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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의 여정…그리스·터키 여행기

에게해의 여정…그리스·터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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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1.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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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내자의 회갑 기념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고 신화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고대 역사의 원류를 찾아보는 의미가 있었다.

9월 7일 오후 11시 55분 인천에서 터키항공에 탑승했다. 승무원은 무뚝뚝한 편이고 몇 시간 후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느냐고 승무원에게 물으니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11시간 30분이 걸리고 이스탄불에서 인천은 9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2시간 차이는 기류때문이란다.

이튿날 오전 5시 15분(현지시간·한국과 시차는 6시간)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해 연결 항공편으로 1시간 20분 만에 아테네 공항에 내렸다.

신음하는 그리스를 보면서 당장 표심에 눈이 어두워 지나친 선심정책과 포퓰리즘을 남발하면 나라를 말아 먹는다는 교훈이 타산지석으로 다가왔다. 시내관광 후 약 1시간 거리의 애기나 섬으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

에게해(Aegean sea:서쪽의 그리스 반도와 동쪽의 소아시아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한 갈래)는 갯내음이 없고, 물결이 거의 없이 잔잔하고 아주 맑아 거의 쪽빛을 띄며 태풍이 없으니 방파제 및 테트라포드(Tetrapod:호안용 사각블록)도 없다. 그 바다는 여행 내내 함께하며 나그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애기나섬은 인구 1만 2000명이 살고 있는 폴리스 국가로 한창 번성할 때는 60만 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 곳에서 정교(Orthodox)교회를 볼 수 있었다.

3일째에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에 올랐다. 앞쪽에 전실(Propylaea)을 지나면, 좌측으로 에렉테이온 신전과 우측으로 대단위 보수를 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다.

여기엔 그리스 신화속 아테나신 전쟁과 지성의 여인을 모셨는데, 신화에서는 처녀성을 끝까지 지킨 여신이지만 국가의 수호신이란 성격 때문에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 된다. 오후엔 수니온곳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만나러 갔는데, 오른쪽으로 에게해 해안선을 끼고 약 70km를 달렸다.

푸르디푸른 바다는 파도도 거의 없고 잔잔하며 물이 따뜻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 바다에 들어가면 바로 나만의 해수욕장이 됐다.

4일째에는 오전에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으로 나아갔다. 이 해협 동쪽으로는 흑해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드넓은 마르마라 해와 통한다. 에게해의 푸른 바다와 화창한 연푸른 하늘, 두둥실 높이 떠 있는 뭉게구름이 나그네의 심장을 흥분케 했다.

 
배에서 내려 돌마바흐체 궁전을 관람했는데 건립에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됐고 이 궁전의 모든 시계는 업무 중 사망한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일명 케말 파샤)의 사망 시간인 9시 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는 1923년 왕정을 폐하고 터키공화국을 선포하여 1938년 사망하기 까지 터키의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지방 도시에도 그의 동상이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존경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 무척 한스러웠다. 오후엔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이동하는데 5시간 30분 걸렸다. 이 도로가 터키의 하나뿐인 고속도로인데 중앙분리대도 미약하고 다소 엉성했다.

5일째에는 히타이트 문명의 발상지인 카파도키아(소아시아 동부의 옛 이름)로 이동했다. 지금은 추수를 했지만 몇 시간을 달려도 일망무제 지평선의 끝이 보이지 않고 밀밭이 이어진다.

BC 2000년경 최초의 강력한 철기문명을 꽃피운 히타이트는 또 다른 고대문명인 이집트(청동기 문명 발달)와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장기간 전쟁을 하다가 서로 지쳐서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2세 사이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문인 카데시 조약문(BC 12세기경)이 만들어져 UN 정문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카이막클러 지하 동굴을 관람했다.몸을 움츠리고 때론 엎드려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미로로 연결된 이 동굴은 기독교 박해의 피난처로 이용됐는데 한 때는 이 곳에서 1만 5000명이 생활했다. 이러한 크고 작은 동굴이 50개 정도 있다고 한다.

6일째에는 터키 중부에 있는 콘야(Konya)를 둘러봤다. 콘야는 '양의 가슴'이란 뜻으로 해마다 12월이면 '메블라나 축제'가 열린다. 이곳은 터키인에게 성지로 여겨져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그의 사상은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 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연민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 등이다.

7일째.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고 하는데 경사면을 흐르는 온천수가 빚어낸 장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 언덕위에 세워진 고대도시이다. 지금은 바다에서 5km 떨어진 내륙이지만 로마시대엔 항구였던 에페스(Efes)는 터키 이즈미르 남서쪽 약 50km에 있으며 상업이 발달했다.

이 곳엔 신전·셀수스 도서관·극장 등 로마보다 더 로마유적이 잘 보존돼 있었다. 저녁엔 16일 기망(旣望)의 꽉 찬 달을 보면서 소원이던 에게해에서 수영도 하고, 부드럽고 깨끗한 해변을 달려도 보았다.

8일째에는 트로이 목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다르다넬스해협(차나칼튼 해협)을 건너(30분소요) 일차 대전의 최대 격전지로 수십만의 사상자를 내었던 피의 도시 갈리폴리로 왔다.

에게해나 마르마라해 모두 지중해의 일부분일진데 이곳의 패권다툼에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과 인걸들이 부침했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행 9일째이자 마지막날인 9월 15일은 여느 날과 같이 매우 화창했다. 역사의 부침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성 소피아 성당은 많은 훼손은 있었지만 아름다웠다.

블루모스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술탄마호멧 모스크(Sultanahomet mosk)는 오스만투르크 황제들의 궁전으로 약 300년 간 사용한 톱카프 궁전엔 86캐럿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자정 무렵 터키항공에 탑승 이튿날 오후 4시 인천공항에서 도착하며 7박 10일의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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