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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기예요?"
청진기 "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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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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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은혜산부인과의원)
▲ 김애양(은혜산부인과의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소문난 '호랑이'였다. 우리 아버지뻘의 선생님은 잠시도 손에서 회초리를 내려놓질 않았다. 오직 매만이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고 주장하였다.

잘못해서 얻어맞은 건 그리 아프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벌을 선 쓰라린 기억이 있다. 1학기가 끝나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선심을 쓰며 이번 여름 방학엔 숙제를 내주지 않겠노라 공표했다.

우리들은 기쁜 나머지 입을 모아 "정말이예요?"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선생님의 긴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몽둥이로 교단을 두드리며 그럼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진위를 묻는 건 불손 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학급 전체가 책상위에 올라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들고 기합 받게 되었고 또 숙제도 잔뜩 얻어 걸렸다. 그때 나는 정말이냐고 묻는 말이 고통을 가져온다는 점을 깊이 새겼다.

나중에 커서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받았을 때에도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정말이냐고 물어보질 못했다. 결과적으로 영원히 사랑한단 그 말들을 무조건 믿었다가 믿은 만큼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그렇게 호된 교육 덕분에 정말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는 나인데 거꾸로 그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진료실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이냐고 묻는 환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 중에서도 내 말 끝마다 "기예요?"하고 후렴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영락없이 조선족이다. 특히 연변에서 온 사람들은 경상도 사투리와 같은 특유의 억양으로 몇 번이나 되묻는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꼭 빈정대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왜 자꾸 정말인가 확인하는 거지?' 한때는 나도 호랑이선생님처럼 와락 화가 치밀었다.

오랜 경험 후에야 그네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실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말에 대한 호응으로 장단을 맞추듯 "기예요?"라고 한다는 것을.

멀리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일하러 온 조선족들은 그 무엇보다 건강에 관심이 많다. 아마 자신의 육체가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긴장을 하고 사는 터라 도통 아프지 않을 것 같지만 혹시 작은 통증이라도 느껴지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큰 병을 얻은 걸까봐 필요이상의 걱정을 한다.

오늘도 사타구니에 생긴 조그만 멍울을 암 덩어리라고 부르는 연변 처녀에게 임파선염일 뿐 별것 아니라고 설명하자 어김없이 "기예요?"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사실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몇 번이나 되묻는지 모른다. 다행히 나는 "기예요?"라는 그 불손한 질문에 더는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확실하게 답해주려고 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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