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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피켓없는 세상에서 회의하고 싶다

시론 피켓없는 세상에서 회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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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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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원(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 홍승원(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아! 어쩌랴.
신묘년이 거의 저물어 가는 이 겨울.
누가 누구를 비방하고 원망하겠는가.

흐르는 시간에 맡겨 언젠가는 비판되고, 정제되어 실체에 대한 판단을 얻기도 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터져버렸다.

위태위태하던 일들이 계란 투척과 멸치액젓을 뿌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100년이 넘은 대한의사협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여기저기 터져버린 달걀의 내용물들,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회의장(생산자는 이렇게 쓰이리라고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온갖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알 수 없는 사람들, 눈두덩이에 터져버린 계란 내용물과 흐르는 피와 함께 범벅이 되어 나가는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

여기저기서 핏대 높은 목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신묘년 12월 임시대의원총회 회의장은 글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고, 막장 의협의 찢겨져 추락하는 적나라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 모습이 진정 의협을 발전시키고, 10만 회원들의 개혁의 열망을 담은 진실된 모습이란 말인가?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때 지역·직역·세대를 초월해 함께 투쟁했던 진정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부 갈등에 의해 무너져가는 의협, 나약해진 우리들을 옥죄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경찰·검찰·세무서·고용노동부·각종 보험회사 등의 그룹들이 불을 켜고 있는데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분열과 고소, 고발, 싸움질만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렇게 해서 고쳐지고 바뀌면 또 이런 일들을 반복해야 한다. 혁명으로 바뀌면 또 혁명을 해야 한다.

의협이 회원들의 뜻을 펼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잘 알면서, 무조건 우리들의 뜻만 요구해서 관철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회의료를 근간으로 하는 역대 정권들의 특성과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그들을 몰라서 우리끼리 떼를 쓰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시저나 잔다르크 같은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이러한 풍토 하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박수치며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뿐이다.

지도자는 희생과 소통을 우선해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지도력이 검증되고, 계란을 던져대고, 멸치 액젓을 뿌려 회의를 중단시켜야만 능력있는 지도자는 아닐 것이다.

차후 의협의 대변자가 되고, 지도자가 되려면 두고두고 깊이 수양과 반성을 해야 한다. 소그룹의 지도자는 될지언정 의협을 맡기기에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펜은 칼보다 무섭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법이 꼭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침묵하는 회원들의 속내음을 헤아려야 한다. 말을 할 줄 몰라서, 투쟁을 할 줄 몰라서, 피킷을 만들 줄 몰라서, 소리를 지를 줄 몰라서, 계란과 멸치액젓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회원들의 행동에 대해 그렇게라도 하지 못하면 정말 미칠 것 같아서 용인하고, 내심 격려도 했던 회원들의 마음을 왜 이다지도 헤아리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젊은 의사들의 열정과 패기는 좋다. 많은 수를 점유하고 있음에도 뜻을 펴지 못하고, 의견이 전달되지 않는 구도 속에서 이렇게 라도 처절하게 할 수밖에 없음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엔 방법이 너무나 미숙했다. 너무나 안하무인격이었고, 세련되지 못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외쳐대는 소리가 얼마나 감동적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긍정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 건당 100명 이상의 회원이 보는 글들이 몇 개나 있는지, 그대들만의 글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듯, 모든 회원들의 대다수 정론이기엔 너무도 자기중심적이고 한풀이식 글일 뿐이다.

이렇게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일방적인 글들로 개혁이 될지 의문이다. 어느 회원은 3년 동안 수천 건의 글들을 올리면서 플라자를 도배해 유명(?)인사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슴을 치고 울부짖어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손을 볼 수 있다. 꼭 이렇게 물어뜯어야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우리는 진정하고 앞으로를 응시해야 한다.

옹졸한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잘못되면 지금처럼 계란과 액젓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한번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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