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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사나요?

청진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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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2.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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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기(세브란스병원 내과 R4)

▲ 김충기(세브란스병원 내과 R4)

요새 들어 동료들과 하는 대화의 흔한 주제 중 하나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고민 그 자체가 괴롭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미래의 빈곤을 진정 절실하게 걱정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의사라면 으레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애초의 기대가 무너져버렸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앞으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가 합당하다고 기대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함이 고민의 이유가 된다.

규칙은 공정하지 않다.

이제 노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모두의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제한된 성공의 자리를 위한 경쟁의 치열함을 불합리하다고 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이 결코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연일 언급되고 있는 재벌들의 골목 상권 진출에 대한 비난은 바로 그러한 사회적 여론을 반영한다. 비교할 수 없는 힘의 우위를 앞세워 의미가 무색한 경쟁을 강요하는 현재의 규칙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금융자본의 도덕적 해이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Occupy Wall Street'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절대적 금권을 통해 끝없이 탐욕을 채우고 그 결과 발생한 경제 위기에 대한 대가를 결국 힘없는 이들이 감수하고 있는 역설적 현실을 공정하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회 전반의 규칙을 보다 균형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극소수 절대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나머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조차 버거운 냉혹한 현실에 내몰리게 될 것이 뻔하다.

편의점식 의원?

십수년 전 여느 동네에나 숱하게 있던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OO슈퍼' 대신 이제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이 그 자리에 있다. 아마도 그 슈퍼의 주인아저씨는 운이 좋았다면 프랜차이즈에 수수료를 떼어주는 편의점 점장님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빚만 잔뜩 지고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미래의 의사들도 이렇게 살아가지는 않을까. 자랑스럽게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환자를 돌보던 'OOO의원' 원장님이 옆건물에 들어선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형 자본의 프랜차이즈 의원에 밀려나 병원을 닫고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임시직을 전전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경쟁이 가열되는 지금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도시와 시골 구석을 가릴 것 없이 대다수의 의사들이 대형병원 프랜차이즈의 편의점식 의원의 점장으로 진료보다는 영업 전선에 목을 맬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래에 대한 이런 상상이 부디 망상이기를 바라지만 지금까지 현실의 모습을 보건데 그리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도 없다. 생존 경쟁이 처절한 세상에 맨손으로 뛰어드는 젊은이로서, 사회의 비판적 시각과 직업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의사로서 우리들의 미래는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돈만 바라는 자본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환자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의사로서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의료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의사들이 쉽게 좌절하지 않도록, 공정하고 건전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에 인식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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