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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소송 '깜짝' 승소

강원대병원 원외처방약제비 소송 '깜짝' 승소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2.02.1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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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약제비 환수, 채권소멸시효 지났다"
안지났어도 공단 50% 책임...병원계 '새 희망'

병원계의 패색이 짙던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채권소멸 시한이 지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으로부터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약제비를 환수할 수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설령 채권소멸 시한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병원에 100%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6 단독 송명호 판사는 강원대학교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취소 청구소송에서 "공단은 병원으로 부터 환수한 8577만원을 병원에 지급하라"며 17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선 공단이 환자 본인부담금 2341만여원을 환수한 것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며 병원에 반환하라고 밝혔다. 공단이 본인부담금 환수의 근거로 내세우는 건보법 제43조 제3항은 본인일부부담금의 환수를 위한 절차적 편의를 위해 마련된 규정일 뿐이며, 건보법 제52조 제4항 역시 행정의 편의를 위해 공단이 환자를 대신해 환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규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공단의 환수 조치는 진료비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를 따져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료비 채권의 경우 건보법 규정에 따라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어, 병원이 소송을 제기한 2008년 5월로부터 3년 전인 2005년 5월 이전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단이 2003년 3월부터 2008년 10월까지의 요양급여비용을 모두 삭감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서는 자동채권으로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공단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소멸시효제도의 기본 취지를 고려할 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요양급여기준의 법적 위치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리했다.

재판부는 "요양급여기준은 병원 입장에선 급여청구의 기준, 심평원과 공단 입장에선 급여비 인정 또는 지급 범위의 기준이 되지만 의사가 의료행위를 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즉 요양급여기준은 요양급여기준을 인정해 주는 기준을 적시한 것에 불과하므로, 의사가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곧바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준 위반한 원외처방...병원책임은 50%
이와함께 개별 원외처방 행위가 어떠한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했는지를 주장·입증해야 할 책임은 병원이 아닌 공단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심평원은 요양급여비용의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질 뿐, 약제비 삭감을 내용으로 하는 심사결정 처분은 무효이므로, 공단은 심평원의 심사결정에 구속받을 이유가 없어 손해배상청구권을 주장하는 공단이 자신의 손해에 대한 입증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환수금액 중 일부에 대해서는 공단이 언제든지 주장·입증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약 2816만원의 병원측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병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더라도 전액이 아닌 50%만 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그 이유에 대해 첫째, 의사의 원외처방으로 인해 공단이 약사에게 약제비를 지출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공단에게 약제비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한 처방이 요양급여기준을 준수한 처방보다 환자의 병을 낫게하는데 더 효과적인 경우라면, 결과적으로 공단은 요양급여비용을 더 적게 지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의약분업제도에서 찾았다. 재판부는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의약분업이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현상에서 도출된 문제"라며 "따라서 의사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시키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희석시키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문제를 의사에게만 전가할 수 없어"
즉 보건복지부가 게을리 한 제도개선의 미비를 의사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공평의 원칙상 건보공단 역시 기준을 위반한 원외처방 약제비와 관련해 발생한 손해를 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병원측 소송 대리인 현두륜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가지고 상계하는 것은 상계권의 남용이라는 것이 법원 판결의 핵심"이라며 "현재 동일한 소송을 진행 중인 다른 병원도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가 상당히 많아 이번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을 비롯한 총 40곳에 달하는 병원이 참여 중인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은 현재 서울대학교병원이 2심에서 패소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지난해 세브란스병원·가톨릭중앙의료원·서울아산병원·한양대의료원 등 17개 병원은 1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병원측 패소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강원대병원의 승소는 채권 소멸시효라는 새로운 법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다른 병원들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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