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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인애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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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4.0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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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용 (부산대병원 영상의학과)
▲ 문태용 (부산대병원 영상의학과)

오래 전부터 의과대학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해부학 이론 수업이 끝나고 해부실습에 들어가게 된다. 여덟 구의 시신을 두고 한 구에 열 명의 학생들이 둘러섰다. 해부학 교수님의 지시대로 시신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예를 올리는 묵념을 한다.

검은 비닐포를 벗기면 포르말린 냄새가 가득한 검푸른 시신이 누워있다. 해부실습교본에 따라 시신을 해체하면서 해부학 구조를 그림 그리고 해부학명칭을 기술한다. 첫날은 포르말린 냄새와 검푸른 시신 때문에 코도 멀고 눈도 멀고 귀도 멀어 버린다. 식사도 어렵고 잠들기도 어렵다.

그러던 중 어느날 언제부터였던가 알 수 없는 은은한 음악소리가 귀에 와닿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던 그 음악 소리가 지금에야 알고 보니 '로미오 줄리엣' 영화 주제곡이었다. '젊음이란 무엇인가요.

장미꽃처럼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시절에 그 음악은 막연하게 슬프다고 느꼈고 해부실습실의 시신은 참으로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문익점의 의복혁명, 스티브잡스의 창의력, 그의 일대기를 적은 아이작슨…이들의 성공적인 창의력은 모두 인간을 사랑한 애민정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칼 막스의 유물사관 역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창의품이라고 한다.

결과만 두고 볼때 한문은 양반들이, 한글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문자였고, 무명 역시 서민들이 사용하는 옷감이었고, 아이폰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정보통신기로 그 모든 것이 철학이 없는 유물사관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오감과 육감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에는 나쁜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평화도 있고 전쟁도 있으며, 구차한 삶도 있고 죽음도 있을 뿐 아니라, 행복한 삶도 있고 영생도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인 것들은, 인간이 모를 때는 겸손하고 알기위해 노력하지만 막상 알고 나면 게을러지고 교만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각자들은 끊임없이 알 수 없는 새로운 화두로 인간을 공부 시키고 있다. 그 진짜 이유를 알도록 유도하고 진리를 알아차릴 때 까지 의문을 남겨 두는 것이다.

태풍의 눈은 고요하고 청명하지만 엄청난 구름과 바람 심지어 천둥 벼락까지 몰고 다닌다. 마음 한가운데를 중심(中心)이라고 한다. 그 중심 역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청명하지만 그 중심을 약간만 벗어나도 태풍의 회오리 속에 말려들어 엄청난 변덕이 일어난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심성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기는 더욱 어렵고, 그런 그는 한번도 중심 잡힌 자유를 누릴 수 없어 창의력은 고사하고 극심한 염착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소모전에 휘말려 비구름을 동반한 태풍처럼 단명 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남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려면 먼저 사랑이 무엇인지 눈치 차려야하고 중심에 놓여 자신의 자유를 지켜야한다. 그런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동시에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의과대학 해부실습관에 자신이 죽으면 그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세종대왕, 스티브잡스, 해부실습관 시신 기증. 이들이 우리 예비의사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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