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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에 '울고' 가중처벌에 '또 울고'
저수가에 '울고' 가중처벌에 '또 울고'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1.11.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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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쌍벌제 그 후 1년]의료계에 미친 영향

 

 

한 달에 한 번 같은 과 동료의사들과 만나 진료와 처방정보를 교류하는 작은 세미나 모임을 열고 있다는 A원장은 밥값을 대신 내주겠다는 모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제안을 거절했다. "리베이트니 뭐니 이것 저것 신경쓰고 싶지 않아 밥값도 모임에 참여한 의사들이 각자 내고 있다"고 했다.

정상적인 판촉활동이자 경제활동의 하나인 '리베이트'가 의약계에서만 '불법'이라는 낙인을 받은 의료법·약사법·의료기기법 일부개정안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다.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개원가는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은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만과 함께 원가에 못미치는 수가를 현실화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다.

제약회사·의료기기 회사로부터 약이나 의료기기를 써주는 대가로 병의원과 약국이 금전·물품·편익·노무·향응, 그밖의 경제적 이익을 받을 경우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한 것이 리베이트 법의 골자다.

취득한 경제적 이익은 몰수하거나 추징하도록 했으며, 행정처분까지 받도록 했다. 벌금형의 경우 액수에 따라 자격정지 2개월∼12개월까지 받도록 했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경우에는 '면허 취소' 처분을 통해 다른 요양기관에 취업조차 할 수 없도록 징벌 수위를 높였다.

▲쌍벌제 입법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의료계에서는 한때 영업사원 출입금지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의협신문
복지부는 한 술 더 떠 리베이트 의·약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더 높여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리베이트로 3회 벌금형을 받을 경우 면허취소를 하던 것에서 1∼2회로 줄이겠다는 것. 여기에 면허취소 후 3년이 지나면 면허를 재교부 하던 것을 3년 이상으로 늘리는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한 달 넘게 구속수사까지 받은 의사가 자살한 사건이 불거진데 이어 리베이트법 개정 이후 실형과 면허취소 판결이 잇따르자 의료계 민심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한동석 의협 대변인 겸 공보이사는 "면허취소 처분을 받으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할 뿐더러 아예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며 "개인의 생존권이 달린 면허취소는 극히 제한적이고,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리베이트 처벌이 강화된 이후 일선 개원가는 적지않은 홍역을 앓고 있다. 제약산업의 위축도 예견된다.

의료계는 의약품 시장에서 경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든 실거래가제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경쟁의 한 수단인 리베이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약품 유통과정에서 시장경쟁의 원리를 살려낼 수 있도록 약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시장의 위축은 미래산업의 한 축으로까지 각광받고 있는 의료산업은 약가제도를 개선하지 않는한 성장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위법 행위 명확한 법률규정 필요

의협은 신민석 상근부회장을 위원장으로 '불합리한 쌍벌제 개선대책 소위원회'를 구성, 의료법 관련 조항의 위헌문제를 검토하는 한편, 각 사업자단체의 공정경쟁규약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기 위한 작업도 벌이고 있다.

유화진 의협 법제이사는 "형법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리베이트 수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있음에도 의료법에 처벌규정을 신설한 것은 구체적인 대가성이나 위법성 여부를 묻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수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서 "이는 구성요건의 명확성과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는 형사처벌규정과 형사절차에서 특정 직종을 차별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봉의 서울대 법대 부교수도 <의료정책포럼>을 통해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수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언제나 위법성을 인정하기는 곤란할 것"이라며 "추가로 처방이나 구매에 대한 구체적인 대가성이 있는지, 제공받은 이익의 규모는 어떠한지, 병·의원이나 약사가 적극적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했는지 등을 고려해 형사처벌 대상행위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수가 적정화·자율적 윤리지침 만들어야

수가 적정화를 통해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계는 "의약품 정책에 실패해 치솟는 약가를 관리하지 못한 정부가 실패의 책임을 의·약사들의 리베이트 때문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며 "정부가 원가에도 한참 못미치는 낮은 의료수가를 쥐어준 채 정상적으로 경영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격경쟁의 중요한 형태인 리베이트 마저 의료법을 통해 죄를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개원 3주년 기념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최병목 극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최근 6년 간 수가인상률은 물가인상률의 절반도 못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의사들이 파업을 안하는 것이 신통해 보인다"고 저수가 문제를 꼬집었다.

최 교수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그 수익으로 유지해야 할 병원들이 진료비로 적자를 보는대신 장례식비·주차비 등으로 적자를 메워 겨우겨우 운영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상황은 의사들을 쥐어짜고 있는 상황"이라고 저수가의 늪에 빠져있는 한국의료 상황을 설명했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리베이트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원가에도 못미치는 수가를 적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가 적정화 요구와 더불어 리베이트를 둘러싼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외국과 같이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의료계 자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전문가 위상과 격을 위협하는 비윤리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계 자율적으로 만든 원칙에 입각해 가이드라인에 따라 행동할 때 의료의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자율성(autonomy, self-regulation)은 전문가 생명과 같은 것"이라며 "의사들이 자율적으로 스스로 윤리지침을 개발하고 지켜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타율에 의한 제2∼3의 쌍벌제가 탄생할지 모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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