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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분쟁조정법 7가지 쟁점과 전망

시론 의료분쟁조정법 7가지 쟁점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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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0.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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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륜 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오랜 기간의 진통 끝에 의료분쟁조정법(정식 명칭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올 4월 7일 제정·공포되었다. 의료분쟁조정법은 공포 후 1년 후인 내년 4월 8일부터 시행된다. 현재 하위 법령 제정 작업이 본격 진행 중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제정된 배경은 이렇다. 환자측은 소송을 통한 분쟁 해결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의료과실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의료과실을 입증하더라도 의료인이 지급불능 상태인 경우, 보상(배상) 받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의료소송 제기되면, 의료인 역시 막대한 시간 및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환자에 대한 심적인 부담감은 여전하다. 그래서 무과실 사고에 대해서 국가가 보상해 주기를 원했다. 또한 환자들이 소송 대신 형사 고발이나 실력 행사로 나올 경우, 그로 인한 피해는 막심하다. 만약, 합리적인 분쟁해결절차가 마련된다면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한 의료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예상치 못한 비용 부담, 소송이나 기존 분쟁조정절차보다 오히려 불리해 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절차에 협조하지 말자거나, 아예 의료분쟁조정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가장 문제되었던 입증책임 전환규정이 삭제되었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방안 및 형사처벌 특례(반의사불벌) 조항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그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중요한 부분을 짚어보자.

첫째 조정신청과 관련된 부분이다. 당사자가 중재원에 조정신청서를 제출하고, 피신청인이 승낙해야 조정절차가 진행된다. 즉, 피신청인이 조정절차 진행에 동의하여야 분쟁조정절차가 진행되는데, 이는 의료계로서는 다행스런 부분이다(참고로, 소비자기본법이나 환경분쟁조정법에 따른 분쟁조정절차는 분쟁조정신청 즉시 절차가 진행된다). 다만 신청인은 조정신청 후에도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신청인이 조정신청 후 병원의 진료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중재원은 조정 신청 각하 이외에 다른 실효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 반면, 피신청인이 승낙 후 조사에 협조하지 아니할 경우, 벌금이나 과태료의 제재를 받게 된다. 환자는 다양한 분쟁해결 절차(조정신청, 소송, 형사 고발)를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의료인은 환자의 선택에 따라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수동적이고 불안정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두 번째는 의료사고 감정단의 구성과 역할 부분이다. 감정단은 의료분쟁 해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법에서는 감정단이 의료과실, 인과관계, 후유장애 등을 직권으로 조사하여 감정결과를 조정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감정단은 50∼ 100개의 감정부로, 1개의 감정부는 5명의 감정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의료인이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법조인(변호사, 검사)과 비영리민간단체 임원직에 2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중에서 임명된다. 의료분쟁에 있어서 의료과실 및 인과관계· 후유장애에 대한 판단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소송에서 공정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해당 분야 전문 의료인의 의견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고 있는 것도 전문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에서는 감정위원의 절반 이상을 비의료인으로 구성하고 있고, 그 중 1인은 의료와 법에 대해서 전혀 전문성이 없는 비영리민간단체 임원 중에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의사 출신 감정위원 역시 전문의 자격 취득 후 2년이 경과하면 되는데, 과연 위와 같은 경력을 갖고 전문적이고 공정한 감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의료사고에 대한 조사절차 부분이다. 법에 따르면 감정부는 필요한 경우, 당사자에게 출석 및 자료 제출, 사고의 원인이 된 행위 당시 환자의 상태 및 그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등에 대한 소명을 요구할 수 있고, 또한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관련 문서와 물건을 조사·열람· 복사할 수도 있다. 의료기관이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형사처벌(3,0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과태료(500만원 이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소송절차에서도 시행되지 않고 있는 현장조사권한이나 자료제출 요구권을 감정단에게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정절차는 피신청인의 승낙을 전제로 진행되므로, 위와 같은 강제적인 조사절차가 위헌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벌칙이나 과태료 규정 역시 조정절차의 공정하고 신속한 진행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무규정들 때문에, 의료기관이 분쟁조정절차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소송절차는 물론 소비자보호원에 의한 분쟁절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의무규정들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네 번째는 감정서 등의 열람 및 복사 부분이다. 법에 따르면, 당사자는 조정중재원에 감정서, 조정결정서, 조정조서, 그 밖의 감정에 관한 기록 등의 열람 또는 복사를 신청할 수 있다. 의료계는 의료분쟁조정절차가 소송을 위한 증거수집 절차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열람 및 복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청구제도 취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열람이나 복사를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송을 위한 증거수집 절차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시 비용 부담에 관한 부분이다. 법에 따르면, 불가항력으로 인한 분만사고에 대해서도 조정중재원이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비용의 일부를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분만사고를 당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가 사회복지차원에서 결정한 것인 만큼, 그 비용을 의료기관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무과실 사고에 대해서 의료인은 법적인 책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과실 사고에 대한 비용을 의료인에게 분담시킨다면 과실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부분이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기는 하나, 다른 의료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침해, 다른 채권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또한 제도 시행 과정에서 가해자의 도덕적 해이, 비용 분담을 둘러싼 직역간의 분쟁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불 대상을 소비자원이나 법원에서 한 조정· 판결에까지 확대하는 것은 다른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든가 아니면, 대불 대상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형사처벌에 대한 특례 부분이다. 의료계에 혜택을 준 부분이지만, 실제 그 혜택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중과실 사고나 사망 또는 중대한 장애가 발생한 경우는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혜택을 받으려면, 분쟁조정절차에서 합의가 되어야 한다. 법원이나 소비자원에서 조정이 성립된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측이 분쟁조정절차에서의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형사고발을 남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내용들을 근거로 향후 전망을 해 보면 이렇다. 먼저, 환자측의 분쟁조정신청은 증가할 것이다. 저렴한 비용과 노력으로 의료인의 책임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조정절차 진행 중에도 언제든지 다른 구제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도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절차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의료기관이 분쟁조정절차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을 통해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하여 환자와 의료계 사이의 분쟁이 예전보다 더욱 격화될 수도 있다.
형사처벌 특례 규정을 제외하고는 분쟁조정절차에 있어서 의료계에게 유리한 부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의료사고 현장조사와 각종 협조의무 등으로 의료계는 기존 소송이나 소비자원 분쟁조정절차에 비해 불리해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료사고 감정단에 비의료인이 감정위원으로 참석하고, 법관에 의한 재판이 아닌 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절차인 점에서 피해자에게 우호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의구심이 팽배해 있다. 오히려, 손해배상대불제도나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으로 비용 부담만 가중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계는 분쟁조정절차에 무관심하거나 비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의료분쟁조정제도의 도입 목적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의료분쟁을 해결하여,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료인에게 안정된 진료환경을 제공하고자 함에 있다. 의료분쟁조정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현행 제도하에서는 의료계를 의료분쟁조정 절차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이 부족하다고 보인다.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의료분쟁 조정절차가 활성화될 수 없고, 그럴 경우 오랜 진통 끝에 시행되는 의료분쟁조정절차는 유명무실화되거나 소액사건 위주의 분쟁해결절차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서건 하위법령 제정을 통해서건 간에 의료계의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분쟁조정법은 국가가 환자 보호를 위해 주도적으로 추진한 만큼, 그로 인한 비용을 의료기관에 전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전문성과 공정성을 갖추면서 경험이 풍부한 조정위원, 감정위원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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