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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남태평양에 한국 선진의료 전수

서울대병원, 남태평양에 한국 선진의료 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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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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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형(서울의대 교수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 김계형(서울의대 교수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은 광활한 대양을 무대로 3600만 ㎢ 가량 떨어져 흩어져 있는 작은 국가들의 모임이다.

이들 14개국은 인구도 매우 다양하여, 가장 작은 나라인 니우에(Niue)는 인구 1500명 밖에 되지 않지만,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nea)는 인구 673만명의 섬으로 860종 이상의 지역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국가의 경제는 낙후되어 있고, 큰 자원이 없으며, 원조에 의해 경제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은 지리적·문화적·정치경제적 여건이 매우 다양해, 이 지역의 정책이나 지표를 개선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WHO 인사가 언급하기를, 최근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은 '작은 섬들에서의 큰 도전(Small islands and big challenges)'을 겪고 있다고 한다.

당뇨·고혈압·심장질환·암성 질환등의 비전염성 만성질환(Non-communicable disease, NCD)의 증가가 가시화된 '큰 도전'의 정체이다. 이들 질환은 더 이상 서구 사회의 질환만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더 이상 생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많은 정크 푸드와 패스트 푸드가 제 3세계 국가의 느슨한 규제 아래 급속도로 수출되고 있고, 특히 이들 남태평양 도서국가에서의 이들 식품의 소비는 최근 50년간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영국의학지 <BMJ>에 2011년 4월에 기고된 바에 따르면, 이들 남태평양 도서국인은 비만·당뇨 등 비전염성 만성 질환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폴리네시안·멜라네시안·미크로네시안으로 구성된 남태평양 도서국의 구성 인종은 남아시아인·호주 피마인디언·히스패닉·남아프리카 흑인 만큼이나 비만·당뇨·고혈압 등의 만성 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이런 유전적 배경과 패스트푸드를 다량으로 소비하는 식습관 등의 환경적 변화로 인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증가를 보인 것이다.

너무나 낙천적이고 순수한 남태평양 원주민들은 당뇨나 고혈압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발이 썩게 되어 처음으로 병원에 가보니 당뇨로 인해 족부 괴사가 발생해 절단했다는 일화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곳이다.

더구나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환경적 영향으로, 헬기로 수송되지 않는 한 상급 병원에 가기도 힘들며, 수송 비용 천문학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의료인력의 공급이 매우 부족하다.

의료인력 1명이 1차 의료를 수행하는 동시에 감염성 질환·산과 질환·예방접종·질병감시·통계 등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으며, 이들은 항상 과중한 업무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

한국의 의료도 과거 이런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전쟁 후 어수선한 시절, 폐허와 다름 없었던 한국에서 미국 정부 산하기관인 ICA가 미네소타대학을 통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지원하였다.

이른바 '미네소타 프로젝트'라고 알려진 이 원조 사업에서 모두 77명의 한국 서울대병원 교수진이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년의 연수를 통해 선진 의료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폐허가 된 조국에 대한 자괴감을 넘어 젊은 열정으로 진료와 교육과 연구에 매달렸다.

21세기 이후, 한국의 의료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제는 제 3세계에 우리의 의료 지식과 기술을 나눌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2011년 한-PIF 기금으로 태평양 도서국가 의료교육사업이 막을 올리게 되었다.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이 지역과의 다양한 방면의 실질 협력과 교류 증진을 모색하던 중 인적 교류의 확대, 그 중에서도 의료기술 교류의 확대를 목적으로 기금을 설립하였다.

이 기금은 연 30만 달러 규모로 설치되었고, 향후 3년간 안정적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의료'라는 것이 물론 병원이나 의원간의 이익산업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갖는 공익적 성격으로 인해, 이번 기회는 서울대병원 교수진에게도 큰 열정을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서울대병원은 많은 국내와 해외 의료지원 사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제 3세계의 교육사업을 아직 구체적으로 구현할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던가, 우리의 의료지식과 기술을 성공적으로 나누어주고, 그 의료인들이 모국의 의료를 발전시키는 것이야 말로 해당 지역의 의료를 가장 발전시킬 수 있을 방안일 것이다.

이 지역의 창궐하는 비전염성 만성질환인 당뇨·고혈압·심장질환 등과 고군분투하기 위해 우선 각 나라의 경험이 풍부한 일차의료인력(primary health care personnel)이 선발되었다.

일차의료인력을 굳이 선정한 이유는 이 지역의 의료인력이 부족하며, 2차병원 혹은 3차병원으로의 상급의료기관의 원활한 수송이 어려운 상태에서 가장 최전선에서 비전염성 만성질환을 접하고 있는 의료인력을 교육하기 위함이다.

최근 WHO는 이 지역에서 비전염성 만성질환의 치료 및 예방을 위하여 일차의료인력 강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나, 아직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은 없는 실정이다.

반면 3차 전문의료인력은 많은 원조기관에 의해 연수 및 교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고, 서울대병원의 이번 전략은 큰 맹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실무진은 또다른 큰 고민에 빠졌다. 서울대병원과 태평양 도서국가간의 의료 격차가 너무 큰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미국의 기금으로, 의료시설과 인력을 한국에 지원해 주는 것이 가능해 교육의 효과를 바로 거둘 수가 있었으나, 이번 상황은 달랐다.

한국 방문연수를 진행하면, 너무 큰 격차로 인해 배운 지식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해당국가의 의료인력에게는 자괴감만을 심어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한국어의 언어적 장벽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피지의과대학을 거점으로 하여 태평양 도서국 의료인들에게 현장에서 적용가능한 의료 연수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현장에서 부족한 의료시설 및 설비를 차차 파악하여, 하나씩 지원해나가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25명의 연수생들이 2011년 10월 각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공운항로가 제한되어 있어, 하와이나 한국을 멀리 경유해서야 피지에 도달한 연수생들도 있었다.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우며, 느긋한 성격의 그들은 장시간의 비행으로 매우 피곤하였을 것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은 비만을 앓고 있었으며, 몇몇은 당뇨 환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열정은 한국 전쟁 직후의 한국의 의료진만큼이나 절실한 부분이 있었다.

지난 4주 동안 그들은 한국의 의료진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함께 환자의 질병을 퇴치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앞으로도 지속되어 두 지역의 건강한 미래와 함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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