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의사와 환자의 아픔 사이
의사와 환자의 아픔 사이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1.11.25 10:45
  • 댓글 1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변형석(서남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얼마나 아는가?

한마디로 " 환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각 질환의 증상을 책으로만 읽고 외웠던 6년, 그리고 수련의 5년과 34년간 나를 찾아온 환자의 주소와 증상을 들으며 환자보다도 더 아픔을 잘 이해하는 표정을 지어왔지만 정작 내가 환자가 되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건강이 모든 것(돈·명예·권력) 보다 위라는 생각에 삼십대 중반부터 모임이 없는 날에는 퇴근길에 젊은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헬스장에 들려, 1시간 이상 뛰고 스트레칭을 했다. 주말이면 테니스에서 골프로, 최근 3년여간은 등산(1187m의 무등산)을 깨복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올랐다.

하산후에는 파전에 동동주 두어잔을 마시고 얼큰한 기분으로 재충전을 하며 다시 한주를 시작하곤 했다.

참, 지난 시월초 연휴땐 영암 월출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던 전원주택에 머물며 이틀 간격으로 809m 뿐이 안되지만 무척 힘들었던 천황봉(통천문 通天門 을 지나)을 2번이나 올랐다는 우스운 자부심도 있었다.

그래 예년의 늦가을 날씨치곤 운동하기에 너무 좋은날이기에 3년여만에 라운딩을 약속하고 그립도 잊어버린 것같아 실내 연습장에 다녀온뒤 그 실력(?)이 어디가겠느냐며 의기 양양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팀메이트가 된 젊은 선생들에게 나의 진면목을 보여주자는 욕심이 앞서며 내 나름대로 만족을 해나가는 중 짧은 늦가을 해가지고 일기예보처럼 바람이 일고 저녁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다.

준비해간 바람막이를 겹쳐입고 실제 임팩트가 중요한데 저녁 골프를 위해 켜논 인공조명아래 마치 달밤에 체조하듯, 대충 휘갈겨 대다간 모래 벙커에 빠뜨리고 말았다.

교과서 대로 양 발을 모래 깊숙이 묻고 공을 퍼올리고 나오는 순간 왼쪽 종아리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이 오는 것이었다. TV 로만 봤던, 축구 선수가 시합도중 갑자기 쓰러져 들것에 실려나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절룩거리는 내모습을 보곤 팀메이트들이 괜찮느냐기에 카트에 비치된 스프레이를 처음으로 장딴지에 뿌리고 남은 4홀을 마치는 무리수를 두었다.

냉온탕을 들락이며 딴딴히 부어오른 근육을 풀어보려 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 날 따라 스트레스도 날릴겸 사양하지 않고 시원한 맥주 몇잔을 벌컥벌컥 들여마시고 대리운전으로 집에 들어왔다.

의대시절 산을 뛰어다니다 다리가 삔 노루가 차거운 시냇물에 담그고있던 데서 인간이 냉찜질을 배웠다는 정형외과 교수님의 강의가 떠올라 밤새 얼음주머니를 갈아대느라 잠을 설쳤다.

출근길, 등산가방에서 꺼낸 스틱으로 왼쪽으로 힘이 가지 않도록 집고 발끝으로 걸으며 겨우 차에 올랐다. 불행중 다행인게 왼쪽이라서 운전엔 큰 지장없이 병원에 도착해 곧바로 정형외과로 향했다. MRI 검사를 해야되는게 아닌가 하며 진찰대 위에 누웠다.

'Tennis Leg'(Tennis Elbow 라는 병명은 들어봤지만)라는 진단하에 Taping·근육이완제·냉찜질의 물리치료 처방을 받고 나오며, 순간의 과욕이 이런 불상사를 불러일으켰나 싶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교훈이 나를 두고 한 얘기 같았다.

보통 2주, 나이든 사람은 3~4주 까지 간다는데, 10여일 남아있는 작은애 혼주로서 절룩거리는 모습을 보여선 않되겠다싶어 진료실에서도 왼쪽 종아리 밑에 얼음주머니를 데고 앉아있노라니 온몸에 찬기가 올라온다.

우리 의사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증상이 어쩌구 치료기간과 예후를 얘기해주며 과연 환자의 입장에서 얼만큼 진지하게 아픔을 나눌 수 있었는가?

재작년 하늘이 꺼지는듯한 일을 겪고나서 마음의 안정을 못취하고 가슴이 마구 뛰며 터져버릴 듯하고 사극영화에서 죄인에게 주리를 트는 형벌을 가하듯 머리를 옥죄며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있어 신경과를 방문했을때 처방을 해주던 의사의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도대체 주리를 튼것같은 느낌이란게 어떤 느낌입니까?"

진료가 끝나자마자 헬스장으로 달려가 Tread mill과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마치고서야 내하루 일과가 끝났음을, 그리고 그순간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었는데, 어제부터 그 즐거움을 빼앗겼다.

곧장 집으로 들어와 종아리 밑에 얼음팩을 대고, TV 채널이나 돌리고 있는 나는 이제야 환자의 아픔을 알아가는 것인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