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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교사의 촛불

무명교사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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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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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 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지금은 인턴을 하고 있는 정군이 청년슈바이처상을 받는다기에 함춘회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함춘의학상을 받은 지 꼭 8년 만이었다.

8년 전 생각이 났다. 나는 수상 소감에서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교사 예찬> 중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은 보상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나의 지도교수이셨던 성기준 선생님을 회고했다.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할 때 하는 바 없이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연구를 할 때도 상을 받거나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궁금한 것을 밝히려고, 나는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번에 상을 받은 정군은 본과 3학년 때 선택과목으로 내가 근무하는 성형외과를 2주간 실습했다. 실습이 끝나고 며칠 후 외래에 찾아와서는 실습 중 궁금하던 것, 즉 신경이 절단됐을 때 신경봉합술을 시행하는데 말단 부위의 회전이 재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밝혀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가지고 온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연구계획서를 훑어보니 비록 서툴지언정 연구의 목적·방법이 명확히 기술돼 있었다. 나는 학생이 그런 용기를 냈다는 것이 기특해 부족한 연구비에서도 그가 원하는 동물실험과 보행검사·조직표본 제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그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본과 4학년 가을에는 자신의 손으로 쓴 논문을 완성해 투고했고, 올해 5월 국제공인학술지에 1저자로 실렸다. 이 연구논문으로 청년슈바이처상 의대생 연구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나는 19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왔으나 자신의 아이디어로 교수를 설득해 실험을 완성한 학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대구에서 올라오신 부모님과 논문을 지도해준 지도교수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식사가 끝나갈 때 참석한 수상자의 지도교수들에게 소감을 한마디 하라고 하기에 앞으로 나갔다.

8년 전의 그 자리에 다시 섰지만 내 입장은 이미 바뀌었다. 겨우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 그를 기쁘게 하노니…" 하고 입을 떼었으나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저는 이제 다시 무명교사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하늘나라로 가신 성기준 교수님이 옆에서 지켜보고 계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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