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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허술한 약가정책에 제약사는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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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1.11.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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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리베이트 근절 명분 약가인하 정부 단기성과 매달린 무리한 정책"

▲한국제약협회 회원 및 제약사 직원 8000여 명이 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 제약인 생존투쟁 총 궐기대회'에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Cover Story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때문에 제약업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제약업계는 무자비한 약가인하 정책으로 약계 관련 종사자 60만명이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며, 18일 1만여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궐기대회를 열고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올해 8월 12일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조치.

보건복지부는 11월 1일자로 새로운 약가인하 고시를 행정예고 하고, 이에 따른 기등재약 인하는 3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행정예고에 따르면 종전 계단식 약가제도가 폐지되고, 동일한 의약품에 동일한 보험 상한가가 부여된다. 또 신규등재 의약품의 경우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의약품 가격의 53.55%를 받게 되는데, 제네릭 진입 촉진 등을 위해 제네릭 등재 후 최초 1년간 가격이 우대된다.

이밖에 기등재 의약품의 경우 53.55%로 정해지는 신규등재 의약품과의 형평성을 고려, 변경된 약가 기준에 따라 기등재 의약품의 약가를 재평가 한다. 또 R&D 촉진 등을 위해 개량신약 및 혁신형 제약기업의 제네릭·원료합성 제네릭의 약가는 우대 받는다. 이같은 약가 제도 개편으로 전체 1만 4000여 품목 가운데 7500여 품목(약 53%)의 약가가 인하되며, 이에 따른 건강보험재정 절감효과는 1조 70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제약협회는 8·12 약가인하 조치는 ▲약가인하 충격이 너무 크고 ▲논리도 없고 근거도 희박하며 ▲재량권 일탈의 위헌적 요소가 있는 가혹한 정책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제약산업의 존폐를 가름할 매우 중요한 정책인 만큼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약협회는 기등재의약품 약가인하(2010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 중)로 89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8·12조치에 따른 추가 약가인하로 2조 1000억원(2012년 3월 단행)의 손실이 발생해 모두 2조 9900억원의 매출손실을 제약계가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조원에 이르는 매출손실은 제약업계 전체 영업이익(1조 3000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이고, 인건비 50%·광고홍보비 100%·R&D 투자비 100%를 절감하더라도 보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8만명의 근로자 가운데 2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몰려 있으며, 유관산업을 포함할 경우 60만명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중복적이고 지나친 약가 일괄인하 조치는 크게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제약협회와 복지부의 추계에는 거리가 있지만 이번 약가인하 조치로 최소 1조 7000억원에서 최대 2조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만은 사실인듯 하다.

제약협회는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명분으로 한 일괄 약가인하는 정부의 단기성과에 매달린 무리한 정책 추진이라고 비판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의 의약품 관련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의약품에 대한 가격은 제약회사가 제출한 약가를 기준으로 보상가격을 정했고, 이 제도의 근간은 1999년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 실시된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로 변경될 때까지 유지됐다.

의약분업이 되기 전에는 의료기관이 약을 구입해 환자에게 줬기 때문에 최대한 싸게 약을 구입하려고 애썼다. 이같은 경향 때문에 질 관리가 안되는 의약품과 중소제약사들이 많이 생겨났다.

박윤형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1999년 실거래가 보상제도와 의약분업 정책은 의약품 가격이 오르고 건강보험재정 중 의약품 비용이 대폭 오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오리지널 브랜드 약을 처방했고, 실거래가 중 상한가적용 등으로 약가는 오르기 시작해 전체 건강보험 급여비의 30%까지 올랐다. 다국적제약사의 비중이 올라간 것도 이때부터다.

정부로서는 보험재정 건전화 차원에서 약품비에 손을 댈 수밖에 없게 됐다.

박 소장은 "국내 제약사의 R&D도 활성화되기 시작해 국내 신약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의약분업 정책으로 정부가 당초 기대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다국적제약사가 판치는 의약품시장의 세계화만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재정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자 정부는 의약품 재정을 줄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는데, 대표적인 것이 리베이트를 금지하기 위한 의료법(쌍벌제법)개정이다.

복지부는 약값의 상당액이 의사의 리베이트로 소모된다고 판단했다. 일단 리베이트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복지부는 의약품 가격을 일괄 인하하는 무리수까지 동원했다.

 

건강보험재정 건전화 위해 약가인하 정책 추진

복지부는 ▲신약의 등재제도(A7 가중평균가의 70∼80% 수준) ▲특허만료 약가인하(제네릭 진입시 특허만료제품 가격 20% 인하) ▲제네릭 가격결정 변경(가중평균가의 최고가의 60%대 → 50%대로 변경) ▲기등재 의약품 목록정비(고혈압 등 47개 약효군 최고가 80%수준 인하) ▲사용량-약가연동제도(전년대비 사용량 60% 증가시 약가인하) ▲약가재평가제도(2002년부터 A7 국가와의 가격비교를 통해 A7 조정평균가로 약가인하) ▲보험약 상환제도(실거래가 상환제로 전품목 30.7% 인하 → 시장형 실거래가제로 변경) ▲리베이트 약가인하(유통문란 약제 최대 20% 약가인하 및 재적발 시 가중처벌 인하제 도입)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등의 약가정책을 최근 10년간 추진했다.

여기에다 8월 12일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를 명분으로 대폭적인 약가 일괄 인하정책을 추가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별적 지원과 경쟁을 통해 2015년까지 혁신형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비율을 평균 15%로 높여 글로벌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이번 선진화 방안의 목표"라고 밝혔다.

100원짜리가 800원으로…계단식 약가 산정방식의 모순

복지부에 따르면 2006년 이전에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및 제네릭 약가는 종전 약가를 그대로 인정했다. 특허만료 때 오리지널은 약가인하가 없었고, 1~5번째 제네릭은 오리지널의 80~90%, 6번째 이후부터는 제네릭 최저가의 90%를 적용했다. 물론 제네릭이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한 예로 오리지널 약가가 1000원인 경우 100원짜리 제네릭 약이 생동성시험을 통과하면 800원짜리 약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와 관련, 백승인 경상북도의사회 의약품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는 제약회사들이 생동성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투자했던 비용을 고려해 이에 대한 대가로 약가를 후하게 책정해줬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정부는 의약분업 후부터 2006년까지 제네릭 의약품이 생동성시험을 통과하면 약가를 오리지널의 80%까지 인정해 줬는데, 2010년 1월 현재 유통중인 생동성시험 통과 의약품 5435개품목 가운데 약 75%가 이 기간에 통과됐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상당수의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이 처음부터 높게 책정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약가의 거품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복지부는 2006년 12월 29일 이후부터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은 오리지널 특허만료전 가격의 80%, 제네릭은 1~5번째 68%, 6번째 61.2%, 7번째 55%, 8번째 49.5%로 단계적으로 적용토록 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동일제품임에도 가격차별을 두는 것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고(특허만료 후에도 오리지널은 제네릭보다 높은 약가를 인정하는 모순 발생), 제네릭도 단순히 등재순서에 따라 약가차이를 두는 불합리성, 제네릭의 약가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높게 책정된다는 문제제기 등이 잇따랐다.

특히 보험등재 의약품 가운데 99.5%가 상한금액으로 신고되는 실거래가상환제도 때문에 시장가격에 의한 약가조정 기전이 완전히 마비됐다. 중복적인 약가인하 등으로 제약회사의 불만 역시 커졌다.

2006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이 최근에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보다 20% 이상 약가가 높게 책정되는 결과를 낳다보니 복지부는 약가거품 제거를 위한 카드로 기등재품목 목록정비를 내놓았다.

그러나 한 번 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은 가격 변동 거의 없다보니 제약회사들은 영업이익과 매출이 급성장했으며, 그만큼 보험재정 지출을 증가시켰다.

높은 제네릭 약가로 제약사들 배만 불렸다

제네릭 중심의 국내 제약회사들은 제네릭 약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한 정책 때문에 가격경쟁을 할 이유가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국내외 제네릭 약가비교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제네릭 의약품의 상대가격은 약 70%로 나타났으며(성분별 산술평균가 기준 69.6%, 가중평균가 기준 72.5%), 우리나라보다 제네릭 상대가격이 낮은 국가는 7~9개국이었다.

각 성분의 사용량까지 감안해 종합적인 가격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성분별 가중평균가 기준으로 가격지수를 산출한 결과 우리나라 제네릭 약가 수준은 대체로 다른 국가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사용량을 가중치로 둔 약가수준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를 "동일성분 제네릭 제품 가운데 고가 제네릭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제네릭 의약품의 품질이 확보된다는 전제아래 저렴한 제네릭 사용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네릭 생산에 집중된 국내 제약회사들은 높게 책정된 약가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어 영세성과 후진성을 극복하려는 유인이 미미해 보험약가정책은 제약산업의 발전에 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복지부 뒤늦게 약가정책 무수히 쏟아내

복지부는 의약품 재정을 줄이기 위한 약가정책을 많이 쏟아냈다. 여러 약가제도를 통해 보험재정지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환자의 약제비 부담완화 및 건강보험 재정의 건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자 최근 가장 강력한 정책으로 8·12 약가 일괄 인하를 단행하기에 이르게 됐다.

복지부는 약품비 관리 합리화 방안으로 가장 먼저 약가산정방식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동일 성분 의약품임에도 건강보험에 등재(등록)한 순서에 따라 약품 가격을 차등 결정하던 계단식 약가방식을 폐지하는 대신, 앞으로는 동일 성분 의약품에 대해 동일한 보험 상한가를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을 먼저 등록하려고 경쟁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품질경쟁에 힘쓰도록 약가 산정방식을 개편한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특허만료 전 약값의 68∼80%였던 상한가격을 앞으로는 53.55%로 낮추고, 동시에 제약사들은 그 이하 가격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유도했다.

다만, 특허만료 후 1년 동안은 약의 안정적 공급과 제네릭의 조속한 등재를 유도하기 위해 제네릭은 59.5%, 특허만료 오리지널은 70% 수준으로 완화했다. 이런 방식은 기존 약들에게도 적용해 내년 4월부터는 대부분의 약들이 53.55% 수준으로 일괄 인하된다.

윤희숙 연구위원은 "보험약가정책은 제네릭을 통해 약품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며 "제네릭 간 가격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생동시험관리가 정상화된 후에는 동일 성분 품목들 중에서 입찰을 통해 최저가격 품목만을 상환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국내 제약사들 왜 제네릭 개발에만 열을 올렸나

제네릭 약가를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한 정부 정책 덕택에 10년이 넘도록 제약사들은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R&D 투자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제약계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 중에는 R&D 투자를 많이 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높은 제네릭 약가로 인해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신약개발을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 측명이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신약을 많이 보유하지 않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에 많이 의존해 왔는데, 약가 일괄인하 조치로 다국적 제약사만 좋아지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제약업계가 궐기대회를 하는 등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에 큰 불만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고 밝혔다.

높은 제네릭 약가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리라고 제약사들은 예견하지 못했고, 하루아침에 약가가 반값으로 내려가다보니 막막해 하고 있는 상황.

제약협회는 정부의 약가 일괄 인하 정책을 정면 반대하지는 못하고 단계적으로 실시해줄 것만 요구하고 있다. 갑자기 약가를 내리면 제약산업에 큰 악영향이 미칠 것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주장인데 정부는 이같은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복지부, 무엇을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 정부가 일관된 약가정책을 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제대로된 약가정책을 폈더라면 제약사들의 저항도 없었을 것이고, 보험재정도 어려워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약가정책을 정비하고 제대로된 약가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임시방편으로 약가정책을 펴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발상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며, 잘못된 약가정책으로 인해 제약사들이 손해를 보는 일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안전성 확보, 의약품 가격정책 정립, 국내 제약사 살리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의사·약사·제약사와 협력을 통해 약가정책을 펼 것도 주문했다.

박윤형 소장은 "같은 제품의 약의 가격이 최대 10배 가까이 차이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며 "차라리 전문가로 약가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원스톱방식으로 정하거나 단가입찰 형식으로 약값을 결정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복지부는 단기성과에만 급급해 약가를 일괄적으로 인하하기보다는 제약산업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가 정부의 약가인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약가인하에 준비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달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나가는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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