2005년부터는 울트라마라톤에 심취, 100km, 100마일, 308km 국토횡단에 이어 2007년 622㎞ 국토종단 울트라마라톤 최고령 도전자로 이름을 남겼다.

지난 2010년 2월 정년 이후에도 마라톤 완주에 도전, 지난 4월 1일 제 10회 영주소백산마라톤대회(4시간 23분 39.64)에 참가해 214회째 완주기록을 세웠다. 지난 4월 13∼15일에는 서울에서 전주까지 260㎞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 68세라는 나이를 무색케 하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에서 고향 전주까지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4시간 예정으로 1번 국도를 따라 서울에서 전주까지 260km를 달려 36회 전주 풍남 초교·북중 졸업동기와 39회 전주고 졸업동기들을 만나고, 96세이신 아버님을 뵙고 오기로 했다. 지난해 1월 90세의 어머님이 소천하시고, 1년이 지난 요즘에는 아버님의 거동이 편치 않아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맞아 '전주고 졸업 50주년 기념 650리 홀로 달리다'로 정하고 동창들에게 알렸다. 위험하다고 말릴 것이 뻔하고,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미리 결정했다.

요즘 봄날씨는 비가 오고 춥고 변화가 심해 걱정했으나 다행히 4월 13∼15일은 날씨가 좋다는 예보였다.

4월 13일 금요일 오후 6시, 연세대 정문에 현수막을 걸고 동창 친구들과 국제마라톤 클럽코리아 회장단의 격려와 응원 속에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참가비를 지불하는 공식 울트라마라톤대회는 50km 마다 물과 간식을 준다. 자기 짐을 맡길 수 있어 100km 마다 운동화와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다.

샤워와 식사도 할 수 있으며, 텐트 안에서 잠도 잘 수 있다. 곳곳에서 자원봉사자와 감독관들이 주자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고, 감독한다. 동료들과 같이 달리기에 위험성도 적다.

반면, 홀로 달리기는 이런 지원이 없어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 다만 구간마다 시간제한이 없어 편안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고산등반이나 마라톤은 천천히 시작해 자신 만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더 높이 오를 수 있고, 더 멀리 달릴 수 있다. 킬리만자로 등정·에베레스트 7000m 등반·한반도 횡단 308km 완주·종단 400km를 달린 경험을 통해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자신 만의 페이스 유지해야 더 멀리 달려

대학교 내에 걸려있는 플래카드(Yonsei, where we make history)를 뒤로한 채 260km 달리기의 첫발을 내딛었다. 첫 코스는 신촌기차역-이대앞-마포대교-대방역-1번 국도.

7년전 위암으로 80% 가량 위를 잘라낸 후로는 조금씩 자주 먹는다. 신촌기차역 앞에서 산 김밥을 먹으면서 달렸다. 신호등이 많아 시간이 지체됐다. 벚꽃놀이 인파로 어수선한 여의도를 벗어나 대방역에 도착하니 저녁 7시. 퇴근시간이라 길에 사람들이 많다.

많은 신호등을 건너며 대림삼거리-독산동 시흥사거리를 지나 박미삼거리에 이르니 8시 30분. 분식집에 들려 늦은 저녁식사로 잔치국수를 주문했다. 위험한 갓길을 달려 비산사거리-의왕도시공사-지지대휴게소를 지나 수원종합운동장에 들어서니 밤 12시다.

건너편 신선설농탕 집에서 밤참을 먹었다. 수원버스터미널 사거리에 오니 14일(토요일) 1시 22분.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샀다. 이후의 새길은 공사중이라 갓길이 없다. 한참을 돌아 옛길을 따라가니 사람은 물론 차도 없어 너무 한적해 무섭기까지 했다.

병점역과 세마역을 지나니 50km 지점. 2시 45분이다. 예정보다 30여분 늦었다. 오산국제센터(3시 30분)-오산역 버스터미널(4시)을 지나니 큰 개가 앞을 가로막고 짖어댄다. 여러번 겪는 경우지만 항상 난처하다.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장당산업단지를 지나서는 새로난 평택시청 방향이 아닌 옛길로 직진했다. 평택시외버스터미널(75km, 6시 40분)에서 아침식사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피곤하고 다리도 많이 아프다.

성환-남서울대(9시)-직산 사거리(9시 30분)를 지나 공주대 천안공과대학 정문 가까이 왔을 때 불과 몇미터 앞에서 트럭이 보도 위로 돌진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엉겹결에 피하긴 했지만 놀란 가슴을 사이다 한 잔으로 쓸어내려야 했다.

남천안 고속도로 분기점 부근(104km, 12시 30분)에서 점심으로 우동을 먹었다.

광덕사-논산·공주 23번 분기점-충북 경계를 지나 조치원 갈림길(130km, 오후 4시 40분) 근처 편의점에서 호박죽을 먹고, 예비식량으로 삼각김밥을 샀다. 앞으로 계룡대 동학사 입구까지는 30km 가량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야 한다.

트럭은 전부 국도로 다니는지 너무 많았고, 빨리 달렸다. 연기군 행정복합도시 공사장을 지나 금남교를 넘어서니 북유성으로 가는 새로 만든 1번 국도가 나왔다. 깜깜하고 가도가도 끝이 없다. 걷다 달리다 하며 순간순간 졸았다.

겨우 겨우 동학사 입구에 오니 밤 10시. 식당을 찾아 돌아다녀도 없다. 배는 고프고, 추워서 덜덜 떨리는데다 졸립기까지 하다.

가도가도 끝 없는 길…졸면서 걷기도

가족과의 전환통화는 휴대폰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저녁 6시와 낮 12시에만 하기로 했다. 어쩌다 저녁 6시에 전화하는 것을 깜박잊고 있었나 보다. 가족에게 전화하니 "6시에 전화가 없어 119에 신고하고, 지금 천안근처에 오고 있다"며 "어디 있냐"고 묻는다. "동학사 앞에 있으니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식구들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약해져 쉽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우 '행주치마'라는 식당을 찾아냈는데 문을 닫는다고 한다. 사정하니 비빔밥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우선 막걸리 한 잔을 청했다.

따뜻한 난로 옆에 앉으니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비빔밥을 몇술 뜨는데 식구들이 동학사에 왔단다. 동학사 주차장에서 만난 식구들의 차에 타자마다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깨어보니 3시. 내리 2시간을 잔 것이다. 식구들을 안심시켜 돌려보내고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나타나는 5km에 이르는 터널 속을 달렸다. 터널을 벗어나 스포츠겔 하나를 꺼내들었다. 음력 24일의 달은 희미하고, 도로는 깜깜했다. 손전등을 비추니 도로가 마귀처럼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고, 길가 표지판이 귀신처럼 보인다.

옆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돌아보면 없고, 친구들이 같이 달리는 것 같더니 나 혼자다. 환각과 착각 현상이 일어나 몹시 괴롭힌다.

얼마 동안을 졸음과 싸우며 비틀거렸다. 손전등 불빛마저 약해졌다. 다행히 뿌옇게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연산(180km, 15일 6시) 길가에서 미숫가루와 커피를 먹었다. 인적이 드문 일요일 아침길을 부지런히 달렸다. 190km 지점의 황산벌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로 우동을 시켰다(8시∼8시 30분).

전주까지 55km가 남았다는 표지판까지 오니 9시 30분, 예정시간 보다 4시간 30분이나 늦어졌다. 전주 동창에게 도착시간이 늦어짐을 알렸다.

연무대와 금마를 지나며 상점에 들러 간단히 허기를 달랬다.

전주 익산 갈림길과 전주 삼례 갈림길을 지나 우석대 앞에 오니 오후 4시 30분. 시간에 쫓기듯 달려 시내를 통과하고, 오후 7시 시청뒤 전주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아버님과 동생 식구들 그리고 20여명의 동창들이 꽃다발을 들고 환영했다.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축하연 식당으로 갔다. 친구들과 정담과 잔을 나누는 중에도 잠이 쏟아진다. 내일근무를 생각하고 23시 심야고속버스에 오르자 잠에 떨어졌다

"전고, 그대의 영원한 자랑이듯 그대 또한 전고의 자랑이어라"

▶후기
650리를 혼자서 달리는 동안 다행히 하늘이 도와서 날씨가 좋아서 가능했다. 하지만 2시간만 잠을 잤는데도 예정시간보다 4시간 늦게 도착했다.

1번 국도 표지판을 따라가면 새로 만든 자동차 전용도로로 가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1번 국도도 생각했던 옛적 낭만의 도로가 아니었다.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열릴 수도 없으려니와 도로 상황이 위험해 혼자서 달리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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