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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뿌리 깊은 나무

청진기 뿌리 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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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2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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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새 내히 이러 바랄에 가나니……

▲ 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와 원작소설의 모티브가 된 구절이기도 한 이는 바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1만원권 지폐 앞면에 새겨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다.

어찌하다보니 요사이 매체들을 통해 용비어천가가 '나팔수 언론'을 칭하는 용어로 전락해 버린듯 하지만, 이 2장의 경우 국어사에서 훈민정음이라는 갓 만든 글자로 표현된 유려하면서도 굳은 의지를 지닌 걸작으로 손꼽힌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다는 뜻인데, 작품 상황에 따라 조금씩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본래 용비어천가에서는 조선왕조 창업의 정당성 확보와 건국시조의 칭송이라는 목적을 고려할 때, 이씨 왕조 조상님들의 공덕과 조선을 의미한다.

소설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서 훈민정음, 사대에 저항하는 세종의 개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관여하였던 인물 하나하나(학사 윤필이 죽어가면서까지 손에 쥐고 간 활자라니!)까지로 확대된다.

드라마에서는 소설에는 없던 비밀결사체 밀본(密本)을 등장시키며 추가적인 갈등관계가 드러난다.

정도전 등 사대부를 필두로 한 이들은 花是花而已矣 不可以爲根(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라며 군주=꽃, 재상=뿌리에 비유하며 신권의 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꺾어버리면 끝인 꽃이 중심이 아니라 떠받칠 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갑자기 왜 되도 않는 뿌리 얘기냐. 필자를 잘 아는 동료들은 또 사고의 비약(flight of idea)이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11월 14일 박원순 시장의 '희망서울정책자문위' 명단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까지 와 버렸다.

발표된 보건의료분야의 위원은 의료계와 병원자본을 향한 칼날을 세우면서 시민사회운동에 앞장선 인사 단 1인 뿐이었기 때문이다. 주류 의료계의 목소리는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자조할 필요 없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다들 화려한 꽃이 되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묵묵한 뿌리에 속하는 분야들은 역대로 MD들의 진로 선택에서는 상당히 기피되어 왔고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라는 나무의 뿌리는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부터 최근의 복지담론을 주도해 오며 정부 연구용역을 수주해 온 일부 학계, 그리고 산별노조와 시민단체와 협력하는 활동가들만이 남아있다.

혹자들은 의권이라는 것 자체가 부권적 전문주의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진료현장에서 절실히 느끼는 바로는 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몇 년, 아니 불과 몇 개월 내에 폭발할지도 모르는 시점에 와 있고 이것이 국민 건강권에 상당히 위해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유를 기본으로 하는 의료기관에서 네거티브 에너지를 가득 내뿜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닌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참여하면서 이것을 풀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료계의 한 축인 공급자들을 무시하는 정책들로는 제대로 된 나무가 자라기 어렵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현재의 뿌리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법적 정치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단체행동까지 불사할 수 있다. 지긋하신 선생님들께서 보시기에 조금 과격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생존의 문제이기에, 자신들의 문제이기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질책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부탁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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