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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봉사자란?

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봉사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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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2.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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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가천의대 임상교수 길병원종합건진센터)

▲ 이홍식(가천의대 임상교수 길병원종합건진센터)

올해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고 의사협회장 그리고 시·도회장 선거가 있는 해이다. 선거 때가 되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봉사'란 단어이고, 일반적으로도 봉사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교회나 사회봉사 단체, 개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봉사라는 미명하에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봉사가 생각 없는 행동, 사랑 없는 행위, 마음 없는 활동, 일을 저지르고 보는 풍토로 나타나는 경우를 접하게 되고 우리 사회의 현주소로 비춰지기도 한다. 생각과 마음과 영성이 없는 봉사! 그것은 단지 움직임이며 내용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행사를 반복해 치르다 보면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메말라 마침내 삶 자체가 힘들어진다. 즉 영성이 없는 봉사활동은 우리에게 내적 공허와 삶의 무의미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영어에서 봉사를 서비스(Service)라 하는데, 이는 어원상으로 Servant(종)·Servitude(노예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옛날 종이나 노예는 비천한 신분으로 주로 몸을 사용해 평생 주인만을 섬기다가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종이나 노예보다 더 낮은 지위는 없다.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란 없으며 오직 주인에 대한 철저한 예속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삶은 평생 동안 희생의 연속이다.

그러면 왜 이런 비천한 종이나 노예의 삶이 봉사의 개념이 되어 우리 영성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일까? 심지어 천주교 교회 최고 어른인 교황마저 교회의 공식문서에 황제(Emperor)나 왕(King)으로 서명하지 않고 '종들의 종(Servus Servi)'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것일까?

성경은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전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원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주님이 종'이다. 또한 종의 신분으로서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봉사는 건강한 사회를 앞당기고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이자 수고이다. 선의로 행하는 모든 움직임은 봉사의 성격을 띠게 되고, 그 자체가 '사랑의 행위' '애덕의 실천'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이바지하게 된다.

첫째, 봉사는 섬김이다. 섬김은 남을 인정하는 삶이며, 남을 위한 삶이다. 삶의 중심이 나보다는 남에게 쏠려 있다. 나를 위한 봉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섬김은 남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다.

둘째, 봉사는 겸손이다. 남을 섬기는 데는 깊은 내적 겸손이 요구된다, 겸손은 봉사에 임하는 마음 자세이다. 영어에서 겸손을 Humility라고 하고, 인간을 human이라 한다. 이는 흙이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흙은 사람이나 짐승이 마구 짓밟는 가장 낮은 대상이다.

성경은 인간이 그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해 있음을 상기시킨다. 바로 인간, 그 이름 자체가 흙이고, 겸손은 흙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리라.

셋째, 봉사는 실천이다. 봉사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내 몸을 사용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봉사에 대한 생각·말·마음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이 전혀 없을 때 그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오늘날 사업의 성패는 서비스에 좌우된다, 비슷한 조건에서의 경쟁관계라면 오직 서비스만이 고객에게 차별성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질의 봉사'·'완전한 봉사'·'건강한 봉사'·'특별한 봉사'라는 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완벽한 봉사를 타인에게 항상 제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다. 비록 봉사의 어원이 비천한 종과 노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깊이 살펴보면 봉사야 말로 바로 실력·능력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국민의 머슴으로서 국가에 봉사하겠다. 봉사가 곧 실력·능력임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바로 봉사는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재능, 탤런트인 것이다.

성경의 탤런트 비유에 잘 나타나 있듯이 탤런트는 잘 활용하라고 주인이 종에게 준 것이다.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 종은 나중에 주인에게 큰 꾸지람을 듣고, 받은 탤런트마저 빼앗기게 된다. 진화론에는 '용불용성'이라는 것이 있다.

사용할수록 진화 발전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퇴화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성경에서 봉사의 탤런트야 말로 용불용설이다.

오늘날 물질은 풍부해졌으나 마음은 메말라 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자기 손을 펼쳐 내미는 봉사의 손길이 한없이 그립다. 모두가 '바쁘고 바쁘게' 욕망 쫓기에 허덕이고, 이득이 없는 곳에는 수수방관 아무도 손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곳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모두가 외면하는 실정이다. 사랑과 정성과 마음이 담긴 봉사가 절실하다.

현대인의 이런 경향성, 문화풍조에 예수는 '봉사의 영성'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예수는 이 세상에 봉사하러 왔지 봉사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가끔 우리는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 받으려 할 때 서로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봉사자의 영성생활은 봉사함에서 하느님께서 특별히 마련하신 내적 기쁨과 영성의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유치환 시인이 '행복'이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한 것처럼 예수는 "섬기는 것은 섬김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고 봉사자의 행복선언을 한다.

진정한 봉사와 겸손, 이것이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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