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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쉬지 않고 천천히 쓰자

흐르는 강물처럼 쉬지 않고 천천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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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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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사수필가협회 심포지엄' 및 '전국 의과대학/의전원생 수필공모' 시상식을 마치고

▲ 신종찬(의사수필가협회 홍보기획이사 서울 도봉구 신동아의원)

가을로 가득 찬 울긋불긋한 강변을 달려 의협회관으로 향했다. 발아래로는 한강이 쉬지 않고 천천히 흘렀고 구름이 낮게 드리운 저녁하늘에 간간히 빗방울까지 내렸다. 그날은 생각 깊은 말들을 주고받기에 더없이 좋은 토요일 오후였다.

대회장인 3층 동아홀에 도착하였다. '의학 에세이를 만나다! 제1회 전국의과대학·의전원생 수필공모 시상식'이라는 현수막은 한국의사수필이 새로운 장을 연다는 선전포고문이었다.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이방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의학은 인간의 육체적 고통을 치유하고 문학은 인간의 아픈 영혼을 치유한다"는 말로 세미나의 화두를 꺼냈다.

1개월이라는 짧은 공고기간에도 불구하고 124편이나 응모하였고, 따스한 마음으로 인간적 고뇌를 그린 작품들을 수상작품으로 선정하였다는 경과보고를 했다.

대회를 주최하는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은 의사수필을 통해서 의사사회 내부의 소통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환자 나아가서 전 국민과 소통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서울시의사회 나현 회장은 앞으로 수필공부를 하여 수필가협회에 동참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님은 축사에서 신변잡기 수필을 지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래의 주역은 감동을 만드는 사람이니 미래의 문학 장르인 수필도 그래야 하며, 의창수필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수필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본격적인 심포지엄 순서로 들어가자 막아 놓았던 봇물을 터트리는 것처럼 수필문학의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초대회장이었던 맹광호 고문은 한국의사수필의 발자취를 회고하였다. 진료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긴장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도 했다.

가천의대 이성락 명예총장은 '의사에게 에세이가 왜 필요한가?'라는 제목으로 의학교육자로서 입장을 밝혔다. 의사는 인간의 탄생과 마지막 숨고르기를 지켜보기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의료 현장이야말로 끊임없이 일렁이는 역동적인 곳이다.

한국의학교육에 인문의학을 필수적으로 도입하여 의사가 치료에만 치중하지 말고 아프고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우리도록 해야 한다. 에세이는 스토리텔링이고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이다. 이제 인문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 주필인 임철순님은 언론인의 입장에서 의사에게는 문학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의사는 직업적으로 늘 갑의 위치에 있으니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타인의 글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소통해야 한다.

의사는 남녀노소를 다 대하니 그들의 변호인이 되어야 한다. 소통하려는 마음이 중요하고 소통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역설했다.

소설가 오정희님은 천천히 끊임없이 써라.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읽고 써라. 인생의 의미란 무의미한 것들의 반복이다. 생명체는 자기표현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억압된 감정에 대한 자기표현의 욕망, 즉 말하기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문학의 출발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무엇인가 결핍된 욕망, 상처, 고통, 실패, 가난 등 말로 할 수 없는 걸 쓰는 것이다. 말이 침묵하는 곳에서 쓰기가 시작된다. 문학이란 결핍이나 잉여의 문제이다. 문학적 표현 방법이 곧 삶의 방식이고 사고의 방식이다.

문학은 상실과 절망을 언어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장식적 미사여구는 피해야 한다. 난무하는 이 시대의 질문 속에서 하나의 답 찾기가 곧 글쓰기다.

플로베르는 "누구나 자기안의 비밀이 있다. 죽음이 포함된 공간이 있다. 글쓰기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문학은 교훈적이어서는 안 되고 답을 주려는 게 아니다. 모호한 그대로, 읽고 난 후 뭔가 남아있으면 좋은 글이다. 수필은 옷깃을 여미는 것이고 소설은 옷깃을 푸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은 품격과 격조가 있어야 한다. 문학에서 과학적 인식이 부족하면 큰 틀과 구성력이 부족할 수 있다. 앞으로 과학도가 더 큰 문학을 할 수 있으리라는 열망을 느낀다.

이동민 회원은 '의사가 본 의사수필'이라는 제목으로 말문을 열었다. 의사수필은 의료 현장이라는 특수한 삶의 체험을 수필로 쓴다. 외부세계를 감지하고 의식작용을 통해 인식하면서 형성되는 심상을 수필쓰기에 투사한다. 의사수필이 다른 수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의사수필가가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 독자들은 의료문제가 사회적인 이슈(의료보험, 의약분업 등)가 되었을 때 대체로 의사에게 비호감적이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바로 호감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다분히 적대적일 수 있다.

항상 독자보다 우월하지 않은 수평 관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진료는 이성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수필은 감성에 호소하여 독자를 설득하는 예술작업이다. 의사가 독자보다 낮은 곳에 있을 때 감동을 받는 글이 된다. 정(正)과 오(誤)를 따지는 작가의 목소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수필은 삶의 기록이라며 심사평(심사위원 손광성·오세윤·우한용)을 시작했다. 기록하지 않는 삶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망각된다. 삶의 가치를 기록하고, 이 가치가 구체성을 가질 때 형상화라 하고, 이 형상화에 성찰이 따를 때 좋은 수필이 완성 된다. 이 기준에 따라 심사하였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는 이상적인 의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그래야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의사로서의 판단과 수행이 탁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의 등급을 정하는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형언하기 어려운 울림으로 가득했다. 삶에 대한 성실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상자들의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을 보았다. 시상식에 이어 대상을 받은 상재형군(강원의전1년)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도서관이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 불리운 것처럼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문학을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를 내일의 발전 가능성이라 자위해본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가르침을 얻었고 또한 과제가 생겼다. 지금까지 의학은 사람보다 질병을, 치유와 보살핌(healing, care)보다는 처치와 치료(treatment, cure)를 앞세워 왔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심성을 기른다면 보살피는 의술을 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글을 쓴다는 의미는 인생을 진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며,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고도 한다.

자신에게라도 솔직할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대회를 끝내고 아직도 식지 않은 열기로 마당에 나왔을 때 어둠은 온 사방을 뒤덮었다. 그러나 불빛에 비치는 한강물은 천천히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마치 위대한 작가가 글을 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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