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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06:00 (금)
청진기 불신의 시대

청진기 불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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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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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고문)

▲ 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고문)

"I don't ask why patients lie, I just assume they all do."

실제 환자들이 거짓말을 할까? Diagnostic Medicine이라는 특수한 분야를 위한 설정이 아닐까? Dr.House(미국 TV드라마 속 주인공)는 환자들에 대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냉소와 블랙조크를 툭툭 내뱉는다. 그렇기에 그는 진료 과정에 있어 많은 정보들을 걸러내고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 처음에는 저 사고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건소 약이 좋다더라(진료비가 싸더라), 와병중이라 이웃을 대신 보내마(나가기 귀찮으니 약만 대충 보내달라), 다른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다(검사는 됐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 등.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가려내어 어르신들 건강을 위한 거라고 설득할 수 있는 부분들이고, 여느 공보의 선생님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 사회 내의 라뽀를 쌓았을 것이다.

의업을 하면 할수록 소통이 중요함을 느끼고 인간애에 대한 나의 신뢰가 공고해짐에 반해, 대한민국의 의료 전반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져만 간다.

의과대학 입학 직후부터 끊임없이 고민했던 '의사 집단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하여 항상 당당하게 그럴 수 있다, 노력하면 된다고 자신했던 나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No다.

선거 즈음에 접어들어 의료계 내부적으로 자성의 역량이 부족하고 발언이 자유롭지 않은 막힌 조직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갈수록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정부에게 의료계는 개혁의 대상일 뿐이며, 묵묵히 일하는 의사들에게 이들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국민들에게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를 잊은 도둑놈이며, 반대로 그들은 지속적인 희생만을 강조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비춰진다.

많은 이들은 지속가능한 의료제도에 대해 논의하고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를 가장 걱정하지만 나는 그보다 지금의 대립이 머뜩찮다. 신뢰가 쌓이고 협의가 도출된다 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까 말까 한데 서로 믿지 못하니 참 요원한 일이다.

몇 가지 의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의료인들 역시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건강을 추구하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지만,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이를 공리주의 관점으로 접근하기에 믿지 않는다.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 하면서 필수의료영역 설정에 대한 의료계의 의견을 참조하지 않고, 주치의제를 이야기 하면서 게이트 키퍼로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니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상실되었다고 느낀다.

추후 지불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지만, 적정수가-적정보장을 이야기하면서 현재의 저수가를 기반으로 한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이 유력한 학자들은 강제복무 중의 공중보건의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어도 유감표명 한 번 하지 않는다.

또한 기득권으로 치부해 전반적인 의사의 과중한 노동에는 관심이 없고, 응급실에서 맞는 유형의 피해자보다 무형의 억울함이 우선인 단체들까지. 적으로 삼는 순간 이미 연대할 수 있는 여지가 꺾여버린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겠다는 서울시는 서울의료원의 전공의 대우가 전국에서 손꼽히게 낮음에도 시립대의 의대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보건기관의 의료인력을 확충하기 보다는 기부형식으로 공공진료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란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이 드는 공공의료 확대와 의료 개혁은 일단 반대다.

총체적인 난국에서 '의사 왕따론'이 대두되고 젊은 의사들이 철저하게 이익집단으로 뭉치는 것을 막을만한 명분이 나에게는 없다. 아니 오히려 작금의 시점에서는 한 번 대차게 붙어보고 화해를 하는 것도, 혹은 판을 아예 갈아 엎을 정도의 쇼크요법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말려야 할 언론도 같이 끼어 있으며 중재자도 없으니 자, 이제 어찌할꼬. 인간의 선함과 이성을 믿는 나로서는 이 불신(不信)의 시대가 너무나도 불행하게 여겨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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