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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 FTA와 의료분쟁조정법

시론 한미 FTA와 의료분쟁조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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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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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우철(대한의사협회 전 총무이사)

현재 정치권은 한미 FTA 국회비준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며,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의료계에서는 지난 4월 통과된 의료분쟁조정법 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 하위 법령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

한미 FTA 협약의 취지는 현대 세계 경제정책 이론의 주류인 신자유의주의에 근거하여,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화, 시장 개방의 물결에 따라 한·미간 자유무역 협정을 통해 양국 간의 무역을 촉진시키고 양국 산업을 육성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 협약의 반대론자들은 이 협약을 통해 취할 이득은 적은 반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장개방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ISD, 래칫조항, 지적재산권 규제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실을 비껴둔 체, 반대론자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찬성론자들은 최선의 상황을 추정하여 각 자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본질과는 무관한 정치적 제스쳐에 급급하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끝장 토론을 아무리 펼친다 해도 타협이란 있을 수 없으며, 반복되는 각 자의 주장만 있을 뿐이며, 그들에게는 내년에 있을 총·대선의 이해득실만 보일 뿐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장장 23년간 입법 추진을 한 끝에 산고를 겪고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의 제정 취지는 선의의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발생되는 의료 사고를 조속히 처리하여 피해자와 가해자를 보호하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상태로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펼칠 수 있게 하는 데에 있다. 법 역시 입법 취지를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의료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그 발생의 원인이 명백히 의료인의 과실이라면 이에 합당한 처벌 혹은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처벌과 배상의 정도가 납득되어질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며, 법적 테두리 밖에서의 협박, 폭력 등 불법적인 위해를 당하거나 과다한 수준의 피해 보상을 요구당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또한 피해자 입장에서도 의료인의 과실에 따른 사고임을 입증 받아야 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적정성인데, 이 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판결로써 피해 구제의 수준이 결정되었던 바, 그 지난(至難)한 과정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조정과 중재라는 과정을 통해 양자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가능한 조속히 이를 처리하고, 혹여 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종래와 같이 법원의 판결을 따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이 20년 넘도록 입법이 어려웠던 것은 결국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 FTA 역시 그러하다. 입법이란 결국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 대표자들이 법안을 작성할 수밖에 없는데, 한미FTA는 양국의 실무자들이 자국의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며, 의료분쟁조정법 역시 이미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법안의 제출한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대안(代案)을 제시하여 이를 통과시킨 것이다.

그런 과정에 보건복지부 역시 이 법과 관련된 수많은 정부기관과 단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 법의 제정이 어려웠던 이유는 결국 이 법과 관련한 이해당사자가 많고 각자의 이해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의료 사고 과실 입증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였는데, 의료계는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 받았음을 입증하라는 것이고, 반면 피해자들은 자신이 의료 전문가가 아니어 그것을 입증하기 곤란하므로 의사가 과실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라고 주장하며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법에는 입증 책임에 대한 조항 자체가 빠져있다. 그 이유는 사고 중재가 접수되면, 우선 그것이 사고인지, 사고라면 의료인의 과실이 있는지에 대해 모두 조정중재원에서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교묘하게 입증 책임이라는 가장 큰 쟁점 자체를 소멸시킴으로써 입법 과정의 물꼬를 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를 조사할 의무가 있는 조정중재원의 감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정부의 인력구성은 매우 예민한 사항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국회에 법안이 상정된 이후 계속 논란이 되었다.

어쨌든 이 법은 크게는 가해자와 피해자, 넓게는 이에 관련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 중에는 정부도 포함이 된다. 왜냐면, 조정중재원의 설립과 운영에는 국가 예산이 반영 돼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초기 설립비용부터, 년 간 운영비용은 물론 대불제도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따른 재원(이른바 무과실 보상) 역시 필요한데, 이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불제도의 경우, 일단 어느 정도 재원이 마련되면, 그 재원을 통해 피해 구제를 하고, 가해자인 의료인에게 돌려받게 되어 사실 이 재원은 없어지는 돈은 아니므로, 계속 충당될 필요가 없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대불제도를 두지 않게 되면, 조정이 끝나도 가해자의 지불 능력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공제회나 의료사고보험의 의무 가입이 강제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의료인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결국 보험 회사의 배를 불리는 꼴이 될 수 있으므로 대불제도의 설치는 의료계로써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다. 결국 그 재원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출연하는 것으로 가닥을 세웠는데, 연간 30 조원 이상을 지출하는 건보재정에서 대불제도를 운영하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크게 부담되는 일이 아니며, 설령 그 액수가 수백억 원에 이른다 해도 각각의 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분담하므로 특히 개원의사가 부담하는 금액은 매우 미미할 것이다.

반면, 불가항력 의료사고 즉, 무과실 보상의 재원은 논란거리였다. 첫째 의료계는 처음부터 그 재원을 정부가 부담하라고 주장하였는데, 정부 즉 기재부는 사인(私人)간의 행위에서 발생되는 비용 부담을 무슨 근거로 정부가 부담할 수 있는가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즉, 의료 행위를 통해 피해가 발생되었을 때 의사의 책임 입증이 되지 않아 의사가 피해 보상을 할 수 없는 경우, 왜 정부가 세금으로 그것을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두 번째, 무과실 보상 즉,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아무런 통계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그런 사고의 발생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 그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그 누구도 추정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추정되지 않는 금액을 정부 예산에 편성하고 그걸 지원해 달라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이 제도에 대한 시민 단체와 법무부의 반응 역시 좋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명백히 그 책임 소재를 찾아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불가항력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조항 자체의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애초의 정부 대안에는 이 조항 자체가 빠졌다.

그러나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는 실재(實在)하는 것이며, 이 조항은 의료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여 설득해 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한 통계가 없어 의료계 모든 분야에 대해 적용이 곤란하다면 우선 분만 사고에 대한 것부터 시작하고 조정중재원이 설립되고 이런 유형의 사고에 대한 통계가 쌓이면 점차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재원 마련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조정중재원의 설립은 이를테면 별도의 법원을 하나 만드는 것이므로, 보건복지부가 관장할 수밖에 없는 법원의 설립을 법무부가 고운 눈으로 볼 리 없는 것이며, 당장 조정 중재 절차를 통해 의료 사고가 해결되게 되면, 변호사들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니 법조계 역시 이 법안의 통과를 반길 리 없었다. 하물며 법학대학원을 통해 수천 명의 변호사가 배출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이처럼 의료분쟁조정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계산속에 산고를 겪으며 태어났다. 그런데, 이 법의 실시를 앞두고 엉뚱한 곳에서 문제 제기가 있으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의료계 내부에서 이 법안이 독소 조항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이 법을 무위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논란을 지켜보며 앞서 언급한 한미FTA 비준에 따른 정치 공세가 오버랩 된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오랜 의료계의 숙원사업이다. 해마다 정기총회에서 집행부 수임사항으로 내려왔던 것이며, 이 법안이 가진 주요 쟁점 사항의 거의 모두가 의료계의 주장대로 법제화되었다. 한미FTA는 지난 정권에 시작하여 미국은 이미 국회의 비준을 통과한 상태이다. 즉,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법과 하위법령과 한미FTA 조약 모두 매우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꼼꼼히 잘 읽고 그 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각 구절의 취지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꽤 많은 의사들이 대불제도나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재원을 각 의료기관으로부터 직접 갹출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나, 법 47조에 따르면, 대불제도는 공단의 재정을 지원받도록 되어 있으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재원 역시 그 절반은 정부가 (그렇게 못 내겠다고 했던 정부가) 나머지 절반은 의료기관이 부담하되, 이 역시 건보재정에서 출연하는 것으로 입법 예고되었다. 즉, 각 의료기관으로부터 징수하여 재원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행령은 재원의 절반을 "보건의료기관 개설자 중 의료사고 보상사업을 시행하는 연도의 분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 재원의 징수는 법 47조 4항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하여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조정중재원에 지급하는 방법"으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결국 의료기관이 직접 내지 않을 뿐, 어차피 받아야 할 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조항을 거부하거나 나아가 의료분쟁조정법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조항이 없다면, 의사는 무과실 입증에 더 힘을 써야하고 피해자는 의사의 과실 주장에 더욱 집요해질 것이며, 조정·중재의 수용은 어려워지고 결국 판결로 가게 될 것이다.
이 법의 제정 취지가 의사를 면책하게 하기 위함이나 모든 의료 사고의 부담을 의료인에게 전가하기 위함이 아님을 언급한 바 있다. 어느 일방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과실 의료사고의 재정 부담을 왜 의료기관이 져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재원 마련에 따른 부담이 문제라서 논란이 거듭되는 것이라면, 현행 입법 예고된 대상 즉, 분만에 따른 뇌성마비와 분만 과정에서의 산모 또는 신생아의 사망이라는 대상 폭을 줄이도록 의견을 내는 것도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생각해 보자. 2009년 기준으로 신생아 사망자 수는 약 1,000명이 안 된다. 신생아가 사망했다고 다 의료사고는 아니다. 이 중 의료사고 분쟁으로 갈 사망자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자. 또 이중 과실 입증이 어려운 불가항력적 의료사망 신생아는 또 얼마나 될지, 그 중 불가항력 의료 사고 보상 심의위원회를 통해 보상이 결정될 경우는 얼마나 될지 말이다.

이렇게 의사의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의료사고로 결정되는 경우 최대 3천만 원이 보상이 되는데, 그 경우 무과실 보상의 총액의 절반을 1천여 의료기관이 나누어 부담하게 된다. 그것도 각출하는 것이 아니라 건보재정에 부담한다. 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이 과연 이 법 자체를 무위로 돌릴 만큼 부담스러운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논란이 본질은 비껴둔 체 논쟁의 위한 논란은 아닐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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